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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앞둔 사참위 아리송 행보…배경엔 '가습기살균제' 갈등?



사건/사고

    종착역 앞둔 사참위 아리송 행보…배경엔 '가습기살균제' 갈등?

    지난 10일 회견 공지 후 이튿날 急취소…일시·내용 변경 진행
    "내용 보완 필요" 해명…일각선 "피해자단체 고발회견 작용"
    일부 피해자들, 지난 10일 위원장 등 관계자 3명 검찰 고발
    '피해자 더 찾기' 놓고…"세금낭비" 무용론 vs "진상규명 일환"
    전문가들 "사참위 활동 평가 필요" "피해지원 재단설립도 고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비대위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사회적참사특조위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활동 시한이 20여일도 채 남지 않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당초 예고했던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루 전날 급작스레 취소한 배경을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2년 간의 조사활동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시점에 확정적으로 공지됐던 일정이 바뀐 데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사참위 사이 갈등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참위는 지난 10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주요 장소인 '가정 외(外)' 피해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관련 기자회견을 이틀 뒤인 12일 개최하겠다고 공지했다. 대형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군(軍) 부대 현황'을 포함해 구매 내역이 확인된 공공기관들에 대한 조사내용도 공개될 예정이었다.

    공지 당시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 구매 내역을 대규모로 조사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그간 주로 구매 단위를 가정으로 상정해온 만큼 피해노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11일 오전 사참위는 돌연 "12일 기자회견을 내부사정상 연기한다. 혼선을 초래하게 돼 죄송하다"고 기존 공지를 번복했다. 이후 사참위는 18일 '최초 가습기살균제 개발 경위 및 제품공급 과정'을 주제로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개발된 1990년대 당시 기업들이 흡입독성을 제대고 검증하지 않은 채 우후죽순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혔다.

    최예용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1990년대 국내 가습기 살균제 개발 및 출시 상황과 시장형성 과정'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및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사 관련 '진상 규명'이란 큰 틀에서는 앞서 취소된 회견과 상통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참사의 '기원'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집이 아닌 다른 기관들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다는 기록은 결국 사건의 '결과'인 '새로운 피해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가정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국의 한 관계자는 "(취소된) 회견 내용 중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며 "이를테면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한 주체가 해당기관의 관계자 개인일 때 피해 영역을 기관 전체로 볼 수 있을지 여부의 문제 등"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사참위의 발표를 불편해하는 일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반발'이 회견 잠정연기를 불렀다는 전언도 나왔다.

    사참위가 회견을 취소하기 하루 전날(10일) 가습기살균제 참사 비상대책위원회 등 일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들은 "출범 시기부터 피해자들이 반대했던 '피해자 찾기'로만 혈세를 낭비했다"고 주장하며 사참위 장완익 위원장·최예용 부위원장·박항주 진상규명국 국장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틀 뒤인 12일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아동연대 등 또다른 피해자단체들이 서울 중구 사참위 앞에서 회견을 열어 "사참위가 피해 구제를 위한 대책 마련은 뒷전이고, 피해자 규모를 늘리기에만 집중했다"며 사참위를 성토하기도 했다.

    결국 사참위가 언론에 예고했던 일정을 급하게 취소한 건 '우선순위'에 대한 이견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참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회견 준비는 모두 세팅이 된 상태였지만 피해자들이 광화문에서 '사참위 해체'를 요구하는 고발 회견을 여는 상황 등이 부담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원위원회에서도 '지금 꼭 회견을 강행해야 되겠나. 조금 연기하자'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 9년이 된 8월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유족과 피해자,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사참위는 피해자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불만은 이해한다면서도 '피해자를 더 찾는 것도 중요한 진상규명의 일부'라는 입장이다. 앞서 사참위는 지난 7월 정부에 공식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6800여명이지만, 이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67만 명의 '1%'에 불과하다는 정밀추산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사참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장 큰 차이는 (후자의 경우) 절대다수의 피해자가 아직도 찾아지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피해를) 신고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신고되지 않은 다수의 소비자 입장은 또 다르다"고 고충을 밝혔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 중) 주요제품이나 규모가 큰 대기업이 아닌 마이너한 기업들의 제품들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하나도 조사가 안 됐는데 사참위가 조사해 알아낸 중요한 부분"이라며 "피해자들의 절실한 요구를 틀렸다 할 수는 없지만 (조사성과 중)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평가 절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양측의 갈등에 대해 '복잡한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사참위 활동 연장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년간 활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폐손상 조사위원회 등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실태를 들여다 봐온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시적이지만 이런 특별한 기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가능하면 피해자를 더 찾는 것도 사실 맞다고 본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해결을 요구하는 것'과 '전체 진상을 밝히는 것'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사참위 출범 당시) '어느 정도 수준까지 문제를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일부 피해자들 역시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의 전체적 방향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잘 풀어야 환경으로부터 발생하는 다른 건강상 문제를 담아갈 그릇이 만들어진다. 사참위의 경험을 잘 분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조사기구로서 사참위가 갖는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협조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전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전문가들도 사실 내부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판단이 깊게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사참위가 노력한 부분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활동 연장에 정당한 근거를 제공할 만한 성과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개발한 수면제 '탈리도마이드' 사례를 들어 "피해자들 중 신체·심리·정신적으로 장기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지속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재단이 설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참위의 활동이 종료되고 나면 이 이슈를 환기하고 지속해나갈 주체가 없어지게 되는 지점은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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