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탐정 손수호]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왜 또 무죄?"



사건/사고

    [탐정 손수호]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왜 또 무죄?"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 (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 탐정 손수호! 손수호 변호사,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 이 사건. 항소심에서도 무죄로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송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했어요. 우리가 2년 전에 다뤘던 기억이 나면서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 손수호> 네. 어제 항소심 판결 선고됐죠. 2009년 제주 보육교사 강간살인 사건입니다. 대표적인 제주도 내 미제 사건이었는데, 경찰이 돼지와 개를 이용한 동물실험까지 하면서 증거를 모았고, 결국 사건 발생 9년 만에 택시기사 박 모씨가 구속 기소됐죠.

    ◇ 김현정> 2009년에 발생한 사건인데, 사건 발생 9년 만에 기소했어요. 그리고 돼지, 개 동물실험이 증거로 쓰여서 화제가 된 사건. 그런데 2심에서도 무죄.

    ◆ 손수호> 2018년 검찰 통계에 따르면, 형사재판 1심 무죄율이 0.79%입니다. 거의 다 유죄판결 받는다는 얘기죠. 게다가 이번처럼 구속돼서 재판 받다가 1심 무죄 판결 받는 경우는 1년에 130명 정도예요.

    ◇ 김현정> 그거밖에 안 돼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작년 7월 1심에서 무죄 판결 나왔고요. 검사가 불복해서 항소했지만, 어제 검사의 항소가 기각되면서 무죄 판결이 유지됐어요. 지금까지는 검찰의 완패죠. 범인 잡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은 상황인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법원 판결의 배경과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겠죠.

    ◇ 김현정> 여러분, 기억을 더듬어주십시오. 제주도 보육교사 강간살인 사건. 2009년 그때로 돌아가겠습니다.

    ◆ 손수호> 2009년 2월 1일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날짜가 중요합니다. 2월 1일. 보육교사로 일하던 이 모씨의 연락이 끊기고 일하던 어린이 집에도 출근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실종 일주일 후 농업용 배수로에서 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이춘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과 비슷하다고 해서 ‘제주 판 살인의 추억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죠.

    ◇ 김현정> 그럼 우선 연락이 끊긴 그때 그 시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면 되겠네요. 그날 있었던 일을 살펴보죠.

    ◆ 손수호> 실종 전날 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술을 마신 후 집에 가다가 중간에 차에서 내려서 새벽 3시경 남자친구 집에 갔습니다. 하지만 3분 만에 싸우고 나와서 집에 돌아가려고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두 번 걸었어요. 하지만 당시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배차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통화 1분 후인 새벽 3시 8분경 114에 전화를 걸었어요.

    ◇ 김현정> 114에는 왜요?

    ◆ 손수호> 다른 콜택시 회사 전화번호를 물어보려고 했던 것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 김현정> 그때 그 기록 같은 건 안 남아있어요? 통화기록이라든지.

    ◆ 손수호> 114에 전화 걸었다가 1초만에 바로 끊었어요. 이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새벽 4시 4분에 전화기 전원이 꺼졌다고 알려지기도 했죠. 이후 실종 5일 만에 지갑, 수첩, 휴대전화가 들어 있는 핸드백이 발견됐고요, 실종 7일 만에 배수로에서 사체가 발견된 겁니다. 당시 사체에 정액 반응은 없었어요. 하지만 입고 있던 치마가 허리 위로 들쳐져있었고, 찢어진 레깅스와 팬티가 사체 옆에서 발견됐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그런데 이번에 무죄 판결 받은 그 택시기사가 사건 발생 당시에도 유력한 용의자였죠.

    ◆ 손수호> 네. 경찰은 피해자가 평소에 이용하던 그 회사가 아닌 다른 콜택시 회사 전화번호를 물어보려고 114에 전화 걸었는데, 마침 전화 걸자마자 그곳을 지나던 일반 택시가 있어서 그 택시에 탑승한 것으로 봤습니다.

