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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재일 조선인에도 영향 끼친 전태일의 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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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재일 조선인에도 영향 끼친 전태일의 분신

    운동권 상당수 위장취업 결행
    한국 '간첩단 사건' 구원 활동도

    (사진=자료사진)

     

    1970년 11월13일, 나는 일본에서 일본 이름으로 사는 3학년 고교생이었다.

    그해 말 학생회(일본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포 고교생의 모임)에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고 독재정권 하에 있는 남조선이라는 지식밖에 없던 나에게 남조선의 현실을 알려준 기억에 남은 사건이었다. 이 소식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일본 언론에서도 보도되어 재일 동포뿐만 아니라 일본 운동권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970년에 일-미안보조약이 재체결되어 운동에 대한 좌절감과 반성으로 운동권에 있던 많은 대학생은 대학을 떠나서 현장에 들어가 지역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하여 위장취업을 했다.

    오사카에서는 주로 노동자가 많은 카마가사키나 동포가 많은 이쿠노에 들어갔다. 그들 중에는 남조선에서 일어난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충격을 받아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다.

    71년 초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나는 조선사람으로 살 것을 선택해서 우리말을 한국에서 배우기로 했다. 서울대 부속 재외국민연구소는 태릉에 있는 서울공대 건물에 있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지금의 대학로에 있는 기숙사에서 종로까지 걸어 가서 버스를 탔다.

    청계천 주변의 판잣집과 평화시장. 그 시기 김대중씨와 박정희의 대통령선거로 서울 시내에서는 최루탄으로 눈이 아팠다. 그 대통령선거 직전 재일동포 유학생인 서승, 서준식 형제가 간첩이라고 구속되었다. 재일동포 유학생 속에 동요가 퍼졌다.

    1975년 11월22일, 한국외국어대에 재학 중이던 나는 갑자기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40일 동안의 가혹한 조사를 받고 구속되어 금고 5년형을 받았다. 베트남전쟁이 북월남의 승리로 끝나자 "다음 차례는 한국"이라는 위기감으로 반공의식을 높이려고 '학원침투 간첩단사건'을 날조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재일동포 유학생 17명(사형 선고 4명)이 구속된 이 사건을 11월22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했다고 해서 '11.22사건'이라고 부르고 구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지식인과 더불어 그 중심이 된 사람들이 바로 대학을 떠나서 지역에서 노동운동, 인권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70년대 한국노동운동 특히 평화시장이나 방적 공장의 어린 여공들과 연대투쟁을 벌였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재일 동포와 함께 한국의 민주화운동, 김대중·김지하씨 석방운동, 한국 노동자 연대운동, 한국 양심수 석방운동을 벌였다. 덕분에 1990년 초까지 사형수를 포함해서 재일동포 정치범은 모두 석방됐다.

    전태일 열사 분신은 일본에서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전태일 평전>이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 중심이 되어 이소선 어머니의 영화를 제작해 일본 전국에서 상영운동을 벌인 결과 이를 본 많은 사람이 감동을 하였다.

    또 월간지 '세카이'에 게재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보도가 통제된 독재정권에서 과감하게 싸우는 한국 학생과 노동자의 모습을 알려 주었다.

    내가 석방된 뒤 노동자로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전태일 열사의 항거가 가져다 준 감동과 함께 그를 아는 일본 학생이 노동자로서 살겠다고 지역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나는 70살을 눈앞에 두고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집에서 전태일다리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때때로 산책 겸 청계천 변을 걸어서 열사를 만나러 간다. 나는 늙었지만 전태일 열사는 영원한 청년으로서 우리를 보고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이 기사(글)은 11월 9일 나온 <전태일50> 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전태일50> 신문은 전태일 서거 50주년을 맞아 오늘날 전태일들의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들과 사진가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 이제그만, 직장갑질119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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