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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바른 자세로 앉으라'는 법원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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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뒤끝작렬]'바른 자세로 앉으라'는 법원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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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2003년 '검사와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대통령과 평검사들이 계급장을 떼고 주고받은 그때 격론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러 모로 회자됩니다만, 당시 소소하게 화제를 모았던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강금실 법무부장관입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기도 했던 그가 맨다리를 드러낸 채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바람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었죠. 대통령 앞에서 건방지게(?) 다리를 꼬고 있다니요. 하도 논란이 되니 한쪽에서는 당시 미국 권력 서열 3위로 꼽혔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은 대통령 앞에서는 물론 의회 질의에서도 다리를 꼬고 대답한다며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를 질타했습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대통령의 권위가 실추됐다며 강 전 장관을 비판했었구요. 강 전 장관보다 기수가 한참 아래인 평검사들이 대통령의 학력을 조롱했던 자리에서 더 떨어질 대통령의 권위가 있었을까 싶지만, 아무튼 다리 꼬는 것은 권위에의 도전 그 자체였습니다.

    2022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기자가 잠시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거든요. 상당수 법원 출입기자들은 '풀(press pool)'을 꾸려서 공판 수십개에 들어가 한시간 단위로 재판 워딩을 칩니다. 10월 어느날, 저는 일명 사법농단 공판의 풀러였습니다. 재판부와 피고인, 검사 모두 장장 163회에 걸친 공판에 다소 지친 듯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그 법정의 방청석에 나홀로 앉아 한시간 내내 워딩을 치다 보니 저도 조금은 지쳤었나 봅니다.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었나 봐요. 법정 경위님이 소리없이 다가와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늘같이 높은 법대 위 판사님들은 방청석엔 눈길도 주지 않으셨지만, 순간 '바른 자세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다리를 꼬는 것이 법인가'까지 오만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문제 제기를 하면 법정 밖으로 쫓겨날 것 같고, 워딩을 치지 못하게 되니 바른 자세로 추정되는 자세로 고쳐 앉았습니다.

    풀러의 의무를 마치자마자 법원 보안관리대 내규를 찾아봤습니다.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해 법원마다 내규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여 서울중앙지법 보안관리대 내규를 따로 요청해 살펴봤습니다. 올해 7월 개정된 중앙지법 내규에 따르면, 법정경위의 업무지정 범위는 크게 △법정질서유지 △증인 및 방청인 신변보호 △법정 소란행위 예방 및 제어로 나뉩니다. 구체적으로는 껌 씹는 행위, 휴대폰 벨소리, 옆사람과 대화, 재판부에 항의 또는 욕설, 부채질을 하거나 신문을 펼쳐서 보는 행위, 혐오감을 주는 복장을 제지할 수 있습니다. 또 코를 골거나 몸을 젖혀 눕는 행위, 기타 정숙하지 못한 행위도 제지할 수 있습니다. '다리 꼬기'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기타 정숙하지 못한 행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경위님이 제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내규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규에 구체적으로 적시된 행위들은 우리 사법부보다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도 공통적으로 제지하는 것들입니다. 법정 내 최소한의 안전과 권위를 보장하는 도구로서 내규는 필요합니다. 다만 '정숙하지 못한'이라는 다소 자의적인 표현을 써가며 방청객들을 제지하는 것은 허례허식에 가깝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실 제가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낀 게 그날 처음은 아니었으니, 운 나쁘게 걸렸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법정에 따라 제지당할 때도 있고 넘어갈 때도 있는 셈인데, 사람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는 것을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들어가는 공판에서 꽤 유명한(?) 피고인들 상당수가 꾸벅꾸벅 졸거나 맨손체조도 가끔 하는데, 법정의 권위를 존중하는 정숙한 행동이라서 별다른 제지를 당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의문이네요.

    제 경험담을 전직 판사나 검사, 혹은 현직 변호사들한테 말해주면 다들 비슷한 경험담들을 경쟁적으로 풀어놓습니다. "너는 다리 꼬았냐, 나는 팔짱 끼고 있다가 당했다", "'칼정장' 안 입고 갔다가 꾸중 들었다"는 변호사들도 있었습니다. 전직 판사 한 분은 "어떤 부장판사님은 여름만 되면 세숫대야에 찬물 받아서 발 담그고 있었다"며 오래 전 자신의 초임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는 한 검사님의 팁 아닌 팁이었는데요, "법대랑 검사석, 피고인석은 방청석과 다르게 앞이 막혀있어서 안 보이잖아. 다들 다리 꼬고 있어. 조금 뒷좌석에 앉아있지 그랬냐"는 팁이었습니다.  

    법원 내규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제가 처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쳐야 한다는 아우성, 몇년째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올해 개정된 내규에 철 지난 조항이 포함돼 있을 뿐입니다. 다만 이 말씀을 첨언 드리고 싶습니다. 20년 전 강 전 장관한테는 자세 지적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회 분위기였지만 요새는 무슨 소리를 듣는 줄 아시나요? 2020년 10월 대검찰청 국감에 당시 검찰총장 신분으로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 비스듬히 앉아 답변하는 그에게 박범계 의원은 "자세를 똑바로 하라"며 "지금 피감기관의 입장이 아니냐"고 호통을 쳤었습니다. 박 의원에게 돌아온 말은 '꼰대'였습니다. '모태 쩍벌남'으로 유명한 윤 대통령이 국회의 권위를 무시하려고 삐딱하게 앉아있던 게 아니고 원래 자세가 그런 거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먼나라 얘기긴 하지만 2007년 영국 사법부는 수백년 동안 이어온 복장 규정을 뜯어고치는 결단을 내립니다. 특히 하얀 가발을 민사와 가정법원에서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습니다. 영국 사법부의 드레스코드는 14세기 에드워드 3세 때부터 만들어진 전통 중의 전통입니다. 전통을 고치자고 하니 사법부의 권위가 실추될 수 있다며 반발도 컸죠. 그래도 영국 사법부는 수십년 동안 논의를 이어왔고, 2007년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논의의 책임자였던 어바인경은 "특별히 귀기울여 들은 것은 법정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일반 대중의 의견이었다"며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4세기부터 이어온 전통도 고칠 수 있는데 2006년 만들어진 내규를 고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도 20년 전에서 한 걸음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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