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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스토리] "그들이 원한건 사랑을 빙자한 공짜 잠자리였다"



사회 일반

    [노컷스토리] "그들이 원한건 사랑을 빙자한 공짜 잠자리였다"

    '코피노파더' 사이트 운영중인 WLK 구본창 대표 인터뷰
    코피노 문제, 자피노 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 해결해야

    대성학원 원장 시절 구본창 씨의 모습 (사진=구본창 씨 제공)

     


    대입 재수반 영어 강사 12년, 대성학원 원장 7년, 성공한 사교육 강사.

    구본창 씨의 한국 삶은 남부럽지 않았다. 사교육, 부동산으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학원을 은퇴한 그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필리핀으로 갔다.

    그곳에서 구 씨는 코피노(한국과 필리핀 혼혈아) 엄마 A 씨를 알게 됐다. A 씨는 한국인 유학생과 동거 중 아이를 출산했다. 남자친구는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아 오겠다며 한국으로 갔고 연락이 끊겼다. 아이는 아프기 시작했다.

    A 씨는 구 씨에게 남자친구가 남기고 간 한국 연락처를 건넸다. 그녀는 아이가 아픈데 아빠를 찾을 수 있냐고 물었다.

    연락처에는 'guegyol minni 18 Korea' 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믿니 18 한국'

    얼마 뒤 두 살이던 코피노 아이가 죽었다. 이것을 계기로 구 씨는 코피노 문제에 뛰어들었다. 구 씨는 지난 2014년 필리핀에서 'WLK(We Love Kopino)'란 시민단체를 만들고 코피노 맘을 돕고 있다.

    WLK(We Love Kopino)에서 상담 중인 코피노 엄마들의 모습. (사진=구본창 씨 제공)

     


    "유학, 사업, 주재원으로 와 있다가 필리편 현지 여성을 만납니다. 선물도 사주고 사랑도 고백하죠. 반 동거 식으로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사실상 사랑을 빙자한 공짜 잠자리가 목적이죠. 그러다 아이가 태어납니다. 남자는 한국으로 돌아가 연락을 끊죠. 아이와 엄마는 아빠를 찾는데 사는 곳도, 연락처도 모릅니다.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죠."

    지난 30일 취재진을 만난 구 씨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에게 양육을 거부하고 잠적한 코피노 아빠는 그저 '배드파더(bad father)'일 뿐이었다.

    "필리핀 코피노 문제가 술집여성이나 매춘녀의 문제라고 말하는 한국 언론이 있습니다. 그건 10%도 안 돼요. 그마저도 한국 남자가 콘돔을 안 끼려다 생기죠. 인터넷에 '필리핀 여자 꼬시는(꾀는) 법'이라고 쳐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십수 년 간 현지인과 함께 살다 코피노가 태어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이를 빌미로 돈을 뜯을 목적이었다면 그 사람 개인정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모르잖아요. "

    인터넷에서 필리핀 여자 꼬시는(꾀는) 법을 검색하면 수많은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구글 캡처)

     


    A 씨 사연을 알게 된 후 구 씨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고민 끝에 코피노 아빠 15명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사이트 이름은 '코피노파더(KOPINOFATHER)'였다.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 필리핀에는 많은 코피노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빠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합니다'

    사이트에는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이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필리핀 거주 당시 인적사항이 공개돼 있다. 모자이크도 조차 없다. 사진을 지우려면 코피노 엄마에게 연락해야만 했다.

    "협박, 많이 받았습니다. 고소하겠다는 것은 다반사였고 필리핀에 와서 저를 죽이겠다는 사람도 있었죠."

    사진이 공개되자 코피노 아빠가 속속 연락해왔다. 그들은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 법적 책임을 언급했지만 지인이 사진을 볼까 노심초사했다. 수년간 연락 한번 없던 코피노 아빠 대부분은 아이 엄마에게 연락했다. WLK는 지난 4년간 66명의 사진을 올렸고 약 40명의 아빠를 찾았다. 엄마와 이야기가 끝난 아빠의 사진은 삭제했다.

    코피노파더 사이트에 등록 된 사진. 사이트에는 코피노 아이, 엄마, 그리고 한국인 아빠의 사진이 함께 공개돼 있다. (사진=코피노파더 제공)

     


    양육비도 받아 줬다. WLK는 한국의 법무법인과 함께 양육을 포기한 코피노 아빠에게서 양육비를 지급 소송을 진행했다.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고 싶은 한국인 아빠들은 주로 합의를 선택했다.

    WKL는 약 200건의 코피노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약 100건이 추가로 진행중이다. 구 씨는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등으로 고소당한 사례 없었다.

    순순히 합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현지 해결사를 동원해 구 씨와 코피노 맘이 소송을 멈추도록 주변을 협박했다.

    구 씨도 강하게 나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협박은 더 심해지기에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필리핀 현지인은 구 씨를 자국민을 돕는 영웅으로 보았고 현지 한인은 구 씨를 깡패로 매도했다.

    "우리보다 앞서 필리핀에서 자피노(일본과 필리핀 혼혈아)가 문제된 적이 있습니다. 아빠가 나타나지 않는 코피노와 똑 같죠. 그런데 일본 정부는 자피노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해줍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니 협박도 있을 수 없죠. 국적 취득도 쉽고 일본 기업의 취업도 도와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코피노를 그저 필리핀 사람의 문제로 취급하죠. 우리나라 사람의 잘못이고, 한국 정부가 도와 주는 게 맞아요."

    지난 5월 그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더 이상 개인이 WLK 단체를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구 씨는 일본의 자피노 사례를 들며 코피노 문제를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고 보았다. 청와대 청원은 20만 명을 넘기지 못했고 정부의 공식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코피노파더 사이트를 보고 있는 구본창 씨.

     


    한국에 머물고 있는 구 씨는 조만간 필리핀으로 간다. 최근 한 독지가가 WLK에 큰 금액을 후원한 만큼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그냥 A씨 사연이 안쓰러워 시작했습니다. 한발 한발 발을 깊숙이 넣다 보니 양육비를 받아내는 단계까지 왔네요. 특별한 신념이나 목적의식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사실상 코피노 맘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엮여 들어 간 거예요. (웃음). 코피노 아빠 찾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묻습니다. 코피노가 왜 아빠를 찾냐고. 그게 이상한건가요? 아이가 아빠를 찾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요?"

    대학생이 된 코피노 딸을 키우는 엄마 B씨가 있다. 50대를 훌 쩍 넘긴 그녀는 지난 20년간 이사를 가지 않았다. 한국으로 간 남편이 찾아올까봐 그녀는 오늘도 문앞에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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