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경기남부경찰청은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출산한 아기를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한 아파트 내 냉장고에 수년간 시신을 보관한 친모 A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이 참담한 사건은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감사를 진행하던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자가 2천여명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면서 행정적 조치가 진행되던 중 드러났습니다.
감사원 통보를 받은 수원시청은 출생신고가 없는 이유와 정황을 살피기 위해 현장방문을 했다가 이를 거부하는 A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후 경찰의 압수수색 결과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습니다.
A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12살 딸, 10살 아들, 8살 딸 등 이미 3자녀를 뒀는데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되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같은 인면수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출생미신고 영아' 2123명 전수조사…사망자 34명·행방불명 782명
감사원은 출생 직후 접종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HBV) 1차 예방접종 시 등록된 임시 신생아번호를 활용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 미신고 영유아' 2236명을 찾아냈습니다. 1%인 23명만 표본조사했는데도 아동 4명은 숨진 상태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들 중 2123명을 다시 추려 6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열흘간 전수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당국의 수사와 조사가 진행되면서 출생 미신고 상태로 사라진 아이들과 사망한 아이들의 유기 사례가 확인된 건수가 날마다 불어났습니다. 부산에서는 생후 8일만에 숨져 인근 야산에 유기한 친모, 경기 용인에서는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남자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한 친부, 인천에서는 출생 하루 만에 숨진 영아를 텃밭에 묻은 친모 등 긴급체포됐습니다.
'출생미신고 영아' 2123명에 대한 열흘간의 전수조사에도 782명(7월10일 기준)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출생미신고 영아 사건 1069건을 접수해 939건을 수사 중이고, 이 중 34건은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사망 사건 34건 중 19명은 혐의없음으로 수사 종결, 4명은 살해 정황이 확인돼 친부모 등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11건은 살해 등 강력 범죄에 연루 가능성을 두고 수사 중입니다.
문제는 생사 여부가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영아 782명입니다. 서울이 205건으로 가장 많고 경기 남부 183건, 경기 북부 85건, 인천 71건, 경남 51건, 부산 47건 등입니다. 지난 7일 정부의 공식 전수조사는 마무리됐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아이 생사가 불명확한 사례가 추가로 발견될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계획입니다. 보건복지부는 12일 예정이었던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일부 마무리되지 못한 지자체가 있다"면서 다음 주 초로 연기했습니다.
영아 살해·유기 피의자 대부분 10·20대…"출산 사실 알까바 두려워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21년 9년간 영아살해 피의자 86명 가운데 10·20대가 67명으로 대다수였습니다. 성별로는 여성이 78명, 남성이 8명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영아유기 피의자는 10대 73명, 20대가 140명으로 10·20대가 전체(361명)의 절반이 넘는 59%를 차지했습니다. 30대는 118명, 40대가 1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윤신 조선대 의대 법의학교실이 지난 5월 대한법의학회지에 게재한 '영아유기·치사 범죄의 법의학적 분석' 논문에 따르면, 영아를 유기한 산모 60%는 '출산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지난 2013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세 이하 영아가 피해자인 판례 20건(유기치사 10건·유기 10건)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특히 부모에게 알려지는게 두려운 경우가 7건이었고, 그외 가족 1건, 계부 1건, 배우자 1건 등 순이었습니다. 그외 유기 사유로는 '경제적으로 양육하기 어렵다'가 8건, '생부를 알 수 없어서'가 4건, '키울 자신이 없어서'가 4건 등이었습니다.
영아 피해 사건 20건 중 미혼은 18건, 기혼은 2건이었습니다. 유기 당시 산모 연령은 20대가 13건, 10대가 2건으로 전체의 75%(15건)을 차지했고 이어 30대(3건), 40대(1건) 등 순이었습니다.
이처럼 영아 살해·유기 범행에서 10·20대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출산하게 되는 경우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영아살해죄…이대로 유지해야하나?
경찰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의 피의자 A씨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영아살해죄' 혐의에서 '살인'으로 변경했습니다. 국내 현행법상 영아살해죄의 처벌 정도는 일반 살인죄보다 훨씬 경미한 수준입니다. 살인죄의 경우 형량의 상한선 없이 최소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하지만, 영아살해죄는 하한선 없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6월 22일 전주지법은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20대 B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출산 직후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던 점, 반복된 출산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2021년 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C씨는 아이를 화장실에서 몰래 분만한 뒤 화장실 창문을 통해 4층 아래로 던져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나이 정도면 상황 판단을 잘해서 현명하게 대처했어야 했다"고 질책하면서도 구형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과 유사하게 냉동고에 아이 시신 2구를 수년째 보관한 2017년 부산 영아살해 사건 피의자 역시 징역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습니다.
영아살해죄가 제정된 것은 6.25 직후인 1953년입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원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아살해죄는 우리가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할 당시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긴 규정"이라며 "현재 국내 상황상 영아살해죄를 용납할 필요가 없다. 폐지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피고인에 공감하고 감형할 게 아니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을 엄하게 판단하는 쪽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신진희 변호사는 "사례에 따라 아동학대치사, 아동학대 살해죄 등 적용 가능한 혐의에서 어떤 법을 적용할지 판단할 문제다. 굳이 폐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도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이 실존하고, 특히 10대 미혼 산모의 경우 불안정한 정신상태에서 범행하는 경우가 많아 엄벌주의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다"며 "사회 시스템적으로 모자 보호가 그렇게 잘 돼 있다고 할 수도 없어 영아살해죄 폐지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진국에선 영아살해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1994년 영아살해죄를 없앤 프랑스는 현재 영아살해를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고 사안에 따라 종신형을 내리기도 합니다. 독일은 1998년 영아살해죄를 없앴으며, 미국과 일본은 영아살해죄를 별도로 두지 않고 일반 살인죄와 동일하게 보고 있습니다.
영국은 1938년 제정된 법률에 근거해 피의자가 출산이나 출산에 따른 수유, 우울증 등으로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자신이 낳은 생후 1년 이내 아기를 죽였을 때 감경요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영아 살해·유기 대책은 없나?
출생미신고 아동들이 숨지는 비극이 잇따르는 가운데 병원의 출생 통보 의무화 등 관련 법안 15건이 국회에 수년간 계류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직무 유기'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국회는 부랴부랴 6월 30일 본회의를 열고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시 의무적으로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신고하는 제도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출생등록제' 시행시 신분 노출을 꺼리는 친모가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익명으로 출산하는 '보호출산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 혹은 미성년 임산부 등에게 익명의 출산을 보장하고 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맡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보호출산제 특별법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의결된 출생통보제와 달리,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양육 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야당의 우려 때문입니다.
미혼모, 미성년 등의 임산부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미혼모들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독일과 영국은 임신부터 출산 진료비까지 의료비가 전액 지원됩니다.
우리나라는 임산부의 정신적 안정을 돕는 제도도 부족한 편입니다. 임신 갈등을 겪는 위기 임산부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가족센터는 전국 244곳에 불과합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임신단계에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임신갈등상담소가 1300곳이나 됩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미혼모 대상으로 출산 등 비용에 사용할 수있는 100만원 상당의 '국민행복카드'를 지원하고 있고, 여성가족부는 만 18세 미만의 아동을 양육하는 한부모 가족(중위소득 60%이하)에 월 20만원, 청소년 한부모 가족에는 월 35만원 등의 아동양육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등 제도 도입도 중요하지만 미혼 부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보편적 임신, 출산, 양육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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