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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악플 피해"vs"미투고발 위축"…헌재서 격론



법조

    [법정B컷]"악플 피해"vs"미투고발 위축"…헌재서 격론

    "허위도 아닌 '사실'로 침해될 명예까지 보호?"
    고려대 교수 "디지털교도소로 학생 사망…악영향 커"

    2020.9.10.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이영진 헌법재판관 "악성 댓글에 시달려서, 무분별한 신상털기로 ○○○가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된다면) 이러한 사건이 더 많아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때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지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을 따지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장에서 지난해 성범죄 피해 소송 진행 중 세상을 떠난 한 여성 가수의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만약 이 죄목이 없어진다면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병력(病歷), 범죄 피해, 전과, 성적지향, 가정사 등이 낱낱이 공개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지 않냐고 물은 것입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2018년 '미투 운동' 국면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해대는 가해자들 때문에 이 위헌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면 안된다는 쪽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쪽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근거로 든 것이니까요. 전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이 명백한 '낙인'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모습을, 후자는 법에 기댈 수 없어 '미투'밖에는 답이 없었던 현실을 드러내 씁쓸했습니다.

    이처럼 무엇이 명예를 침해하는 사실인지에 대한 판단은 모호하고, 인터넷과 SNS 등의 발달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 규모와 회복 가능성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민사상 화해나 조정, 합의가 이뤄지기 보다는 형사고소가 남발되는데다 법적 절차를 뒤로하고 사적제재를 하는 수단으로도 명예훼손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첫 판단을 내리게 될 헌재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입니다.

    이번 위헌심판을 청구한 A씨의 사연 자체는 위의 사례와 전혀 별개입니다. A씨는 자신의 반려견에 대한 동물병원 수의사의 진료행위가 잘못됐다는 점을 공표하려다, 도리어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고는 이번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310조에서 해당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처벌하지 않도록 제한을 뒀습니다.

    만약 A씨가 해당 병원의 위법 진료행위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서 공표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수술을 권한다'는 식의 막연한 평가이거나 의사의 업무와 관계 없는 불륜 사실을 알린 경우, 또는 유명 학자가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특정 종교를 믿는다는 점을 알린 경우 등은 그것이 '사실'이어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18년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성폭력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이 죄목으로 고소하는 일이 잇따랐습니다. 최근에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관계자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지난 2018년 3월 한국YWCA연합회원들이 미투운동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손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청구인 측 법률대리인은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 범죄라는 개념을 갖고 시작하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며 "범죄에 대한 입증 책임은 처벌해야 할 검사가 져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적시된 사실이 진실일 때는 원칙적으로 범죄를 구성하지 않도록 하고,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일 때만 그 점을 검사가 입증해 예외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김재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은 편(?)'인 대리인의 입장에도 다소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문제라는 입장 내에서도 '일부 위헌론'과 '전부 위헌론'이 나뉜 셈이죠.

    2020.9.10.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김기영 헌법재판관 "청구인 측 대리인은 '사실의 적시가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오로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이라는 점이 검사의 엄격한 증명에 의해 입증된다면 형사 처벌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데요. 참고인은 여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김재중 충북대 교수 "그렇게 (검사로부터) 판단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개개인이 (사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죄로 언제든 처벌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로 만들기 때문에 (완전) 폐지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입증책임을 검사가 지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판인지 혹은 맹목적 비난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어렵고, 징역형 처벌이 유지된다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비판과 비난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사업주에게 임금체불 당한 사실을 공표한 사람에게는 다른 피해자 발생을 막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과 체불임금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고자 하는 개인적 목적이 둘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공공의 이익이 전혀 없는 '비난'이라고 할지라도, 허위가 아닌 '사실'로 인해 깎여나갈 명예라면 형사처벌까지 동원하며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됩니다.

    2020.9.10.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김재중 충북대 교수 "진실한 사실 적시에 의해 손상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가 있었다면 그 명예는 과장된 것 아닐까요. 그릇된 평가, 이를 허명(虛名)이라고 하죠? 이런 과장된 평가를 우리 헌법이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이 입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또 형벌이 (그 보호를 위한)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경우는 당연히 처벌돼야겠지만 '사실적시'를 징역형으로 형사처벌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합니다. … 차라리 민사적 손해배상이나 반박문 게재, 인터넷의 경우 정보통신 서비스업 제공자들에게 게시글 삭제요청 등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대 측 입장인 법무부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죄는 단순히 명예가 아니라 피해자 사생활 보호의 기능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군가의 내밀한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됐을 때의 피해는 돌이키기 어렵고, 민사상 손해배상 같은 사후적 구제방안 보다는 형벌처럼 예방효과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떤 사람을 사회로부터 낙오·소외시키고 대화의 마당에서 완전히 배제·축출시켜버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2020.9.10.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홍영기 고려대 교수 "며칠 전에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생 한명이 디지털교도소에 언급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왔다는 사실 자체가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다는 것 아니겠냐'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죄와 관련해 께름칙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 적시된 사실에 자기가 감추고 싶은 진실이 있다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그런 것을 허명(헛된 명성)이어서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까요? 진실을 감추고자 하면 그건 부끄러운 것이고, 부끄럽지 않을만한 것이면 다 드러내도 되는 그런 단순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다."

    (사진=연합뉴스)

     

    홍 교수 말대로 최근 명예훼손을 활용한 사적제재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교도소(적시된 내용이 사실인 것에 한해)는 물론이고 특정 판결을 내린 법관의 사적 정보 등이 청와대 청원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먼저 기본권을 지켜주는 데 무책임했기 때문에 무력한 개인들이 스스로 기본권 구제를 위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한 것이라는 반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단 국제적인 추세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벌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이미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정이 있더라도 실제 처벌까지 시행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이 규정을 고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했고요.

    이날 2시간가량 진행된 공개변론에서는 청구인이나 법무부 측 법률대리인들이 준비해 온 다소 뻔한 답변보다 양측의 논지를 꿰뚫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헌법재판관들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알권리 등)와 '명예'(인격권·사생활의 비밀 등)가 정면충돌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사적제재'라는 변수까지 개입되면서, 재판관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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