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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검찰 공소유지는 소홀, 여론전엔 사활



뒤끝작렬

    [뒤끝작렬]검찰 공소유지는 소홀, 여론전엔 사활

    제주 불법체류 중국인 특수강간 사건 1심 무죄 선고
    '공소유지 미흡' 언론 비판 이어지자…檢 재판부 공개 비판

    제주지방검찰청(사진=고상현 기자)

     

    최근 제주에서는 검찰이 법정 바깥에서 해명 자료를 통해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중국인 여성을 특수강간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불법체류 중국인이 무죄를 선고받은 데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재판부, 피해자 진술조서 증거능력 '불인정'

    지난 2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중국인 A(42)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A 씨는 불법체류 중이던 지난해 12월 24일과 25일 밤 서귀포시 모처에서 중국인 여성(44)을 흉기로 협박하며 강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재판부는 불법체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이같이 판결했습니다.

    다만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경찰‧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가 한 진술의 증거 능력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피해자는 재판 직전 출국한 상태여서 법정에서 증언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 판례 "출국 미루는 등 모든 수단 강구해야"

    재판부가 피해자에 대한 경찰‧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형사소송법 314조에 나온 '증거능력에 대한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 314조에는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등의 사유에 해당할 때는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는 예외 사유를 엄격히 따지고 있습니다.

    '진술자가 외국에 거주하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수사기관이 재판 전에 출국을 미루거나 일시 귀국해 재판에 참석하도록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다하더라도 진술자가 법정에 출석할 수 없을 때'로 판시하고 있습니다.

    제주지방법원(사진=고상현 기자)

     


    ◇법원 "檢 피해자 법정 출석 위해 충분한 노력 없어"

    이번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요.

    판결문에 따르면 우선 검찰은 재판 전 피해자의 출국 계획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첫 재판이 열리던 지난 3월 19일 직전인 3월 7일까지 제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무사증으로 제주에 입국한 터라 체류기한(30일) 안에 출국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내버려둔 겁니다.

    아울러 피고인이 경찰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서 피해자가 출국하기 전까지 증거보전 절차(재판 전 증거 확보를 위한 증인 신문)를 밟을 필요가 있었지만, 검찰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또 재판부는 검찰이 형사사법 공조 요청에 따른 피해자의 중국 내 소재지 파악, 증인 소환장 송달, 현지 법원을 통한 증인신문 요청 등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검찰이 피해자의 법정 출석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다했는데도 피해자의 법정 출석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해자 진술 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판결 내용 사실과 달라" 공개 비판

    무죄 선고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비판 여론이 일자 제주지방검찰청은 지난 6일 '언론보도 관련 진상 통보' 문서를 도내 기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자료를 보면 "법원은 검찰의 잘못으로 피해자의 법정 진술을 확보할 수 없어 피해자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척했다는 취지로 판결했으나, 사실과 다르므로 검찰은 적극적으로 항소해 공소유지 예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판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공판검사는 재판부에 중국과의 형사사법공조 조약 체결 사실을 알리면서 형사사법 공조 절차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으나 재판부에서 거부했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피해자는 소재지 확인되고, 전화 통화 등 연락 가능한 상태로 법원에서 형사사법공조 절차 진행했다면 피해자의 재판 진술이 가능했을 전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기자들에게 보낸 문서

     


    ◇피해자 중국 갔는데…국내로 소환장 보내

    검찰은 형사사법공조 절차를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오히려 거절했다고 했지만, 뒷사정은 어떨까요.

    검찰이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한 시점은 재판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5월이었습니다. 피고인의 구속 기한이 1개월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형사사법공조 절차는 통상 4~5개월 걸리기 때문에 재판부가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불구속 재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첫 재판부터 구속이 풀려나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터라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겁니다.

    검찰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불구속 재판을 통해서라도 피해자 진술을 확인했어야 했다"고 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피고인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공판검사는 첫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피해자 진술 조서 증거를 '부동의'하자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이미 그때는 피해자가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지만, 국내 주소지로 출석 요구서를 보내는 등 피해자 소재지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예외 사유를 엄격하게 따지고 있지만, 공판검사는 재판 내내 피해자가 외국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조서가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변호인의 반발에 부딪히자 '중국과의 형사사법공조는 체결됐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결심 직전인 5월이 돼서야 사법공조를 재판부에 요청한 겁니다.

    어떠신가요. 검찰이 피해자의 법정 출석을 위해 노력을 다했다고 보이시나요?

    ◇공판중심주의 잊었나…검찰 여론전에 집중

    검찰의 노력은 둘째 치고, 1심 판결에 대해 법정 바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항소 절차가 있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다툴 문제를 외부로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재판에서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법정에서 형성된 심증만을 토대로 사안의 실체를 심판하는 '공판중심주의' 국가입니다.

    검찰은 법정 바깥에서 여론전을 벌일 게 아니라 항소심 재판에서 피해자를 법정에 세워 증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공소유지에 힘쓰면 되지 않을까요.

    참고로 논란이 불거지자 법원은 검찰의 비판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건 소송기록 내용을 소송 절차 외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그 내용은 항소심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것입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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