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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교육

    "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획일적인 학교건축, 심폐소생이 필요하다②]
    "수업 시작하면 복도 죽은 공간 돼"
    영국 학교, 지역사회 밀접하게 공존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자체 승인 받아
    학업성취도도 올라…학생들 '만족'

    포스터앤파트너스는 지난 10년 동안 영국에서 9개의 학교를 만들었다. 폴 칼호벤 부사장은 복도, 계단 등을 언급하며 건물 구석구석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며 건축설계를 통한 자유로운 움직임이 사회적 문제를 제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칼호벤 책임자가 디자인한 토마스 데콘 아카데미. (사진=포스터앤파트너스 제공)

     

    "학교가 안에 갇혀서 공부하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지난 7월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 경의 건축설계업체인 '포스터앤파트너스(Foster + Partners)' 런던 사무실에서 폴 칼호벤(Paul Kalkhoven) 기술 설계 책임자는 국내 학교 사진을 확인한 뒤 조심스레 말했다.

    그가 본 사진에는 직사각형으로 이뤄진 국내 학교 외관과 네모난 교실의 풍경, 그리고 길게 뻗어있는 복도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다시 한 번 학교 복도 사진을 바라본 뒤, 사용되지 않은 공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수업이 시작하면 이 복도는 죽은 공간이 된다. 선생님이 교실 안이 아닌 복도에서도 아이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공간에 대한 유연성을 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용되지 않은 공간을 열어 좀 더 유동적인 공간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칼호벤 책임자는 "학교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떻게 시설이 이용되는지를 바라봐야 한다"라며 "학교가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하나의 커뮤니티로 다가갈 수 있도록 건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경우) 학교 설계를 할 때 지역사회를 고려하며 진행한다"라며 "학교가 저녁에 사용되지 않을 때, 지역주민들이 학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호벤 책임자는 '서클 배스 병원(Circle Bath Hospital)', '스탠스 데드 공항(Stansted Airport)', '런던 아카데미(London Academy)' 등과 같은 다양한 공공기관 및 학교를 설계했다. 이 가운데 학교 복도 한 가운데 도서관이 있는 '토마스 데콘 아카데미(Thomas Deacon Academy)'는 지역 커뮤니티로 꼽힌다. 지역 주민들이 강의극장, 아트리움, 식당 등과 같은 학교 시설을 사용할 수 있어 지역 사회 중심의 학교로 자리매김을 했다. (사진=정재림 기자)

     

    학교를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은 영국 내에서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 1930년 지역주민의 평생교육을 위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해 1976년 평생교육법이 제정됐고 1998년에는 시설 및 투자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자원관리계획'이 수립됐다.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학교시설 복합화'가 나타난 배경이다.

    여기에 영국 정부가 2003년 2월 노후화된 학교 시설을 교체하고 세계 수준의 선진교육 환경을 실현하기 위해 발표한 '미래를 위한 학교 건립(Building Schools for the Future, 이하 BSF)'이 나오면서 학교는 시설 면에서도 한층 개선됐다.

    'BSF'가 궁금해요.
    BSF는 2020년까지 중등(Secondary)학교에 450억 파운드(한화 66조8400억 원)를 투입한 뒤, 신축 또는 재건축을 통해 최첨단 시설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국 정부의 국가주도 사업이다. 학교를 통한 지역 사회와의 연계 방안까지 담고 있다 보니 교장, 학생, 지역 사회 구성원들도 이 사업에 참여한다. 당시 사회적 빈곤 지역을 대상으로 BSF 지원에 나선 결과, 학교의 시설 공간은 개선됐고 이로 인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또한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BSF가 단순히 학교건물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투여 사업으로 평가받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BSF는 2010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막대한 예산 지출이라는 비판과 함께 무산됐다.
    주목할 점은 이 사업의 기획과 학교신축을 위한 최종 입찰자에 대한 결정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행정자치', '교육자치'로 이원화된 한국과는 달리 영국의 지방자치단체장은 교육의 책임을 지고 있기에 학교 설계를 할 때도 지역 사회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칼호벤 책임자는 학교를 설계하는 데에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거나 예산을 집행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의 예산을 받는 국내 학교 설계 현장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셈이다.

