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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를 넘어서



인권/복지

    장애등급제 폐지를 넘어서

    • 2019-04-10 09:10
    [편집자 주] '포용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중 하나다. 이에 발맞춰 올해부터 아동수당, 돌봄교실이 큰 폭으로 확대되며 '사회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복지는 삶의 질 향상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우리나라의 현 사회복지가 어떤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우리 사회복지의 실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을 통해 정책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칼럼을 연재한다.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장애인의 종류 및 기준)와 [별표 1]을 통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총 15종)와 기준을 정하고 있고, 시행규칙 제2조(장애인의 장애등급 등)에서는 장애 종류와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들어 보건복지부가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 등을 새롭게 신청하는 사람에게 장애 상태와 등급의 심사를 의무화하면서 장애등급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다.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장애인의 교육, 고용, 소득, 의료, 주거 등 다양한 복지 영역의 욕구를 장애등급 한 가지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대법원이 의뢰하여 수행된 '한국장애평가기준개발사업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둘째는 인권의 문제이다. 사람을 함부로 분류하고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그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서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참석자들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번영 농성 투쟁 보고 및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애등급제의 이러한 문제점을 비롯하여 장애인 등록제, 판정 절차 등 장애인 등록․판정 체계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자 보건복지부는 2010년 11월 2일에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을 구성하였다. 또한 이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의 해산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이 보건복지부는 2013년 4월 15일에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기획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다 2014년 들어서는 4월 4일에 보건복지부가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이라는 세 번째 회의체를 구성하였다. 2017년 8월 25일에는 광화문역 지하도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하여 장애인단체 대표들과 진행한 간담회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이에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었다. 필자는 장애등급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장애계에서 요구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서 운영되어 온 네 개의 민관 회의체 모두에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네 번째 민관 회의체인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에서는 그동안 10차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2017년 12월에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도입․실시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올해 7월 시행을 앞둔 개정 법률의 주요 내용을 보면, 장애인 등록제는 유지를 하되 '장애등급'이라는 용어를 '장애정도'로 개정하여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할 예정이고, 6등급의 세분화된 장애등급 구분은 폐지가 된다. 또한 활동지원, 보조기기, 거주시설 등은 장애등급에 따른 제한 없이 모든 장애인이 신청 가능하되 실제 서비스 필요도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서비스를 지원하는 종합조사를 도입하게 된다.

    그러면 장애등급제는 올 7월이면 실제로 폐지가 되는가? 아니다. 여섯 개의 장애등급이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많은 서비스에서 1~3급과 4~6급이 구분되어 적용되고 있었으므로, 장애등급을 중․경증으로 단순화한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바뀔 것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6등급에서 중증과 경증이라는 두 개의 등급으로 축소가 될 뿐 장애등급제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중증과 경증의 구분은 한시적일 뿐 궁극적으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는 하고 있으나, 근 10년 동안 주장되어 온 장애등급제 폐지의 결과가 이러할진대 과연 이 두 개의 등급은 또 언제 폐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이 두 개의 등급을 언제 폐지한다는 로드맵도 제시된 바가 없다.

    그러면 장애등급을 대신할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실제로 도입될 것인가?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전혀 '종합적'인 것이 아니다. 

    이 조사표는 기존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보다 오히려 기능제한을 측정하는 접근을 강화하고 있고, 장애인의 욕구나 "실제 서비스 필요도"를 조사하는 것과는 무관하며, 장애인의 사회적 환경을 측정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더구나 새로운 종합조사표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의 경우에 월 평균 9.12시간 정도 급여가 감소될 수도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촉구하는 장애인들(사진=연합뉴스)

     

    이러다보니 그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기울여 왔던 노력의 결과 우리나라에서 실제적으로 바뀐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네 개의 민관회의체 모두에서 기울여 왔던 나름대로의 열심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에 심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이런 상황 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운 서비스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기존 서비스의 양도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등급제를 "진짜로" 폐지하라는 투쟁을 선포하며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된 예산의 확대를 정부에 요구하는 지금의 모습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만 확대되면 기존의 6등급이 2등급으로 바뀌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장애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대신에 선진국처럼 개인의 욕구와 환경에 기초한 서비스별 장애 사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장애인에게 굳이 등급을 매기지 않더라도 복지 영역별로 장애인의 욕구를 측정하는 다양한 도구를 채용할 수 있으며, 장애등급제를 똑같이 채택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런 방식으로 별 무리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에 '장애인 지방센터'(La Maison Départementale des Personnes Handicapées)에서 의사,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종합사정팀이 신청인의 장애 판정 및 서비스 욕구 사정 등을 하면, 그 작성된 평가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 권리 및 자립위원회'(Les Commissions des droits et de l'autonomie des personnes handicapées)가 보건의료 서비스, 각종 수당, 세금 면제, 장애인 카드, 옹호․상담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의 제공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므로 현재 제안된 종합조사표가 기존의 인정조사표의 미시적 변화에 불과하다면, 진정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평가하고 이와 더불어 장애인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는 변혁적인 측정도구가 개발되어야 한다. 나아가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양만큼 제공하려면 전달체계의 대대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나아가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넘어서 장애인 등록․판정 체계와 관련하여 개선할 여지가 많다. 우선, 장애 범주를 더 확대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특히 WHO의 권장에 따라 장애의 범주에 만성 알코올․약물 남용, 암 등의 장애를 포함해 범주를 더 확대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장애 범주를 확대하는 쪽보다는 사회적인 내지는 종합적인 장애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좀 더 나아가자면, 관 주도의 일제적인 장애인 등록제를 폐지하고 서비스별 신청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어떤 서비스가 주어지든 일단 장애인 등록부터 하라고 하는 것은 '빅 브라더'적인 발상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장애 등록 후 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이 64.2%에 달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등록을 해야 우리나라 장애인의 수를 파악하고 예산을 배정하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같은 이유로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의 위원 중에 장애인단체 소속 위원을 포함하여 누구도 필자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전자바우처의 사용 내역이 낱낱이 사회보장정보원에 기록되는, IT의 첨단을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관 주도의 일제적인 장애인 등록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장애인의 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다소 궁색한 느낌이 든다.

    물론 장애등급제가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장애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장애인 등록제를 폐지하자는 것이 조금은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참에 이 문제들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선진국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현실만 반복적으로 주장한다면, 장애 등록․판정 체계가 선진화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사라져버리고, 후진적인 장애 등록․판정 체계 그리고 충분치 않은 예산과 그에 따른 빈약한 서비스 양 하에서 장애인의 생존권이 심대하게 위협받는 악순환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글 싣는 순서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릴레이 칼럼
    ① 절망적 아동복지예산
    ② 포용국가와 사회복지
    ③ 사회복지사 임금과 전문성
    ④ 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⑤ 노동절 특집, 인권 문제 단상
    ⑥ 노인 빈곤율과 저출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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