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에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사법개혁 공약 가운데 첫손으로 꼽혔던 법무부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현 법무부장관이 공개 반대 의견을 냈다. 공약 실현을 위해선 법안 개정이 필수적인데, 거대 야당이 반대한다는 입장이 확인되면서 향후 여야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윤 당선인의 공약집 '검찰개혁 분야'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공약 발표 당시 "수사지휘권을 둔 나라는 독일, 일본, 우리나라 세 군데다. 독일과 일본은 사문화됐다"면서 "많이들 보셨겠지만 법무부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는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악용될 기회를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를 사법개혁 첫 손에 꼽은 배경에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겪은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이 3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을 침범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 전 장관과 박범계 장관이 7개 사건에서 3차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그 기준과 내용이 법과 원칙보다 정치적 압력과 보은에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8조에 근거한다. 법무부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내용이다. 1949년 12월 20일 제정된 검찰청법에 수사지휘권이 포함됐다. 1986년 검찰청법 개정 때 제14조에서 제8조로 바뀌었을 뿐 문구는 그대로다. 다만 이같은 법 조항은 정치적 논란을 부를 수 있어 헌정사상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한 사례는 총 4차례에 불과했다.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을 상대로 행사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천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지휘권을 행사했고, 김 전 총장은 이를 수용하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3차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모두 문재인정부 들어 나왔다. 2020년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갈등 국면에서 2차례 발동했고, 박 장관도 지난해 3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한 모해위증 혐의와 관련해 지휘권을 행사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박범계 법무부장관은 공개적으로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그는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지휘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수사의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 사법 공약에 해당 공약을 발표했을 때는 말을 아꼈지만, 이날은 분명한 어조로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박 장관은 검찰의 수사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수사지휘권을 없앤다면 검찰 일선에 수사 경과와 결과 결정에 대해 검증할 방법이 없고 공정성 시비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이유다. 박 장관은 "중견검사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윤 당선인과) 관계와 인연을 맺고 있어 눈빛만 봐도 금방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사지휘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수사의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지휘권 행사 남발로 검찰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면 검찰권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따라서 무턱대고 제도를 폐지할 게 아니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독단적인 검찰권 행사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어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만 보더라도 국민들은 현 정권에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다만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폐지를 실현하려면 그 전에 검찰권 견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