    ◇ 김현정> 우리도 왜 그렇잖아요. 콜택시 부르려다 저기서 빈 택시 오면 전화 그냥 끊고 콜 안 부르잖아요. 이런 상황으로 본 거네요.

    ◆ 손수호> 네. 경찰은 그렇게 본 거죠. 그래서 피해자가 탑승한 택시가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을 걸로 보고, 그 예상 이동 경로에 있는 CCTV 영상을 통해서 노란색 캡등을 부착한 흰색 NF 소나타 차종으로 확인했어요. 그런데 그런 택시는 당시 제주 시내 법인택시 1,359여 대 가운데 18대밖에 없었어요.

    ◇ 김현정> 아. 그런데 CCTV 영상이라 함은 그 여성이 타는 걸 포착한 영상은 아니고요.

    ◆ 손수호> 네. 그런 영상은 없습니다.

    ◇ 김현정> 이런 이런 길로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경로상에 있는 CCTV를 본 거다.

    ◆ 손수호> 꼭 그런 건 아니고요. 피해자가 탄 그 택시가 일단 집으로 향했고, 사건 후 제주 시내로 다시 돌아왔을 거라고 추정한 겁니다. 예상이죠. 그 부분도 추후 판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김현정> 아무튼 제주 시내에 18대밖에 없는 그 택시.

    ◆ 손수호> 네, 그래서 그런 택시의 운전자 중 한 명인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즉, 박 씨가 택시에 탄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목 졸라 살해했다고 보고 여기에 수사력을 집중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예상 경로 CCTV 영상으로 택시 확인한 것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어서 택시기사 박 씨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 건가요?

    ◆ 손수호> 첫째. 한겨울 새벽 3시에 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택시가 유일했다. 둘째, 당시 박 씨가 운전한 택시의 이동경로와 시간을 CCTV로 확인해 보니, 피해자의 실종과 사망에 대한 추정과 딱 맞아떨어진다. 셋째, 박 씨가 범행을 부인하면서 ‘그 시간에 이 씨가 아닌 다른 손님을 태우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주장했지만, 그 경로에 설치된 CCTV 녹화 영상을 보니 박 씨의 택시가 촬영되지 않았다.

    ◇ 김현정> 나름 알리바이를 얘기한 게 있군요. ‘나는 이쪽이 아니고 저쪽으로 갔어요.’라고 주장했는데, 거기 CCTV에는 이 택시가 없었다?

    ◆ 손수호> 네. 그리고 넷째, 박 씨가 경찰에 출석할 때 1월 31일과 2월 1일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삭제했다.

    ◇ 김현정> 사건이 벌어진 게 2월 1일 새벽이잖아요. 그럼 박 씨가 실종일 그리고 그 전날 통화 내역을 삭제한 거네요.

    ◆ 손수호> 다섯 번째, 그때 박 씨가 모텔방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사가 시작되자 각기 다른 여성 2명에게 모텔 방 정리를 부탁했다. 그리고 거기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까지.

    ◇ 김현정> 이런 내용만 들어도 곧바로 기소 가능한 수준일 것 같은데요. 그런데 어떻게 풀려날 수 있었죠?

    ◆ 손수호> ‘사망 추정 시각’ 때문입니다. 사체가 2월 8일 13:50경 발견됐는데요, 당시 부검의는 사체 발견 시점부터 24시간 이내에 사망했을 거라고 봤어요. 사체의 직장 온도, 모발에 남아 있던 샴푸의 향, 시반의 강도나 형태, 장기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한 건데요. 그렇다면 실종 후 5일 이상 지난 2월 7일 이후 피해자가 사망한 게 되죠. 그런데 택시기사 박 씨에게는 그날의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실종 당일의 수상한 행적 때문에 용의선상에 올랐던 택시기사 박 씨는 혐의에서 벗어나게 된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피해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그날의 알리바이가 분명히 있었던 거군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박 씨는 이렇게 혐의를 벗었고 얼마 후 제주를 떠났죠.

    ◇ 김현정> 그런데 다시 체포됐잖아요.

