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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뷰] 화성 美 금성 北…무지 또는 적대감



통일/북한

    [한반도 리뷰] 화성 美 금성 北…무지 또는 적대감

    “핵보다 더한 것도” 발언이 2차 북핵위기 불러…해석 논란이 파국 초래
    당시 ‘네오콘’ 주역 볼턴, 17년만에 재등장…北·美 잘 아는 韓 역할 중요

    ■ 방송 : CBS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사진=연합뉴스)

     

    ◆ 임미현 >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 홍제표 > ‘화성에서 온 미국, 금성에서 온 북한’이란 열쇠말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인간관계 전문가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책 제목에서 차용했습니다. 이 책은 남녀 간 언어와 사고방식 차이가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크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파합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양국관계’ 수립에 합의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사랑하는 사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8개월만에 하노이 회담에서 싸늘하게 헤어진 것을 보면 이들의 ‘사랑’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소통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 임미현 > 북미 간에는 비핵화 협상만 해도 벌써 25년째인데 정말 의사소통이 문제가 되나요?

    ◇ 홍제표 > 북한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 통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감한 협상에서는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오해가 생길 여지가 큽니다. 특히 북미관계처럼 뿌리 깊은 불신에다 고의적인 왜곡까지 더해지면 결과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한일 월드컵 직후인 2002년 10월 평양에서 벌어진 강석주 외무상 제1부상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대화 한 토막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 임미현 > 2차 북핵위기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죠?

    ◇ 홍제표 > 그렇습니다. 당시 강석주는 비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켈리 일행에게 “핵보다 더 한 것도 가지게 돼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통역 또는 해석상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직도 설이 엇갈리긴 하는데, 일단 북한은 “was entitled to possess”로 통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이 말을 ‘자격이 있다’ ‘권리가 있다’로 해석하지 않고 ‘곧 가질(보유할) 예정’이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은 좀 다르게 기억하지만 맥락은 같습니다. 북한 측 통역이 ‘entitled’이란 표현을 아예 빼버리는 거친 통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논란의 여지없이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시인한 꼴이 됩니다. 이후 상황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위반했다고 몰아붙였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응수하면서 한반도는 다시 위기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북한이 정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는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입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쪽 인사들은 당시 미국 정보에 의구심을 보이면서 북핵 해결의 기회를 날려버린 안타까운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임미현 > 사실 “더 한 것도 가지게 돼있다”는 말은 우리가 들어도 헷갈리고 애매한 표현 같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습니까?

    ◇ 홍제표 > 뜻은 누가 들어도 분명한데 해석이 달라지는 사례입니다. 대표적인 게 주한미군 철수 주장입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정의가 무엇이냐가 요즘 ‘핫’한 주제가 되고 있고, 앞으로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 더 뜨거워질 문제입니다. 이 사안에 대한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 중요한 점은 북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임미현 >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미군 철수 주장이 북한의 본심이 아니란 말인가요?

    ◇ 홍제표 > 북한이 대남선전기구 등을 통해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주한미군 용인’ 발언을 했다는 것 또한 거의 정설입니다. 물론 공개 발언이 아니기에 구속력은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한미군 용인이 북미수교를 위한 협상카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비핵화(및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협상 과정에서 기존 입장(미군 철수)이 달라질 소지가 충분합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은 비핵화 협상과 상관없는 사안이며 한미 양국이 동맹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주변국, 특히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북한도 다르지 않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최근 방한한 조엘 위트(38노스 운영자)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반농담식으로 말하자면,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진짜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김 위원장이 먼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 그렇게 빨리는 아니고요’라고 달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임미현 > 그렇다면 지금 북미관계의 대치 국면도 소통 부재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까요?

    ◇ 홍제표 > 그 연장선상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몰라서 오해했던 측면도 있었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편향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양측 불신과 적대가 그만큼 커진 탓이죠.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2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미 간 주장이 엇갈리고 심지어 우리 정부 내에서도 분석이 다를 정도입니다. 진단이 제각각이니 처방이 제대로 나올리 만무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2002년 당시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으로 2차 북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존 볼턴이 17년만에 하노이 회담의 악역으로 재등장한 것입니다. 네오콘(초강경 신보수주의자)의 부활을 방불케 하는 ‘볼턴 타임’이 시작되면서 협상파인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도 입장을 180도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임미현 > 이런 점에서 북한과 미국을 둘 다 잘 아는 한국의 중재 역할은 여전히 크다고 생각되는데요.

    ◇ 홍제표 > 물론입니다. 북미 양측을 언어 뿐 아니라 배경과 상황까지 깊은 맥락(context)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중재자이기 이전에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지난 16일 미 스탠퍼드 대학 강연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은 한국이 학습한 방법에 대해 받아들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의 국제적 파워와 한국의 북한에 대한 문화적 이해는 북한 문제 해결에 강력한 조합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침 청와대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일종의 절충안을 갖고 북미 간 설득에 나섰는데 한국 역할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응원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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