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위안부(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소송과 관련한 보고서를 쓴 현직 판사가 법정에 나와 당시 심경을 밝혔다.
사법농단 재판으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소송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에 대한 공판에 조모 판사를 증인으로 소환했다. 조 판사는 2015~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소멸시효 등을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넣어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상황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201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조정 신청을 했다가 2015년 한일 합의 직후 '조정하지 아니하는 결정'으로 사건이 종결되자 2016년 1월 법원에 본안 소송을 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당시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사건 검토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판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소멸시효를 언급하면서 '어려운 사건 아니냐. 검토해보라'고 말했다"며 부정적인 결론을 원하는 취지로 임 전 차장이 지시했음을 언급했다.
이어 "강제징용의 경우 (2012년) 대법원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결한 것을 말씀드렸더니, '그것은 소부판결로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며 "속으로 대법관이 판결한 것인데 소부판결이라고 해서 뜻밖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법원 정문 앞. (사진=황진환 기자)
결국 조 판사는 위안부 손해배상판결 관련 보고서에 '불법행위로 인한 청구권은 시효 소멸하지 않는다는 강제징용 사건 결론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적시하면서도, 종합검토 및 결론에서는 '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하면 개인청구권 소멸했다고 판시함이 상당함'이라고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조 판사는 이에 대해 "(임 전 차장의 생각과) 상충되다보니 내적인 갈등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의 최종 결론 부분에 '공시송달에 의해 계속 재판함이 타당하며 원고 소취하를 시도해야 함'이라고 적은 것과 관련해서도 해명했다. 조 판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싶은 마음에 소를 제기했는데 그것을 각하하면 너무 허망할 것이고 공시송달이라도 해서 조정이나 화해 기회를 마련했으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하 판결을 하더라도 반인권적인 범죄행위라고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차장님께 그런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었고 나중에 (피고인이) 대법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이런 것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당시 위안부 사건을 검토할 때 피해자 측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심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 판사는 "다른 것도 아니고 위안부 사건 피해자들에 시나리오를 정해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재판부 판단의 타당성을 외부에 설득하고 방어하는 정도의 당연한 업무라고만 생각했다"며 울먹였다.
이어 "이런 일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판에 부담이 되거나 방해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