    ◆ 손수호> 그렇습니다. 이 사건에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게 되면서 미제사건팀 신설해서 다시 조사했는데요. 특히 사망 추정 시각을 다시 명확히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김현정> 그게 굉장히 중요하네요.

    ◆ 손수호> 만약 실종 직후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면, 그 당시 행적이 의심되는 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경찰은 당시에도 여전히 박 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 김현정> 그래서 사망 시각이 중요했고, 동물실험까지 한 거잖아요.

    ◆ 손수호> 맞습니다. 시신 발견 장소에서 당시 상황과 유사한 기상 상황과 배수로 환경 등을 만들어서 부패 정도를 실험했어요. 돼지와 개 사체를 이용해서 네 차례 실험한 결과, 특수한 환경적 영향으로 인해서 사체의 부패가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최초 부검의의 의견처럼 실종 후 5~6일 사이에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실종 당일 살해당했을 거라고 본 거죠.

    ◇ 김현정>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네요.

    ◆ 손수호> 네. 그리고 또 다른 과학수사 결과도 얻었습니다.

    ◇ 김현정> 그게 뭡니까?

    ◆ 손수호> 미세섬유. 국과수가 새로운 분석 기법을 사용했어요. 그날 박 씨가 입고 있던 옷에서 검출된 진청색 면 섬유와 유사한 미세섬유 증거를 피해자의 신체와 가방에서 발견한 겁니다. 이 증거는 당시 피해자가 박 씨의 택시에 탑승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결국 박 씨가 살인범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김현정> 잠깐만요. 피해 여성 가방에 그 택시기사가 입고 있던 옷의 면 섬유가 그러니까 쉬운 말로 실오라기 같은 거?

    ◆ 손수호> 실오라기는 너무 커요. 발견된 건 미세섬유입니다.

    ◇ 김현정> 거의 먼지 수준으로 봐야겠네요.

    ◆ 손수호> 이걸 근거로 체포영장을 받았고 행방을 추적해서 어렵게 체포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체포는 했지만 구속영장은 또 못 받았잖아요.

    ◆ 손수호> 당시 법원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어요. 비록 택시기사 주장에 모순되는 점도 있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지만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본 건데요. 그래서 경찰이 7개월에 걸쳐서 증거를 보강했고 결국 구속영장을 받아냈습니다.

    ◇ 김현정> 받긴 받았군요. 그때 새로 발견한 증거는 뭐예요?

    ◆ 손수호> 이때 역시 미세섬유 관련 증거가 더 나왔는데요. 택시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의 섬유와 유사한 섬유가 추가로 발견됐고요. 또 뒷좌석과 트렁크에서는 피해자가 입고 있던 무스탕 점파에 달려 있던 동물 털과 비슷한 것도 발견됐죠. 물론 이것도 직접증거는 아니에요. 하지만 법원은 혐의 소명할 증거가 추가된 점을 고려한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렇게 사건 발생 후 긴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박 씨가 구속됐고요, 검찰이 작년 1월 박 씨를 강간살인으로 기소한 거죠.

    ◇ 김현정> 그렇죠. 오랜 시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가 겨우 용의자 특정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구속영장도 한 번 기각됐다가 재청구해서 받았다. 그리고 재판에서 또 뒤집힌 거예요.

    ◆ 손수호> 네. 작년 7월 1심에서 무죄 판결 나왔어요.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봤습니다. 검사가 불복해서 항소했지만 어제 항소가 기각됐어요. 2심도 무죄가 맞다고 본 거죠. 재판을 받은 피고인 박 씨가 어제 판결 선고 후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론과 검찰, 경찰 모두가 나에게 족쇄였다. 그들이 나의 모든 것을 잃게 했다.”

    ◇ 김현정> 한 마디로 ‘난 누명 쓰고 너무 오랫동안 고생했다’는 얘기인데요. 그런데 누명을 씌우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범인 잡고 싶은 거지. 그런데 이야기를 쭉 들어보면 경찰이 의심을 했을 법 하거든요.

