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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성일-엄앵란…'세기의 부부'→'동지' 애증의 54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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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신성일-엄앵란…'세기의 부부'→'동지' 애증의 54년 스토리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 씨의 빈소가 서울 아산병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의 타계 소식과 함게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부인 엄앵란과의 54년 스토리이다.

    엄앵란은 남편 신성일을 "동지"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폐암 진단을 받은 남편 신성일의 병원비를 자신이 부담했다.

    이는 지난 3월 방송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두 사람의 딸 수화 씨가 전한 표현이다.

    당시 두 사람은 별거 중이었다. 감정적으로는 어쩌면 '남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앵란은 신성일을 외면하지 않았다.

    엄앵란은 "내 남편 신성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고, 먹여살려야 하는 큰 아들이다. 죽을 때까지 VVIP 특실에서 대우받고 돌아가셔야 한다. 작은 방에서 병원비도 없어서 돌아가시는 거 못 본다. 내 남편이니까. 난 그걸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부부'에서 '동지'로 호칭이 변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함께였지만, 남처럼 살고, 그렇다고 남은 아닌 복잡하고 오묘한 여러 감정이 이 단어에 담겼다.

    ◇ 세기의 결혼식 … 1960년대 예식장에 수천명 팬 몰려드는 초유의 사태 벌어져

     

    신성일과 엄앵란의 첫 만남은 영화 '로맨스 빠빠'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신성일은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서 막내아들 역할을 맡았다.

    엄앵란도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 당시 엄앵란은 이미 '단종애사'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기 배우였다.

    두 사람은 1962년 '특등신부와 삼등신랑'을 비롯해 '청춘교실', '가정교사', '말띠여대생' 등 20여 편의 작품을 엄앵란과 함께했다.

    그러다 1964년 '맨발의 청춘'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신성일을 명실공히 당대 톱배우 자리에 올려놨다.

    꾸준히 함께 작품하면서 서로에 대한 호감은 커졌다. 그리고 신성일은 한 매체를 통해 1964년작 '배신' 촬영 당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연기가 아닌 실제로 입을 맞추며 고백했음을 털어놨다.

    1964년 11월 진행된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세기의 결혼식' 이었다.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장에 두 사람을 보러온 하객이 4000여 명에 다달았다. 몰려든 팬들 때문에 정작 초청받은 하객이 자리가 없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지금이야 팬들이 스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환호하고 연호하는 게 흔한 일이지만, 1960년대는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 화려함 뒤에 가려진 슬픔 … 75년부터 별거

     

    신성일은 60, 7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당시 한국 영화는 신성일이 나오는 영화와 신성일이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할 정도였다.

    그 시절 신성일의 인기는 현재의 장동건, 이병헌, 원빈의 인기를 모두 합쳐도 모자랐을 정도다.

    2009년 충무로영화제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성일은 536편의 영화에 출연, 총 506편에서 주연, 104명의 여배우와 공연했다.

    하지만 화려한 배우 인생과 달리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절반 이상이 별거로 이뤄졌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1975년부터 이미 별거했다고 두 사람은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를 통해 밝혔다.

    신성일의 외도도 문제였다. 신성일은 지난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를 통해 동아방송의 아나운서였던 故 김영애(1944~1985)와의 충격적인 연애담을 공개했다.

    신성일은 자서전 발간 당시 故김영애에 대해 "생애 최고로 사랑했던 연인"이라며 외국에서 주로 만남을 가졌으며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했다는 사실도 직접 공개했다.

    그는 "김영애가 낙태한 사실을 엄앵란은 모른다. 죄책감 때문에 정관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그는 "나는 엄앵란도 사랑했고 김영애도 사랑했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며 "지금도 애인이 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또 다른 얘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라디오에서는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에도 각자 집이 따로 있고 지방에 별도 한옥을 짓고 따로 사는 나와 엄앵란이야말로 '미래지향적 부부'"라고 자평했다.

    모 방송 토크쇼에서는 엄앵란과의 결혼 이유로 임신 때문이라도 했다. 그러면서 "엄앵란은 나의 외도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어디서 어떤 여자를 만나도 엄앵란에게 이야기가 전해져 여자랑 단둘이 만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신성일로 인해 엄앵란을 비롯해 가족이 상처를 받았을 것은 분명하다.

    ◇ 부부에게 잇따라 찾아온 암 투병…서로 의지하는 기둥이 되다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 씨의 빈소가 서울 아산병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엄앵란이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는 데는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수화 씨는 "(엄앵란이) 배우들이 몇 개월 못 살고 이혼하는 선배들을 봤기 때문에 그런 딴따라의 이미지를 깨겠다, 죽어도 가정은 지켜야 한다더라"고 밝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동지'처럼 되는 시기는 부부에게 잇따라 찾아온 암 투병이 컸다.

    이 일이 별거라는 현실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서로 함께 의지하며 나이 먹는 친구임을 확인시켰다.

    2015년 엄앵란은 한 건강 관련 방송을 통해 갑작스럽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부분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하게 되다.

    훗날 방송에서 엄앵란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녹화 다음날 아침, 남편 신성일에게 전화해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신성일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건 엄앵란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20여 년 넘게 집을 나간 신성일이 돌아와 엄앵란과 함께 병원에 가 검사를 받고, 수술부터 회복하는 과정에까지 그 옆을 지켰다

    이후로도 두 사람은 떨어져 각자 생활했지만, 수화 씨에 따르면, "이전과는 달리 '별거 아닌 별거'가 됐다"고 했다.

    이어 신성일도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서로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동지'가 됐다.

    엄앵란은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방송 말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변하지 않고 의지하는 기둥이다"고 말했다

    한편 신성일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지며 영화인장으로 거행된다. 발인은 오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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