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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라 불리며 착취당하는 '전태일들'



사건/사고

    '사장님'이라 불리며 착취당하는 '전태일들'

    [전태일 50주기③]특고로 인정조차 안되는 노동자들
    노동자인데 '사장님' 만들어…30개 업체 동시 등록도
    실상은 '업체-노동자'일뿐…지휘·감독에 '감시'까지
    임금체불 당해도 회사 '선의'에 기대야 하는 현실
    노동계 "일해서 돈 받으면 모두 노동자로 인정해야"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대리점에 물건 받으러 가면 지점장들이 저희한테 꼬박꼬박 '사장님', '사장님' 이렇게 불러요. 저희 기사들끼리도 서로 '김사장', '이사장' 이렇게 부르는데 참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죠"

    택배업에 뛰어든 지 1년쯤 된 A(32)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A씨는 "대리점에서 주는 대로 구역 받고, 주는 대로 물건 받아 일할 뿐"이라며 "명절 같이 물량 터지는 날 물건을 덜 받고 싶어도 마음대로 조절도 못 하는 우리는 '무늬만' 사장님"이라고 덧붙였다.

    故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산업재해로 매일 5.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은 갈 길이 멀다. 기술 발달로 업무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그 틈새를 악용해 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둔갑시켜 착취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CBS노컷뉴스가 '사장님'이라 불리며 착취당하는 오늘날 전태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우리기사'에서 '공유기사'로…노동자를 '사장님' 만드는 업체들

    20년 넘게 퀵서비스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박모(50)씨는 스스로를 '공유기사'라고 부른다. 처음 이 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한 사업체에 소속된 기사였지만, 업주들끼리 주문을 공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면서 공유기사가 됐다.

    박씨는 "사업주들이 처음에는 다 '우리기사', '우리기사' 이렇게 부르다가 앱이 개발되면서 우리를 모두 공유기사로 만들어버렸다"면서 "우리 의사를 물어본 것도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많게는 30개 업체에 동시에 등록돼 있다고 한다.

    사업주가 이들을 공유기사로 만든 이유는 딱 한 가지. 바로 '전속성'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전속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권리나 의무가 오직 특정한 사람이나 기관에 딸리는 경향'을 말한다. 즉 노동자가 얼마나 한 업체에 속해 일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을 말한다.

    전속성을 회피하는 이유는 '사업주-노동자'의 관계를 깨기 위함이다. 박씨는 현재 공유기사이면서 동시에 '개인사업자'다. 여러 곳에 동시에 소속돼 있다는 말은 거꾸로 '어느 곳에도 전속돼 있지 않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업체와 '사업주-사업주'의 관계가 돼버렸다.

    퀵서비스 업체들이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오늘날 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하려면 최저임금 준수부터 각종 휴일·야근 수당과 육아·출산 휴직, 퇴직금, 4대보험 가입 등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들이 수두룩하다. 반면 '사업주-사업주' 관계가 되면 이 모든 의무에서 제외된다.

    박씨는 "결국 비용 때문이다. 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휴가에, 수당에, 퇴직금에, 보험에 등등 다 해줘야하는데 공유기사가 되면서 업체는 하나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며 "주문이 왔을 때 나 말고도 다른 기사를 쓰면 되니까 업체 입장에서도 아쉬울 게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법적인 형태만 그러할 뿐 실상은 '사업주-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상시적인 관리·감독은 물론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까지 한다. 분명 '사업주-사업주'의 관계인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고 한쪽은 따라야만 한다. 지시를 받는 사람은 마음대로 주어진 일을 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박씨는 "우리 위치가 모두 노출이 된다. 어디 있는지 지켜보면서 '왜 안 가세요 기사님, 퀵 받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거기 있습니까'라고 재촉한다"며 "취소도 마음대로 못한다. 업체들이 기사에 대한 평점도 매길 수 있고, 취소가 5번 이상이면 앱에 뜨는 공유주문을 하나도 못 보도록 가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퀵 서비스엔 '급성'이라는 게 있다. KTX와 같이 속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데 보통 급성은 거리가 멀어서 그걸 하나 잡으면 다른 주문은 받지 못한다"며 "처음에는 일반이라고 떠서 물건 받으러 가보면 급성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제서야 취소하려고 하면 '안 받으면 앞으로 다른 주문도 못 받게 하겠다'고 욕설과 협박을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결국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급성인줄 알았으면 누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돈 벌려고 나왔지 봉사하려고 나온 것은 아닌데, 온갖 갑질이란 갑질은 다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박씨가 한 달 버는 수입은 150만원 남짓이다.

