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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철도 국책사업에 '도둑맞은' 삶의 터전…주민 '분통'



영동

    [단독]철도 국책사업에 '도둑맞은' 삶의 터전…주민 '분통'

    [동해중부선 전철화 '잡음'①]
    "평생 일궈온 토지인데 나가라니"…주민들 '날벼락'
    '현대판 토지강탈' 논란…"우리나라가 독재국가냐"
    "등기부등본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피해자 속출

    남북경협 사업 중 하나로 동해선 국책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2단계 구간(영덕~삼척) 중 마지막 역사 장소인 삼척시에서 때아닌 '토지 강탈' 논란이 일고 있다. 동해중부선 철도 사업에 떠밀려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강원영동CBS가 집중 취재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철도 국책사업에 '도둑맞은' 삶의 터전…주민 '분통'
    (계속)


    삼척시 마달동의 한 마을에 철도 이주단지 지정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지금 강원 삼척시 마달동의 한 마을에는 '마달동 다 죽이는 토지수용 결사반대', '갑질하는 것이 공익사업이냐!!', '내 땅 위에 이주단지 나는 죽음'이라고 쓰인 '처절한'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온갖 밭작물과 나무 등으로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땅에 인적도 드물어 더욱더 평화로워 보이는 이 마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평생 일궈온 토지인데 나가라니"…주민들 '날벼락'

    현재 마달동 주민들은 5~6km 떨어진 오분동 지역민들에게 자신들의 거주지를 내어줘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동해선 포항~삼척 철도건설사업' 계획에 따라 철도가 오분동 지역을 관통하게 되면서 해당 주민들이 다른 거주지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마달동 지역이 '집단이주 단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과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공익사업으로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자를 위해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사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오분동 지역민들이 이주를 희망하자 부지를 찾던 중 마달동 일원을 찾았다.

    주민 전상학(46)씨가 집단이주 지역으로 포함된 마달동 일대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하지만 정작 마달동 토지 소유자들은 관련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의 토지를 내주고 쫓겨나야 한다는 '일방통보'를 들은 것은 지난해 9월쯤. 국토교통부의 관련 사업 확정 고시가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이와 달리 이주를 결정한 오분동 주민들에게는 국토부의 확정 고시 전인 지난해 7월 이미 주민설명회도 개최하는 등 안내가 진행됐다.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동안 일궈온 토지가 하루아침에 '집단이주' 지역으로 선정돼 '내쫓기게 됐다'는 현실은 주민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철도공단은 국토부의 확정 고시로 결정된 것인 만큼 절차에 따라 용지 보상 수순을 밟고 있어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은 강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현대판 토지강탈' 논란…"우리나라가 독재국가냐"

    김영숙(여·52)씨가 키우는 밭작물로, 김씨는 뒤쪽에 마련된 컨테이너 건물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진=유선희 기자)

     

    노후준비를 위해 지난 2012년 마달동 일대의 한 땅을 구매해 콩이나 각종 채소를 심고 있는 김영숙(여.52)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지고 있던 현금을 다 모아서 투자한 '노후 준비'가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는 생각만 하면 억울함이 솟구치는 까닭이다.

    "저뿐만 아니라 여기 땅 가지고 계신 분들은 다 목적이 있거든요. 먹고 사는 것이 달린 땅이고, 곧 '생명'이에요. 아무리 국책사업이라도 어떻게 땅 소유자들에게 말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나요. 국가라는 '명패'를 달고 정작 숨어서 일을 진행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고요. 저희는 그저 땅을 '도둑맞은' 느낌입니다."

    강석만(64)씨가 자신이 키우는 밭작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조부모 시절부터 물려온 토지 2800평을 소유하고 있는 강석만(64)씨도 속앓이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전 공지 없이 진행된 국책사업에 대대손손 이어진 '유산'이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하지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강씨는 삼척시에서 진행하는 공사를 원활히 해주기 위해 직접 자신의 땅 700평을 내어 줬는데 돌아온 것은 '토지 강탈'이라는 사실에 허망하기까지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달동 일대가 원래 구릉지였거든요. 시에서 농지개발을 목적으로 흙을 쌓아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한 번에 땅을 다 메워 버리면 비가 왔을 때 물이 빠질 공간이 없어 애를 먹고 있길래, 제가 땅 700평을 내어서 저류조를 만들도록 도움을 줬거든요. 그런데 정작 이 일대가 집단이주 단지로 선정됐다고 해요. 그럼 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제 땅을 내어준 겁니까? 심정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이 때문에 마달동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독재 시절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현대사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석만씨가 자신의 땅 700평을 내어 만든 저류조. (사진=유선희 기자)

     

    ◇ "등기부등본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피해자 속출

    이런 가운데 지난해 확정 고시가 나기 전인 8개월 동안에만 마달동 일대에서 땅 거래가 3건 진행됐다. 땅 소유자 중에는 확정 고시 소식을 들으면서 토지소유권 이전이 이뤄진 이도 있었다.

    등기부등본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타의적으로' 땅을 반납하게 된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건물을 짓기 위해 지난해 2월 570평의 땅을 구매한 전상학(46)씨는 "좋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직접 뛰어다니면서 고른 땅인데 확정 고시를 이유로 나가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관련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예 땅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전씨는 "지난해 한 평당 51만원을 주고 땅을 샀는데, 공단에서 제시한 보상가격을 보니 절반밖에 미치지 않는 29만원이었다"며 "시세도 반영하지 못한 감정평가는 문제가 있다"고 일갈했다.

    전상학씨가 구매한 부지로, 현재 이 일대가 확정 고시가 나면서 건물을 세울 수 없게 돼 임시로 공간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확정 고시가 나면서 건물을 세울 수 없게 된 전씨는 현재 임시로 만든 천막에서 생활하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편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최근 감정평가가 다시 이뤄졌지만, 가격이 소폭 오른 것에 불과해 땅 소유자들은 여전히 보상가격이 낮다고 반발하고 있다.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기본적인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일부터 삼척시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짙은 울분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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