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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애등급제 폐지와 맞춤형 복지는 당면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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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장애등급제 폐지와 맞춤형 복지는 당면과제

    4·15 총선을 맞아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공약 제안 작업의 하나로 CBS노컷뉴스와 복지국가실현연대 총선지원단이 각계 전문가의 기고글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의 복지 실태를 점검하고 사회복지 정책의 중장기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편집자 주]

    김용득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자율학부 교수

     

    대법원은 지난 2019년 10월 31일에 우리나라 장애인등록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판결을 하였다. 틱장애(뚜렛증후군)로 중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A씨가 양평군에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고, 양평군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정하고 있는 장애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했다.

    A씨는 양평군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고, 이에 대해 대법원은'해당 장애가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면서 틱장애를 가진 사람의 장애와 가장 유사한 장애유형에 관한 규정을 유추 적용하여 장애등급을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면 국가는 미리 정해 놓은 열다섯 가지 유형의 장애에 해당하느냐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어려움의 정도를 살펴서 평등하게 지원하라는 판결이다. 장애 종류를 법령에 미리 정해 놓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면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현재의 장애인등록 제도의 틀을 바꾸라는 취지이다.

    이로써 향후 장애인 정책은 열거된 장애 종류에 해당하는지를 보는 행정 편의적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살피는'사람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부여 받았다.

    한편, 정부는'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및 종합지원체계 도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서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장애등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하지 말고, 개별적인 형편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하자는 것이다. 의학적 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을 정하고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각 서비스 자격을 결정하는 장애등급제는 1988년에 도입된 이후 30여 년 간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핵심 축이었다.

    장애등급제 도입 이후 장애인복지의 수준은 단계적으로 강화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장애등급은 거의 모든 복지급여의 지급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항공요금 할인, 차량 취득세와 등록세 면제, 의료비 지원, 이동통신 요금 할인, 건강보험료 감면, 자녀교육비 지원 등의 각종 감면 또는 할인제도가 확대되면서 지급대상을 결정하는데 장애등급이 기준이 되었다. 또한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지원 등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핵심적인 장애인복지 제도에서도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하였고, 장애인고용 제도의 고용장려금 지급 등에도 장애등급을 적용하였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기관 등에서 현금급여, 현물급여, 감면 등의 복지급여 80여종 대부분이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시행되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이렇게 하는 것을 멈추고, 서비스 마다 그 성격에 맞게 지급 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해서'장애등급 맞춤'이 아니라'사람 맞춤'으로 서비스가 구성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행령에 열거한 장애에 국한하지 말고, 실제로 생활에 중대한 제약을 받고 있으면 장애로 인정하라는 대법원의 판결과 의학적 기준으로 정한 장애등급을 획일적으로 적용하지 말자는 장애등급제 폐지 국정과제는 장애인의 삶의 실제에 맞게 정부가 서비스를 시행하라는 면에서 보면 같은 이야기이다.

    장애등급제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복지서비스 전달에 소요되는 비용을 낮추는 행정효율성이 높은 장치이다. 그러나 복지서비스가 개인의 상황에 맞게 설계되어야 하는 개별중심의 지원, 맞춤형 복지의 정신에서 보면 의학적 기준의 장애등급에 따라 획일적으로 서비스를 맞추는 비인간적인 제도이다. 이런 면에서 등급제 폐지는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의 출발로 볼 수 있으나, 장애인에 대한 급여 전반에 걸친 변화이기 때문에 대안 마련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등급제 폐지 이후에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지원, 고용장려금, 각종 감면제도 등에 적용되는 장애기준이 각각 마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애인 제도 마다 신청 시에 장애정도와 생활환경에 대한 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서는 장애인복지 전달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요구된다.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이전의 1-6급 장애등급 체계를 과도적으로 경증과 중증으로 단순화하였고, 2022년까지는 새로 도입되는 종합조사표의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경증과 중증의 기준을 대체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등급제 폐지의 사전준비에 해당하는 내용에 불과하며, 실제로 장애인에게 개인 맞춤서비스가 구현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서비스의 수준과 내용면에서 맞춤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가 어려운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장애인연금의 지급액을 현재 최저임금의 15% 수준에서 30% 수준 이상으로 과감하게 올려야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에서 중한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이 활동보조, 방문간호, 방문목욕 등을 필요에 맞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급여수준을 올려야 하며, 서비스 운영 방식에서도 개인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서비스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예산제 등의 도입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둘째, 맞춤형 서비스의 제공을 일선에서 책임져야 하는 동주민센터에 신규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맞춤서비스가 구현되려면 종합조사표로 욕구를 평가하고, 개인의 상황과 지역사회 자원을 고려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구성할 수 있는 전문역량을 갖춘 인력이 꼭 필요하다.

    이 두 조건을 갖추려면 예산과 인력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이에 대한 선명한 계획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의 제대로 된 이행과 이를 위한 장애등급제의 실질적인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한 과제이다. 예산과 인력의 확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합의된 로드맵 제시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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