    ◇ "내 돈 떼먹은 건데…" 체불된 돈 받는 것도 회사 '선의'에 기대야 하는 현실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지만, 형식상 '사장님'이 되면서 근로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게 '4대 보험'이다.

    박씨는 "오토바이를 장시간 운전하다 보면 등쪽 골격계 질환이랑 허리 통증을 달고 산다. 혼자 넘어지는 등 사고가 날 때도 많고, 양쪽 고관절도 모두 무너진다"며 "일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산재 보상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한 업체와 전속돼 일하는 퀵서비스 노동자의 경우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 경우 일반 노동자와 같이 업체와 기사가 반반씩 부담하게 된다. 또 공유기사라 하더라도 중소기업 특례방식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는 있다. 다만 '사업자등록'을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거나 여러 채무에 얽혀 있는 경우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송사에서 작가로 7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9)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작가들이 PD 없이 혼자서 다 하는 경우도 있고, 야외 촬영에 다 따라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가 중에 현장에서 교통사고가 난 경우가 있었는데, 같이 갔던 PD와 기자는 산재 적용이 됐는데, 작가는 프리랜서라서 자비로 치료를 부담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회사로부터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오직 회사의 '선의'에 기대야 할 뿐 구제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김씨는 "방송의 경우 '온에어'(방송 송출)를 하지 않으면 페이를 정산해주지 않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며 "특히 다큐 같은 건 어떻게든 방송이 나가야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게 장기간 홀드가 되거나 하면 아무런 대책 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의상 딜레이가 너무 됐거나 프로그램이 더이상 나갈 가망이 없다 그러면 중간에 정산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임금체불은 명백한 범죄인건데, 이런 것들을 방송사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서글픈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이 없어지거나, 코로나19 등 변수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해고되는 사람도 작가들이다. 작가들 임금은 '인건비'에 포함돼 있지 않고 모두 제작비에서 지출이 되는데, 적자가 나는 경우 대부분 제작비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고용된 작가 수가 3분의 2 수준으로 감축됐다고 한다.

    특히 김씨는 '너가 원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가장 분노한다고 한다. 김씨는 "작가는 고정적으로 주어진 일하고 매일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데 그런 작가를 프리랜서로 밖에 뽑지 않으니까, 모든 작가가 프리랜서 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쯤 되니 프리랜서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프리랜서로 사람을 뽑으면 뭐든 다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규직은 노사가 협상할 때 근로계약서나 근로조건을 갖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뽑겠다'하고 뽑지만, 작가는 그런게 없으니 아무거나 막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작가 중 70% 이상은 계약서 없이 일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방송 원고 작성하는 게 작가의 주 업무인데, 출연자들 정산자료 취합부터 주차증 받아오는 것까지 온갖 잡무는 작가들한테 시키고 있다"며 "그래도 되니까, 프리랜서로 뽑아서 써도 되니까 이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국가에서 작가를 프리랜서로 고용하지 못하게끔 강제성을 띠게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 '전속성' 고집하는 정부…노동계 "일해서 돈 받으면 모두 노동자"

    현재 정부는 '사장님'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사업주에 종속돼 일하는 14개 직군 노동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로 인정해 산업재해보험 당연 적용 등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혜택을 받게끔 하고 있다. 2008년 보험설계사와 골프장 캐디 등을 시작으로 2012년 택배기사, 2016년 전속 대리운전기사, 2020년 방문판매원 등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특수고용직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직군이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 조사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특수고용직 노동자 수는 약 22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전통적으로 특수고용직에 인정되고 있는 165만명을 제외한 약 55만명은 새로운 형태의 특수고용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여전히 '전속성'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이미 특수고용직으로 인정이 된 퀵서비스기사나 대리기사의 경우에도 한 업체의 업무를 우선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전속성이 없다며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계에서는 '노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앞으로 플랫폼노동, 특수고용노동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인데 이를 전속성을 기준으로 나누면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며 "특수고용직에서 제외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여전히 정부는 특수고용직 인정을 조금씩 늘리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법 2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과 이에 준하는 수입의 의해 생활하는 사람을 말한다"며 "결국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속성 기준을 폐지한다면 4대 보험 납부를 어느 업체에서 책임지고 해야 하냐는 지적에 대해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노동자 한 명이 여러 업체의 콜을 받아 각각 70만원, 20만원, 10만원씩 수당을 받아 100만원을 벌었다면, 각 업체에서 7:2:1로 보험료를 나눠서 납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이번 기회에 이 부분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뒤늦게 전속성 기준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지난달 종합감사에서 "내부적으로 전속성 요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폐지하는 방향은 맞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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