    ◆ 손수호> 혐의 벗고 제주도를 벗어나서 부산, 서울, 경기, 강원, 경북 지역에서 생활했는데, 그때부터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주민등록이 직권 말소되기도 했고요. 또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안 받아서 면허가 취소됐고, 새로 면허 취득 안 했거든요.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 개통하지 않고 동거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 김현정> 잡히기 전까지 말씀인 거죠?

    ◆ 손수호> 네.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건은 목격자도 없고 직접증거도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제출한 간접 증거들을 종합할 때 이런 부분들이 증명돼야 돼요.

    ◇ 김현정> 어떤 거요?

    ◆ 손수호> 첫째. 택시기사 박 씨가 피해자를 태우고 검사가 주장하는 그 운행 경로를 따라 운행하였다. 둘째. 박 씨가 아닌 제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배제돼서, 박 씨가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살해했다고 볼 수밖에 없어야 한다.

    ◇ 김현정> 그러니까 ‘당신이야!’라고 직접적으로 찍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하나씩 배제시키다 보니 당신밖에 안 남네’ 그게 확실하네. 이렇게 돼야 하는데, 실패했다는 거군요.

    ◆ 손수호> 그런 확신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무죄일 수밖에 없는 거죠.

    ◇ 김현정> 구체적인 무죄의 근거들을 하나하나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우선 사망 시각이 중요하다고 그러셨잖아요.

    ◆ 손수호>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검사는 실종된 그날 새벽 바로 살해됐다고 한 건데. 법원이 이 부분부터 다르게 봤습니까?

    ◆ 손수호> 우선 사체보다 먼저 발견된 수첩이 젖어 있었어요. 그리고 사체에도 빗물이 흐른 듯한 흙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2월 3일에 비가 왔고, 그 후에는 비가 안 왔습니다. 따라서 2월 3일 이전 사망했을 것으로 법원은 봤어요. 그런데 박 씨가 범인인지 판단하기 위해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실종 당일인 2월 1일 새벽 사망 여부잖아요. 1심에서는 2월 1일 새벽 사망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 김현정> 2심은요?

    ◆ 손수호> 2심은 다르게 봤어요. 경찰이 공들인 동물실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류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겁니다. 또 네 번 실험해서 그 중 하나의 결과만 제출했는데, 나머지는 본인들이 보기에도 오류가 있다고 본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번으로 결과를 검증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와 위 내용물을 보더라도 실종 당일 새벽 4시경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이후 사망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봤죠.

     

    ◇ 김현정> 그 얘기는 ‘그날 사망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두 개가 다 가능하다 그러니 단정 못 한다’ 이거군요.

    ◆ 손수호> 법원의 판단 논리죠.

    ◇ 김현정> 그러면 법원은 아예 피해자가 그 택시를 안 탔다고 본 겁니까?

    ◆ 손수호> 정확히 말하면 ‘그 택시에 탑승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제3자가 운행한 차량 또는 다른 택시에 탑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김현정> 그런데 과학수사 결과 미세섬유 나왔다면서요?

    ◆ 손수호> 나왔죠.

    ◇ 김현정> 피해자 가방에서 그 택시기사 옷의 미세섬유가 나오려면, 택시에 타는 것 말고는 무슨 가능성이 있습니까?

    ◆ 손수호> 피해자 신체에서 진청색 면 섬유가 검출되긴 했어요. 그리고 그날 택시기사 박 씨가 진청색 남방을 입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그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섬유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꼭 피고인의 옷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유사하다. 하지만 동일한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 김현정> 그 옷이 이 사람 한 사람한테만 팔린 게 아니지 않느냐?

    ◆ 손수호> 그렇죠. 감정인도 그런 취지로 말했고요. 또 그 외에 피해자의 신체에서 택시기사의 옷도 아니고 피해자의 옷에서 온 것도 아닌 다양한 섬유가 나왔어요. 그렇다면 그 섬유로 구성된 옷을 입은 제3의 인물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 반대로 택시에서 피해자의 옷을 구성하는 섬유가 나오기는 했지만, 택시는 여러 사람이 타기 때문에 그게 꼭 피해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옷에서 나온 섬유일 수도 있다는 거죠.

