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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사람들…性 착취·상품화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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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를 증오한 사람들…性 착취·상품화 '악순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제2강]
    1970년대 말 미국에서의 포르노 논쟁들(배상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강사)

    '포르노'(porn)는 여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대상화 한 영역으로 분류돼 왔다. 21세기에는 '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라는 이름의 '불법촬영물'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성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 힘을 얻었다. 지금 한국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미국의 1970~80년대 '포르노 전쟁'을 살펴보고,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진 위부터 순서대로 래퍼 키디비(왼쪽)와 블랙넛(사진=브랜뉴뮤직·저스트뮤직 홈페이지 각각 갈무리),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 광고 중 일부. 아동 모델의 2차 피해가 우려되어 논란이 된 장면은 넣지 않았습니다. (사진=광고화면 캡처)

     

    노래 가사나 광고 등 대중문화 속에서 이뤄지는 여성 착취적 재현과 성 상품화.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포르노와 페미니스트'의 두 번째 강의에서는 '1970년대 말 미국에서의 포르노 논쟁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됐다.

    ◇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배상미 강사는 블랙넛의 모욕죄 논란과 어린이 모델에게 풀 메이크업을 시키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클로즈업한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 광고의 '성 상품화' 논란을 예로 들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0부는 모욕죄 혐의를 받는 블랙넛에 대한 항소심 선고에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라며 항소를 기각했다.

    자신의 음악이 '표현의 자유'라는 블랙넛 측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공연 행위나 음반 발매,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그와 같은 공연과 그에 관해 가사를 쓴 맥락, 공연 행위 등은 모두 일방적인 성적 요구 해소 대상으로 삼아 비하하거나 반복해서 피해자를 떠올리게 하거나, 'XX녀'라고 조롱하거나 직설적인 욕설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욕죄가 된다고 판단된다"라고 판시했다.

    또한 어린이 모델에게 풀 메이크업을 시키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클로즈업한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 광고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 상품화'로 보고 중징계를 추진하기로 했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공적 매체로서 어린이 정서 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이 있는 방송사가 화장한 어린이를 출연시켜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광고를 방송한 것은 방송사로서의 공적 책임을 방기한 심각한 문제"라며 제재 이유를 밝혔다.

    배상미 강사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포르노와 페미니스트' 두 번째 강의 '1970년대 말 미국에서의 포르노 논쟁들'에서 포르노를 둘러싼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일련의 사례에 대해 배 강사는 다음의 질문을 던졌다.

    #_문화의 영역에서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 하는 표현은 규제되어야 하는가?

    #_법의 영역으로 여성 혐오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문제인가?

    #_표현의 자유 규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는가?

    배 강사는 "블랙넛의 키디비 모욕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났을 때 문화 정책 관련 연구자인 한 페미니스트는 칼럼을 통해 표현의 자유 규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오히려 위험이 될 것이라 말했다. 사회의 공공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특정 발언이 규제되기 시작하면 페미니스트가 하는 발언들, 문화적 표현물도 똑같이 규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라며 "법의 영역으로 여성 혐오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페미니즘 내에서도 있다"라고 말했다.

    배 강사는 "어떻게 보면 페미니즘이라는 건 기성 권력과 싸워서 권리를 쟁취해야 하고, 미투 운동도 결국 권력을 가진 성폭력 가해자와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해 성취해내는 과정이다. 버닝썬 사태, 고(故)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 기득권 세력이 결코 페미니스트적인 게 아니다"라며 "블랙넛 사건과 같은 사건 몇 개가 마치 기존 기득권들이 페미니스트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 강사는 "이런 상황이 미국에서도 이미 1970년대 말에 반복됐다"라며 "미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비교해보면서, 오늘날 표현의 영역과 재현의 영역에서 여성 혐오나 성 폭력적 재현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 나오는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이런 상황을 토대로 페미니즘적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 남성 중심적 성문화와 래디컬 페미니스트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는 반전운동, 반(反)권위주의 운동의 성장과 함께 성적 보수주의에 도전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성적 엄숙주의에 대한 도전적인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앤디 워홀의 영화 '블루 무비(Blue Movie)'(1969)다. 다양한 성행위 재현에 사람들은 매료가 됐고, 이후 미국에서 포르노 영화 전성기의 시발점이 되는 영화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블루 무비'에서도 페미니즘적인 섹슈얼리티 재현은 없었다. 여성은 여전히 '타자'로 남아 있고, 남성 중심적인 성문화가 지속됐다.

    이후 1960년대 말 성해방 운동이 여성해방운동의 하나의 조류가 아니라는 게 점차 명백해졌다. 성별 이분법을 전제하고 모든 형태의 사회적 지배는 남성 우월주의에 근거했다고 파악,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모순으로서의 남성 우월주의를 지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을 정리한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의 저자이기도 한 수잔 브라운 밀러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수잔 밀러는 강간이 단순히 성폭력이나 한 사람의 성적 자유 의지를 범하는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남성 중심주의 사회 질서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앤디 워홀의 영화 ‘블루 무비’ (사진=imdb 제공)

     

    ◇ 포르노 반대운동의 의의와 한계

    이후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스너프 필름'(snuff film·실제로 행해진 성행위 장면이나 잔혹한 살인 장면 따위를 찍은 영상물)이 성장하면서 '포르노', 즉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1976년 결성된 WAVAW(Women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와 WAVPM(Women Against Violence in Pornography and Media)이 있다.

    WAVAW가 검열하지 않는 선에서 여성 혐오 재현물을 비판하고자 했다면, WAVPM는 WAVAW보다 급진적이었다. WAVPM는 광고, 대중문화에 재현된 여성 이미지를 비판하고, 포르노 잡지에 대한 보이콧을 진행했으며, 법으로 포르노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977년 이후 '반포르노 운동'은 여성운동의 중심이 됐고, 수잔 브라운 밀러를 중심으로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WAP(Women Against Pornography, 1979)가 결성됐다.

    배 강사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사회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인데, 마치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가 없는 사람처럼 재현되니 포르노가 문제라고 생각했다"라며 "그러나 미국 수정헌법 1조(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의 가치를 지켜야 하니, 포르노를 규제하고 제한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 강사는 "반면 WAVPM은 수정헌법 제1조 지켜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대응할 논리를 펼친다. 수정헌법 1조도 남성들만 지켜지고 있으며, 남성들만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여성은 '대상'일 뿐이고, 헌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포르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도 '포르노'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과 논의들이 오갔다. 배 강사는 포르노 반대운동의 의의에 대해 △대중적 재현물들의 남성 중심성 폭로 △정치적 의제 안에 여성의 자리가 없음을 문화적 상황으로 입증 △페미니즘 운동의 활성화로 정리했다.

    이어 운동의 한계에 대해 배 강사는 "어떻게 보면 포르노가 있어야만 페미니즘 운동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됐다. 포르노가 없어지고, 여성 혐오적 재현물이 없어지면 페미니즘 운동은 무엇을 하는냐는 의문이 나타났다"라며 "남성 중심적이지 않은 문화생산은 어떻게 하지? 이분법적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의식도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 베티 프리댄 '여성성의 신화'

    - 수잔 브라운 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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