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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바티칸킹덤·용호상박 검거에도…'2030' 파고드는 마약

사건/사고

    전세계·바티칸킹덤·용호상박 검거에도…'2030' 파고드는 마약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서 마약 거래 활발…가상화폐 이용
    2030 젊은층 비율↑…유통·투약한 10대 학생 42명 적발도
    마약의 지능화·음지화…"잠입수사 위한 법적 보호책 필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단톡방' 캡처

     

    ◇'브랜드' 만들고 '후기'까지…'마약 쇼핑몰' 된 텔레그램

    "정상영업 중. 비방 답 없을시 개인대화로 걸어주세요. 현재 북미A, 북미B 가능. 남미 입고 예정입니다."

    UN이 정한 제35회 세계마약퇴치의 날을 하루 앞둔 25일에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단톡방'에는 마약 판매 홍보 글이 계속 올라왔다. 닉네임 'UK'(UNKNOWN820)를 사용하는 이 마약 딜러는 '취급품목 : 아이스(도매가능)'라며 버젓이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를 사용했다. '아이스'는 필로폰을 뜻한다.

    해당 방에는 현재 530여명이 들어와 있다. 동시 접속자만 50~60명에 이른다. '비방'은 '비밀대화방'의 줄임말로 UK가 따로 운영하는 방이다. 마약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접속 링크를 줘 별도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텔레그램 내 아동·성착취물 제작·유포방인 'n번방'의 운영 방식과 똑같다.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도 이런 식으로 유료회원을 관리했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단톡방' 캡처

     

    CBS노컷뉴스가 들여다본 '단톡방'의 행태는 여타 인터넷 쇼핑몰과 다를 바가 없었다. UK 외에도 여러 명의 딜러가 지속적으로 본인의 프로필과 취급하는 상품을 올리고, 열심히 홍보한다. 현재는 'Cardi B', 'Dream', 'PartyDRG' 등의 닉네임을 사용하는 딜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LSD, 케타민, 대마, 코카인, 필로폰 등 취급하는 품목이 달랐다.

    특히 이 중에서도 '단톡방'의 운영자인 UK는 필로폰을 여러 '브랜드'로 나눠서 판매하기도 했다. "남미술(신)은 남미술(구)에 비교해 정제작업이 잘 돼서 맑아졌다", "남미술(신)은 북미술(A)에 비해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UK는 마약 구매자의 '후기' 글까지 올렸다. 영락없는 쇼핑몰이다.

    결제는 흔적이 남지 않는 '가상화폐'로만 가능했다. 누군가 '가상화폐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면 친절하게 전자지갑 개설부터 입금까지 설명해줬다. '추적이 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하면 "믹싱이 됐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믹싱'이란 여러 사람에게 암호화폐를 받아 섞은 다음 이를 다시 분배하는 방식으로, 그 출처를 추적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단톡방' 캡처

     

    ◇전세계, 바티칸 킹덤, 용호상박까지…거물급 검거에도 끝없어

    과거 마약 거래는 주로 '다크웹'(또는 다크넷)으로 이뤄졌다. 다크웹은 이용자가 IP 주소 등을 암호화한 후 접속이 가능한 웹사이트로, 특정 브라우저를 이용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다. 최근에는 텔레그램이 마약 판매의 장(場)으로 급부상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19년 10월 활동을 시작한 '마약왕 전세계'다.

    그는 2016년 필리핀에서 한국인 남녀 3명을 총기로 살해한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주범 박왕열(41)로 파악됐다. 박씨는 살인 사건으로 필리핀에서 재판을 받던 중 2017년, 2019년 두 차례 탈옥했다. 두 번째 탈옥 후 텔레그램으로 국내에 마약을 판매했다. '전세계=박왕열'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의 국내 총책 A씨가 검거되면서다. A씨는 필리핀 수용소에서 박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에 붙잡힌 박씨는 현재 현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박씨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아 국내에 판매한 또 다른 총책이 바로 '바티칸 킹덤' B씨다. 20대 중반의 B씨는 텔레그램으로 박씨를 알았고, 총 7억 4천만원에 달하는 마약을 공급받아 국내에 유통하다가 붙잡혔다. 이때 공급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씨다.

    가상화폐 구매대행사를 이용해 마약 대금을 지급 받은'용호상박'(A씨) 일당의 체계도. 사진제공 인천경찰청

     

    A씨와 B씨가 검거되는 등 이른바 '박왕열 라인'이 소탕되자 '용호상박'이라는 인물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마약 공급상 2세대의 출현이었다. '기호지세', '오방' 등 이름의 비밀대화방을 운영한 그는 '사자'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사자'는 밀반입책 4명을 통해 마약류를 해외에서 구입했고, 총 10억원 어치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사자'는 가상화폐 구매대행사를 만든 C씨와 사전 공모를 하기도 했다. '사자'는 마약 구매자에게 C씨가 만든 대행사에 대금을 입금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지난 1월 C씨가 구속됐고, 이어 3월 '사자'마저 구속되면서 이들 일당 17명은 일망 타진됐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0년 마약류 범죄백서'. 사진제공 대검찰청

     

    ◇작년 마약사범 1만8천여명 역대 '최다', 젊은층↑…"잠입수사 등 법적 보호 마련해야"

    국내 마약사범은 최근 급격하게 늘고 있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0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8050명으로 역대 최고 숫자를 기록했다. 2016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 2018년 1만2613명으로 조금씩 줄어드는가 싶더니, 2019년 1만6044명으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12.5%가 증가한 것이다.

    '밀수사범'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383명에서 2017년 481명, 2018년 521명, 2019년 783명, 2020년 837명으로 점차 늘어났다. 대검은 "대마를 재배해 다크웹·텔레그램 등을 통해 판매한 사례가 증가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국제우편·특송화물 등을 이용한 비대면 밀수입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20~30대 비율이 늘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젊은층에 마약이 쉽게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3월부터 3개월 간 마약류 사범 집중단속을 실시해 총 2626명을 검거하고 614명을 구속했다. 이 중 20대가 36.1%, 30대가 24.5%로 '2030'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또 불법으로 처방받아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판매·투약한 10대 청소년 42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0년 마약류 범죄백서'. 사진제공 대검찰청

     

    마약 범죄가 지능화·음지화하는 만큼 이를 단속하는 경찰의 수사기법 또한 현실에 맞춰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곽대경 교수는 "마약 조직의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찰이 잠입 수사 등을 해야 한다"며 "함정 수사·인권침해 등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수사관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장현석 교수 또한 "마약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서로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일반 범죄와는 다른 수사기법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라며 "판매 조직 중 맨 아랫선을 검거한 다음 정보원으로 활용해서 윗선을 잡아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경찰관은 징계를 각오해야 한다"며 수사관 보호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매년 6월 26일은 1987년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마약퇴치의 날'이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마약 남용이 없는 국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2020 월드 드럭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마약 남용인구는 2억 6900만명으로 2009년에 비해 약 30% 증가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마약류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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