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올리고 또?…지하철, 왜 약자들의 싸움터가 되었나[노컷스토리]

핵심요약

22일 총파업 예고…지하철, 오늘도 빚지며 달린다
철도는 지원, 지하철은 불가? "정책결정 국가가 해놓고…비정상"
부담은 전적으로 시민에게…"노인 때문" 화살은 약자 향해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이틀간 경고파업에 돌입한 9일 오전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이틀간 경고파업에 돌입한 9일 오전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저번달에 지하철 요금 올리지 않았어요? 근데 파업을 왜 해요? 1차 파업 때도 지하철이 안와 평소보다 40분 더 걸려 퇴근했는데…"
내방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지은씨(29세)는 오는 22일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2차 총파업 소식을 접하자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물론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이유는 '요금 인상'이 아닙니다. 사측이 경영정상화 목적으로 제시한 인력 감축안에 대한 이견 때문입니다. 인력 감축이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명분이죠. 그러나 사측은 극심한 경영난 때문에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어쨌든 일반 시민들에게는 요금 인상도, 파업에 따른 이용 불편도 애로사항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문제의 밑바닥에는 서울교통공사의 극심한 재정난이 깔려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공사의 누적 적자는 지난해 기준 17조 6808억 원에 달합니다. 이 때문에 수도권 기본요금을 1250원에서 1400원으로 조정됐죠. 내년 상반기 추가 2차 인상도 예고한 상황입니다.
공사의 재정난, 요금 인상으로는 부족한 걸까요?

지하철, 오늘도 빚지며 달린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지하철은 여전히 빚지며 달리고 있습니다. 적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수송 원가보다 낮은 요금 △노인 무임승차가 꼽힙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수송 원가는 1904원으로 승객 당 평균 운임료는 1014원인데요. 성인 1명이 직접 내는 요금이 1250원이어도 노인과 같은 무임 승객이나 어린이 등 저비용 승객을 반영하면 236원 줄어들게 되죠. 지난해 지하철은 달릴 때마다 1인당 890원씩 빚을 진 셈입니다.
내년 상반기에 요금을 추가로 인상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노인 무임 승차 제도가 가격 인상 효과를 상쇄시키기 때문이죠.
서울교통공사 재무제표에 따르면 지난해 당기순손실(6420억 원)의 49%가 무임손실(3152억 원)로 발생했는데, 이중 84.5%가 노령층이었는데요.
2년 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단 몇백 원의 요금 인상으로 적자 해소를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철도는 지원, 지하철은 불가? 오세훈 "정책결정 국가가 해놓고…비정상"

지난 1월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월 3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중앙 정부에게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무임승차 손실분의 일부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오 시장은 "국가에서 정책 결정을 했고 법률과 시행령으로 '해야한다'고 규정하는데 그 부담은 지자체 혼자 짊어지라니 비정상"이라고 호소했습니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현재 기재부는 도시철도법에 따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분을 일정 부분 보전하는데요. 이에 같은 호선 내에서도 구간별로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서울교통공사 측 관계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남영역에서 타 노량진역(초록 선)에서 내린 무임승객은 정부로부터 보전받지만 청량리부터 서울역 사이 구간(빨간줄)의 무임승객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캡처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남영역에서 타 노량진역(초록 선)에서 내린 무임승객은 정부로부터 보전받지만 청량리부터 서울역 사이 구간(빨간줄)의 무임승객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캡처
"예를 들면 1호선 중 청량리부터 서울역 사이 구간은 서울교통공사가, 나머지는 코레일이 운영해요. 남영역에서 타 노량진역에서 내린 무임승객은 정부로부터 보전받는데, 청량리부터 서울역 사이를 오간 무임승객은 정부 지원이 0원인 상황입니다."
기재부는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철도와 달리 지하철은 지방자치단체 고유 사무로, 이에 따른 손실보전도 모두 지자체 각자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매년 전국 13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지하철 법정 무임승차 손실을 국비로 보전해달라'고 다같이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연도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에도 관련 PSO(공익서비스에 따른 손실비용 보전)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부담은 전적으로 시민에게…화살은 약자를 향한다

정책 원인자(국가)와 책임 부담자(지자체)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재정 부담은 시민들의 몫이 되고 화살은 약자를 향합니다. 노인의 지하철 무료 이용 자체가 문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대표적이죠.
당초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지난 1984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노인복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결정됐습니다. "노인복지 향상과 경로사상을 높이기 위해서"죠.
일각에선 무임 기준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법정정년은 60세에 머물러있는데 65세 이상 노인의 복지 정책을 축소하는 방향은 사회적 퇴행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OECD 회원국 중 1위인만큼 복지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죠.
서울시는 PSO 사업 관련 국비 보전을 계속 요청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21년도에 국토부 측에서 PSO 사업 관련 용역을 진행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며 "용역 결과 발표가 계속 지연되는 상황이라 결과가 나온 후에 논의를 좀 더 숙성시키고 그때까지 결정을 보류하자는 입장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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