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 광주전남사진기자협회 제공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10일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전씨의 불출석으로 인해 결국 2주 후로 연기됐다.
전씨 측 변호인은 항소심에서는 법리상 피고인 출석 없이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주지방법원 형사 1부(항소부·재판장 김재근 부장판사)는 10일 오후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전두환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피고인의 신원 확인을 위한 인정신문이 열리는 이날 항소심 첫 재판에 전씨는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통상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출석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재판부가 부득이한 사유로 불출석을 허가하더라도, 인정신문이 열리는 첫 공판기일과 선고기일에는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이날 법정에 들어선 재판장은 먼저 피고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했다.
전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365조 법리 등을 검토한 결과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종민 기자
형사소송법 제365조는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정하지 않으면 다시 기일을 정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에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규정이다. 하지만 전씨 측은 출석이 어려운 피고인에게 출석 의무를 완화해주는 취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며 피고인의 장거리 이동과 경호인력 동원 등을 고려해 피고인의 출석 없이 항소심 재판을 개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씨가 출석하지 않아 재판 개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며, 항소심 첫 재판 일정을 2주 뒤로 연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첫 공판기일에 불출석하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고 다음 기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관련법 상 두 차례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전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이 불출석 허가를 받고 싶으면 재판에 출석해 인정신문을 받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씨에 대한 재판은 오는 5월 24일 열릴 예정이다.
전씨 측 법률대리인은 법정을 나서면서 다음 재판에도 전씨가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취재진에게 표명했다.
관련법상 다음 재판에도 전씨가 출석하지 않으면 이후 전씨 측이 원하는 대로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인정신문 없이 항소심 재판 개정이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재판 과정은 전씨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관측이다.
5·18 단체들은 전씨가 사법부는 물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기념재단 정동년 이사장은 "역사의 죄인이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재판을 우롱하는 현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재판에 나오지 않는다면 구속해서라도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정의가 그나마 바로 서는 일이다"고 말했다.
앞서 전두환씨는 지난 2017년 펴낸 회고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헬기사격이 존재했다고 판단하며, 전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전씨 측은 양형 부당과 사실 오인 등의 이유로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전씨 측은 이후 항소심 재판을 서울에서 받게 해달라며 관할이전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