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체육계의 오래된 비위 가운데 하나인 성폭력 해결을 위해 정부와 체육계의 노력뿐 아니라 민간의 도움을 받아 발본색원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박종민기자
‘폐쇄(閉鎖)’.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닫거나 막아버림’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외부와 교류가 막히다’라는 뜻도 담고 있다.
한국 체육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노태강 제2차관은 체육계를 ‘폐쇄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선수와 코치, 선배와 후배의 위계질서가 여느 사회 조직보다 단단해 외부의 힘이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의미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9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한체대)가 자신을 어려서부터 지도했던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미 심석희 등 국가대표 선수에게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 중인 가운데 혐의가 추가된 것.
동계 스포츠계 스타인 심석희의 용기 있는 고발은 체육계의 오랜 문제였던 성폭력을 수면 위로 더욱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심석희의 용감한 행동에 지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지난 2013년부터 조직사유화와 (성)폭력, 입시비리, 승부조작을 4대악으로 지정해 이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전담수사반을 운영하고 상시 제보접수 기관인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스포츠 4대악 비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특히 노태강 문체부 차관은 유명 국가대표 선수가 최근까지 성폭력에 희생됐다는 사실에 9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이 사건은 정부와 체육계가 마련했던 모든 제도와 대책이 사실상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모든 제도와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노태강 차관이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오랜 시간 쌓여온 체육계의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특히 성폭력 같은 민감한 문제는 ‘동업자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며 재발 우려를 키웠다.
“특정 피해자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외부에서 알 수 없는 구조”라며 체육계의 성폭력 문제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직접 밝힌 노태강 차관은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단순히 차관 개인의 약속이 아닌 정부를 대표한 약속이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의 도움으로 여전한 스포츠 4대악, 그중에서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단기적인 계획부터 중장기적인 계획까지 다양한 실행 구상을 밝히며 이 문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노태강 차관은 “(문제 해결까지) 굉장히 힘들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계 문화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어린 학생 선수부터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분명 힘들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싸움이다. 그릇된 방향으로 뿌리가 깊이 내린 나무를 완전히 뽑기 위한 고된 과정은 이제 시작됐다. 실패는 지난 5년여로도 충분하다. 실패가 반복될수록 스포츠계에 만연한 여러 비위가 더욱 깊게 뿌리가 박힐 시간만 벌어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