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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중대재해·사회적 참사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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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중대재해·사회적 참사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중대재해법, '공무원 처벌' 조항의 필요성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 (사진=독자 제공)

     

    산재사망 피해자 유가족 김미숙, 이용관 두분이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한지 14일 만에 겨우 법사위 소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가 시작되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이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핵심 법안들이 속속 빠지거나 축소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국회에서 들린다.

    김미숙 어머니는 "뺄거 다 빼면 죽는 사람들 못 막는다. 법 제정 제대로 하라!"를 글씨를 써서 피켓을 들었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을 통과해봤자 산재사고를 여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중대재해법을 둘러싸고 제대로 된 법을 통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이름 붙여진 법에는 노동자들의 반복된 사망사고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포함하고 있다.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책임 또한 묻고 있다. 이처럼 이 법에는 일상화된 노동자의 죽음과 예기치 않게 찾아온 대형 참사와 관련된 책임의 범위를 넓게 규정하고 있다.

    경총과 정부여당은 이러한 책임의 문제와 관련해 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이 책임의 문제야 말로 이 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참사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법의 기준이 보다 폭넓게 변화해야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참사가 일상화되었다는 말이 과장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참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되면서 참사는 재빨리 잊혀지는 동시에 더 빨리 찾아왔다.

    참사의 시간은 우연적이지만 구조적이다.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대신 빠른 수습을 택했고, 참사를 야기한 책임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가장 말단의 책임자를 처벌해왔다. 그러는 사이 참사는 노동현장에서, 지하철에서, 다리에서, 백화점 건물에서, 그리고 세월호에서 얼굴을 바꿔가며 발생했다.

    한국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좀 더 빨리,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이 도입된 계기는 1987년 런던 도심에 있는 킹스크로스 지하철역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30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대구지하철에서 회재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했고, 151명이 부상을 입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 최악의 지하철사고 중 2위로 기록된 이 대형참사는 영국처럼 기업살인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지 못한 채 방화범과 기관사 등 현장노동자들 몇을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대구지하철공사 사장과 대구시장이 기소되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우발적 방화가 대형화재로 순식간에 번질 수 있었던 것은 전동차에 사용해야할 재질을 불연재보다는 난연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전동차 제작비용을 낮추어 납품할 수 있었던 관련 제도의 문제가 있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질 않아 난연재 마저도 사용하지 않은 불법적인 전동차는 정부 검사에 합격을 받았다. 이른바 '불쏘시개 전동차'가 방화를 대형화재로 키웠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이 사고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책임져야할 자들을 찾아내는 동안 참사는 수습되었고, 사고조사보고서 하나 만들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세월호에 당도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가 본격화되자,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법안에 추가할 항목을 제안했다.

    윤석기 유가족 대표는 중대재해법 토론회에서 "법과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 있는 '공무원 처벌'조항은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들이 십수년간 사고의 원인을 추적해왔던 경험과 지식의 결과이자, 세월호 사고를 통해 다시 반복된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조항이다.

    중대재해와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뒤쫓다보면 어느새 기업의 행위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그 행위가 어떻게 합법적으로, 또는 관행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허술한 법과 제도의 문제뿐 아니라, 그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법의 집행과정상의 문제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드러나게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원청기업과 경영책임자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공무원의 책임을 묻는 것은 사회적 참사로 인해 드러난 안전의 문제가 곧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대형사고를 조사연구한 영국사회학자 찰스 페로가 지적했듯이 참사의 위험을 지닌 위험한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참사를 막을 수 없다. 참사에 가해지는 체계적이고 복잡한 권력의 연결망에서 위험이 증식하고 있는 지점을 찾아서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은 기업내부뿐 아니라 기업의 바깥까지 연결되어 있다.

    중대재해법에서 책임의 범위는 더 많은 죄를 묻기 위한 원한감정에서 발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한 사고조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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