    그는 "학교가 정부로부터 펀딩 및 예산에 대한 부분들을 받아오면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서 건물을 설계했다"라며 "설계를 하면서 안전, 교실 면적 등과 같은 정부가 내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을 지키면 (정해진) 예산을 집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칼호벤 책임자는 학교 교장의 의지 또한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에서 학교 교육 방향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면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서 과목에 대한 계획 및 구성을 하게 된다"라며 "학교 지을 당시 교장 선생님이 교육에 대한 공간을 신경 쓰고 이를 건축을 통해 공간을 마련한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학교 가보니…지역 사회 공존하고 운동장 같이 사용하고

    넓은 복도(왼쪽) 양 옆에는 교실이 위치한다. 학교 정문 출입구(오른쪽)에는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캐피털시티 아카데미는 BSF 첫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사진=정재림 기자)

     

    실제로 영국 학교는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 가운데 런던 북서부 윌스던(Willesden)에 위치한 '캐피털시티 아카데미'의 변화는 눈에 띈다. 2003년 이전에 '윌스던 하이스쿨(Willesden high school)'이었던 학교는 당시 상대적으로 빈곤 지역에 위치해 학교 시설이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교육 기회에 대한 차별과 학업 성취도가 낮다고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2003년 영국 정부로부터 BSF 첫 지원을 받은 이 학교는 캐피털시티 아카데미로 탈바꿈한다. 캐피털시티 아카데미는 지역사회와 다양한 파트너십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와의 연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부실 학교로 평가받던 학교는 2019년 직업교육 평가 전문기관인 교육기준청(Ofsted) 결과에서 2등급(Good) 평가를 받은 것이다.

    마리안 진스(Marianne Jeanes) 캐피털시티 교장은 "교육기준청이 발표한 자료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평가 한다"라며 "이 지역엔 빈곤층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범죄나 마약 등 사회적 범죄에 노출 되지 않도록 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평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안 진스 교장(좌측)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공간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학생들의 태도에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캐피털시티 아카데미 학생들(우측)은 좋아하는 학교 공간으로 도서관, 운동장 등을 꼽았다. (사진=정재림 기자)

     

    진스 교장은 그러면서 "(지역사회와) 같은 시설을 사용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다 보니 학생 부모들도 학생들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 한다"라며 "(지역사회에) 스포츠 대회, 축제, 방과 후 수업, 댄스 아카데미 등과 같이 학교 시설을 빌려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학생들이 학교 시설을 자기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책임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다"라며 "학교를 공유하는 책임에 대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생들은 지역 사회와 함께 시설을 쓰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아미라 분콤베(Amira buncombe. 14)군은 "주민들이 이런 공간이 없다. 이런 공간을 서로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좋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인 인디야 루이스 브라운(Indya-louise brown, 14)양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좋다"라며 "교내에서 스포츠 이벤트 같은 행사가 있을 때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브릿지 아카데미(Bridge academy)는 2007년 글로벌 금융기업 USB의 민간투자를 받아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해크니(hackney) 구에 설립됐다. 배의 모양을 띈 학교는 USB와 해크니 구청이 공동으로 만들었다. 운동장은 지역 공원에서 낮에는 학생들이 밤에는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사진=정재림 기자)

     

    2007년 런던 북동부 지역인 쇼디치(Shoreditch)에 설립된 '브릿지 아카데미'도 지역사회와 함께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가까운 공원에 운동장을 만들어 낮에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저녁에는 지역 주민들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학교 교육에 자원 봉사하는 지역 주민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브릿지 아카데미 관계자는 "부족한 면적을 지역사회와 함께 활용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도 지하 체육관을 이용하며 시설을 공유한다"라며 "현재는 학생 수가 크게 증가한 나머지 교실이 부족해 재건축을 할 정도"라고 밝혔다.

    다만 브릿지 아카데미 관계자는 한국 학교만의 특색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영국 학교의 공간은 창조성, 다양성을 장려해 오히려 숨겨진 공간이 생기는 반면, 한국 학교는 폐쇄적이지만 (교사가 학생들을) 감시하기 좋은 구조"라며 "학교마다 독특한 가치에 자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획일화도 좋은 쪽으로 가면 좋고 나쁜 쪽으로 가면 나쁠 것"이라고 밝혔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 "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계속)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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