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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뭉클한 감동 주는 의사의 죽음과 남은 자들의 몫



칼럼

    [칼럼] 뭉클한 감동 주는 의사의 죽음과 남은 자들의 몫

    [구성수 칼럼]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날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려는 의사를 폭행하고 위협하고 살인하는 것은 안타까운 한 의사의 목숨을 잃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강북 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청원'의 한 대목이다.

    이 청원에는 2일 현재 4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여했다.

    세밑인 지난 31일 이 병원에서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중 30대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에 대한 청원이다.

    이 사건으로 새로운 희망과 덕담으로 수놓아져야 할 새해 벽두가 숙연한 분위기다.

    고인은 지난 20년간 우울증·불안장애 치료와 자살예방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 왔다.

    2011년 개발된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자로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의 우울증 치료 활동에는 자신의 산 경험이 녹아있다.

    자신도 실제로 한 때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그런 고백과 함께 자신이 우울증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담은 책을 펴내 왜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인은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진심으로 치료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고인이 생전에 SNS에 남긴 글에는 그런 사연이 담겨 있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성정을 가졌기 때문에 고인은 사건 당시 처음 진료실 대피공간에 잠시 피했다가 밖에 있는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나왔다가 변을 당했으리라.

    뭉클한 감동 그 자체다.

    임헌정 기자 =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2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을 마친 강북삼성병원 동료 의료진이 침통한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 가슴에 단 근조 리본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동료 의사들은 인술을 베풀어온 고인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환자일 때 그 분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는 글이 이어지는 등 추모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러한 추모 열기 속에서도 어떻게 병원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해자의 범행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해자가 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돼서는 안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섣부른 추측성 보도나 소셜미디어 상의 잘못된 정보가 대중의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것을 경계한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안전하지 못한 진료환경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가해자는 병원에서 진료상담 중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들었고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복도까지 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어떻게 의료진이 백주대낮에 병원에서 이렇게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병원에서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매년 급증 추세다.

    2016년 578건에서 2017년 893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582건에 이르렀다.

    하루 2~3번 꼴로 의료진 위해 행위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했으니 의료진은 크게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은 뒷북이다.

    지난해 연말에야 응급실 내 의료진 폭행사건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뿐이다.

    일반 진료실이나 병동에서 폭력을 행사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이다.

    의료 안전장치 구비를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에 4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여한 이유이다.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 씨가 2일 임 교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인의 유가족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가족의 자랑이었던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없이 치료받기를 원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었다고 한다.

    고인의 유가족답다.

    정부와 의료계도 유가족의 뜻에 따라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고인은 생전에 남긴 SNS 글을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 겠다"로 마무리지었다.

    못다 이룬 꿈의 성취는 남은 자들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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