    ◇ 김현정> 굉장히 어렵게 증거들을 찾아냈는데 단정할 수 없다고 해 버리니까 힘이 빠질 수밖에 없네요.

    ◆ 손수호> 사실 미세섬유 관련해서 설명 안 되는 부분이 더 있습니다. 첫 번째로 피해자가 두꺼운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있었어요. 특히 어깨는 외부에 노출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그 어깨에서 진청색 면 섬유가 발견됐어요. 그렇다면 이건 오히려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진청색 면 섬유가 택시기사 옷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증거 아닐까.

    ◇ 김현정> 그렇게도 해석 할 수 있겠네요.

    ◆ 손수호> 또 있어요. 피해자 옷을 구성하는 섬유가 택시 뒷좌석에서 발견된 건 맞아요. 그런데 그 외에 트렁크, 운전석, 조수석에서도 발견됐거든요. 그렇다면 피해자가 자리를 옮겨 앉고 트렁크에도 들어갔다는 건가?

    ◇ 김현정>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 손수호>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런 생각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살인한 다음 이렇게 저렇게 옮겼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 어쨌든 법원은 그렇게 안 본 거예요. 세 번째는 뭔가요?

    ◆ 손수호> 트렁크에서 무스탕 점퍼에 달려있던 동물 털과 비슷한 게 발견되긴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잘 설명 안 된다고 봤습니다. 왜냐? 검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두 명의 신체 접촉 과정에서 동물 털이 옷에서 빠졌고, 피해자의 가방에 붙었는데, 택시기사가 뒷좌석에 놓여 있던 그 가방을 트렁크에 옮겨놨기 때문에 트렁크에서 동물 털이 발견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건 무리한 주장이고, 증거도 없지 않는가?’라고 했죠.

    ◇ 김현정> 결국 그 택시에 안 탔다는 건가요?

    ◆ 손수호> 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거죠.

    ◇ 김현정> 단정할 수 없다. 탔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 손수호> CCTV 영상도 흐릿했고, 촬영 판독기에 오류 정황도 있었다고 봤어요. 그리고 2심 법원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꼭 전해드리고 싶은데요.

    ◇ 김현정> 뭡니까?

    ◆ 손수호> 사건 발생 초기 어떤 개인택시 기사의 제보가 있었어요. 문제의 2월 1일 새벽 3시경에 피해자의 남자친구집 근처에서 피해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태웠다.

    ◇ 김현정> 소름이야.

    ◆ 손수호> 10분 정도 걸려서 3km쯤 이동해서 한 어린이집 앞에 그 여성을 내려줬다.

    ◇ 김현정> 제보자가 나타났어요?

    ◆ 손수호> 유류품 발견 후 그런 얘기를 한 겁니다. 그리고 2심 법원이 이 제보 이야기를 판결문에 적었어요. 그러면서 법원은 그 승객이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시했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 손수호> 그리고 피해자 사체의 손에서 몸싸움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발견됐는데도, 박 씨 택시 차량이나 집에서 발견한 물건, 옷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미세섬유가 신체 접촉의 증거라면 피해자 사체의 손가락이나 손바닥, 손등에서 미세섬유가 검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는 거죠.

    ◇ 김현정> 이렇게 돼서 2심에서도 무죄 판결 나온 건데. 이제 대법원 판결만 남은 거죠.

    ◆ 손수호> 그렇습니다. 현재까지 법원은 알리바이에 대한 변명을 믿을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범죄 사실 증명이 없다고 봐서 무죄 판결 내린 건데요. 박 씨 외에 용의선상에 오른 다른 인물이 없기 때문에 만약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영구미제로 남은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증거에 대한 대법원의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죠. 대법원의 판단은 어떨지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 김현정> 못 다 한 이야기가 길 것 같습니다. 유튜브 댓꿀쇼로 좀 더 이어가고요. 손 변호사와 인사나누죠. 고맙습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