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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주변 주민들 "어떻게 해야 정부 잘못 인정하겠나"



사건/사고

    원전 주변 주민들 "어떻게 해야 정부 잘못 인정하겠나"

    [원전 주변은 정말 안전한가④]
    국회 피해증언대회서 피해 주민들 성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고통 받나"
    "다음 세대가 우리와 같은 길 갈까 걱정"
    주민들 '정부의 책임 인정, 국회의 입법' 촉구

    경주 월성 원전 앞에 사는 황분희씨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전 피해주민 증언대회'에 참여했다. (사진=사진작가 장영식씨 제공)

     

    월성원자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글 싣는 순서
    ①[단독]정부, 원전 주변 주민 '암 발병' 10년 만에 재검증
    ②월성원전 앞 사는 황분희 할머니 "이제라도 진실 밝혀야"
    ③"월성1호기 재가동? 40년 전 컴퓨터 그대로 쓰자는 얘기"
    ④원전 주변 주민들 "어떻게 해야 정부 잘못 인정하겠나"
    (끝)


    "저녁만 되면 이 약 한 알로 제 몸을 지탱합니다. 평생 그 약을 먹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매일 저녁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으며 피곤함을 느낍니다. 도대체 저희가 어떻게 해야 정부나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자기네 잘못을 인정할 날이 올까요…"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 앞 양남면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황분희(73)씨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핵발전소 주변지역 갑상선암 피해주민 국회 증언대회'에서 원전 주민들의 고통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토로했다. 황씨는 "갑상선 암 투병으로 겪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극심하다"라면서 "병마로 내가 겪는 이 고통을 우리 아이들, 다음 세대가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가장 걱정되고 힘들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과 법무법인 민심, 탈핵의사회, 핵발전소주변지역대책위가 함께 마련한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고리와 월성, 울진, 영광·고창 등 국내 곳곳의 원전 주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방사능 피폭 피해에 대한 여러 증언이 나왔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핵발전소 피해주민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진섭씨. (사진=사진작가 장영식씨 제공)

     

    아들 '균도'와 발달장애인 문제를 사회에 알려온 이진섭(56)씨는 부산고리핵발전소 근처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이씨 자신은 직장암, 아내는 갑상선암에 걸려 2011년과 2012년에 수술을 받았고 아들 균도(28)씨는 자폐성 발달장애 1급이다.

    "처음에는 원전을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만드는 곳으로만 알았다. 2012년쯤 앞집 뒷집에서 하나 둘 암 환자가 나오기 시작해 점점 지역 주민들의 발병이 늘어갔다. 하지만 (한수원은) 계속 괜찮다고만 했다."

    이씨는 "우리 가족 4명 중 3명이 암 환자고, 거기서 태어난 아이는 발달장애다"라며 "2012년 7월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씨 가족은 지난 2012년부터 정부와 한수원을 상대로 원전으로 인해 가족이 질병에 걸렸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왔다. 1심에서는 정부 책임을 인정해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8년 동안 소송을 치르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제가 돈 때문에 소송을 한 것 아닙니다. 정부를 이겨 먹으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라며 "정부는 계속 원전 주변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제가, 제 가족이, 주민들의 몸이 (피해를) 기억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분희씨는 경주에서 6년 넘게 대책위 활동을 하며 '주민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농성을 진행 중이다. 황씨는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 죄가 있다면 그저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핵발전소 옆에서 산 죄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뿐 아니라 국회가 함께 움직여달라고 호소했다. 황씨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서울 거주 주민을 동시에 검사했다. 삼중수소가 우리 지역은 100% 나왔는데 서울에서는 아무도 안 나왔다"며 "그런데도 한수원은 끝까지 잘못 인정을 안 한다. (보상하는) 법을 만들어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전 피해주민 증언대회'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사진작가 장영식씨 제공)

     

    주민들의 증언이 끝난 뒤 전문가들의 핵발전소 피폭 피해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저선량(적은 양의) 피폭은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비과학적인 주장"이라면서 "방사능 피폭에 '역치'는 없다. 아무리 적은 방사능도 건강에 이상을 준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최근 한국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싸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부딪쳤다"며 "당시 일본은 연간 1밀리시버티(mSv) 이하로 방사능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서는 피폭량 기준을 (일본이) 충족하더라도 '더 낮은' 기준을 적용해 수입 규제를 할 수 있다고 맞섰다"고 말했다.

    자국민 건강이라는 같은 주제 앞에서 원전 주민과 일본 정부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논리가 달랐던 셈이다. 백 교수는 "방사성 물질 피폭에 역치가 없다는 것을 한국 정부도 알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최근 내년부터 원전 주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건강역학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주민들이 암에 걸린 것과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 피폭 사이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양이원영 의원은 환경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수원 등의 3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양 의원은 "제대로 된 역학조사가 이뤄지려면 국회가 20억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며 "예산을 확보하는 임무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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