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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화폐단위 변경', 성공사례 극히 드물다?



경제 일반

    [팩트체크] '화폐단위 변경', 성공사례 극히 드물다?

    • 2019-04-18 04:05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으로 재점화됐다.

    지난달 25일 이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그야말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연구는 꽤 오래전에 해 놓은 게 있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액면가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화폐에서 0을 제거해 화폐 단위를 작게 만드는 식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마지막 리디노미네이션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2년이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 실행에 대한 우려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을 지적한다. 일부 누리꾼들은 "아무 것도 하지마라"며 화폐개혁에 불편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화폐개혁으로 성공한 사례는 세계 역사상 극히 드물다"며 "대부분 카드결제로 거래하는데 화폐단위가 큰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화폐개혁, 그중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성공한 사례는 정말 드물까?

     

    ◇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등 성공 사례 존재

    세계 여러 국가들 중 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한 국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1960년 이래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사례는 60여회가 넘는다. 그 중엔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을 비롯해 한국도 포함돼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성공적인 리디노미네이션 사례로 꼽힌다.

    1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진 인플레이션으로 대외가치가 낮아진 프랑스 화폐의 가치를 종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5년 이후로 시계를 돌려도 성공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이후엔 터키, 루마니아 등 약 11개국이 화폐단위를 바꿨다.

    2005년 이후 외국 리디노미네이션 사례

     

    그중에서도 터키는 대표적인 화폐개혁 성공 사례다. 화폐 액면가를 변경하면서 물가 안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터키는 2005년 1월부터 기존 화폐를 100만분의 1로 낮추는 동시에, 화폐 명칭 또한 리라에서 신 리라로 바꿨다.

    2001년 68.5%까지 달했던 터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05년 8.2%로 내려갔다.

    터키 외에도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순방에 나선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리디노미네이션에 성공한 국가로 인정받는다.

    옛 소련 공화국이었던 투르크메니스탄은 달러 등 여러 통화가 유통되면서 공식 환율과 실제 시장 가격 간에 차이가 벌어졌었다.

    이에 투르크메니스탄은 2009년 기존 화폐를 5천분의 1로 절하하며 새로운 화폐 체계를 정립했다.

    당시 투르크메니스탄 국영통신사 TDH는 "새 지폐들이 도입되면 투르크멘의 국제신용도 향상과 외국인의 국내투자 증대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자국인의 해외차입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화폐개혁 이후인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컨설팅 전문가인 오케 론버그(Åke Lönnberg)는 '금융 및 발전 보고서'에서 "여러 면에서 2008~2009년 투르크메니스탄의 화폐 개혁은 다른 나라의 모델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들 국가 외에도 루마니아, 아제르바이잔 등의 국가들도 리디노미네이션 성공 사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 실패한 화폐개혁, 사회혼란만 가중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은 자금 유출이나 물가 상승 압력, 국민들의 불안심리 자극 등의 부작용이 있다.

    그렇다보니 짐바브웨와 북한, 베네수엘라 등 리디노미네이션의 역효과를 잡지 못하고 화폐개혁에 실패한 국가 또한 존재한다.

    이들 국가들은 물가 상승을 잡기는커녕 사회 혼란과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 하락만을 가져온 경우다.

    짐바브웨는 2006부터 3차례에 걸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하지만 연 2천만%에 달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기엔 무리였다.

    특히 2009년 짐바브웨 정부는 '1조대 1' 화폐액면가 변경을 시도했으나 자국 화폐에 대한 신용만 낮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도 화폐개혁 실패 사례에 해당한다.

    북한은 2009년 화폐가치를 100분의 1로 낮추는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식량수급 불균형 등 사회혼란만 겪었다.

    김창희 전북대 교수가 작성한 논문 '북한 시장화와 화폐개혁의 정치‧경제적 분석'(2010)에 따르면 북한 김영일 당시 내각총리가 1월 31일 평양내각 총회에서 화폐개혁과 시장폐쇄의 부작용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의 화폐개혁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리디노미네이션과 같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북한은 신권을 교환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고 외화의 직접적인 사용을 통제하는 등 시장경제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화폐개혁을 추진했다.

    ◇ '저물가' 한국의 리디노미네이션은?

    현 시점에서 논의되는 한국의 리디노미네이션은 외국 사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터키나 짐바브웨 등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리디노미네이션은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추진됐다.

    특히 식민지 독립 이후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겪은 개발도상국들이 주로 화폐 개혁을 실행했다.

    하지만 '0%대' 저물가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가 침체돼 디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 한국에서의 리디노미네이션은 국가에 돈이 돌게 만들자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즉,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키고 소비를 진작시켜 내수 부양 효과를 노린다는 말이다.

    또한 일각에선 화폐 단위를 줄여 편의성을 늘리고 국제적 위상도 높이자는 점을 들어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달러와의 교환비율이 4자리다.

    OECD 주요국 달러 환율

     

    2015년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을 주장했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당시 발간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에서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울 만큼 단위가 크고 복잡하다"며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세계 13등이지만 화폐의 가치는 200등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만일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할 경우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시행 초기 점진적으로 화폐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 시행 이후의 물가안정대책 등 사회 안정을 뒷받침할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익 교수는 "프랑스 화폐개혁의 성공요인은 단계적인 정책 시행에 있다"며 "국민들이 새 돈으로 바꿀 충분한 기간을 준다면 사회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영목 충북대 교수 또한 2010년 논문 '우리나라 통화개혁의 비교 연구'에서 "통화개혁 이후에 물가안정 또는 환율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안정화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통화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정당화하는 정책으로 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합하자면, 프랑스, 터키 등 리디노미네이션에 성공한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성공 사례가 없다는 것은 '대체로 거짓'이다. 하지만 실패 사례 또한 발견되고 있어 화폐개혁을 시행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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