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B씨의 계좌로 보낸 입급 전표.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순박한 여고 동창생을 속여 20년 동안 2300여 차례에 걸쳐 8억여 원의 돈을 가로챈 4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인생의 절반을 믿었던 친구에게 조종당한 피해 여성은 사기를 친 친구를 걱정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 1988년 16살의 나이에 충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온 A(44·여) 씨.
어려운 가정형편과 타지생활의 외로움 속에서도 근로학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까지 마쳤다.
중소기업을 다니며 꿈을 준비하던 A 씨에게 여고 동창생인 B(44·여) 씨가 나타난 건 이들이 22살이던 1994년 여름.
다른 동창생을 통해 만난 B 씨는 순박한 A 씨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외로움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꿰뚫었다.
그 순간, 20년 동안 이어진 A 씨를 상대로 한 B 씨의 꼭두각시 놀음은 시작되고 있었다.
A 씨에게 수시로 연락을 하며 환심을 산 B씨는 1997년 7월 고교 친구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사망사고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A 씨를 속여 3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어, 자신이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며 A씨의 여린 마음을 이용해 400만 원의 돈을 가로챘다.
B 씨는 A 씨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일본으로 건너간 1998년 이후 본격적인 상납 고리를 만들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A 씨는 물론 가족들의 신변에까지 위험이 닥친다고 협박한 B씨는 A씨가 일본에서 번 돈을 이틀에 한 번 꼴로 자신에게 보내도록 했다. 가끔식 자신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목돈을 받아 오기도 했다.
친구를 믿었던 A 씨는 10년 간 타국에서 안마사와 게임장 종업원 등 갖은 일을 하며 번 수억 원을 고스란히 A 씨에게 전달했다.
2009년 A 씨가 한국으로 돌아오자 B 씨는 더욱 노골적으로 A 씨를 조종했다.
B 씨는 고향으로 돌아간 A씨를 부산으로 유인해 주점 종업원으로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A 씨가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이 퍼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를 사용했다며 6년 동안 매일 같이 이자 명목으로 돈을 뜯었다.
심지어 집에서 A 씨를 위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A 씨에게 치킨과 김밥, 해물탕 등을 사오라고 시켜 자신이 먹기까지 했다.
올해 2월 B 씨는 새로운 거짓말을 생각해냈다.
음식을 사서 B씨에게 들고가는 A씨의 모습.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A 씨를 위해 사용한 사채 때문에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됐다며 A 씨의 연민을 끌어낸 것이다.
B 씨는 본인을 모 사찰 총무원장으로 소개하며 A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교도소에 있는 친구를 빼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1인 2역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돈 보다도 친구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들었던 A 씨는 친구의 근황을 알기 위해 3번에 걸쳐 부산 구치소를 찾았다.
수감사실이 없는 사람을 애타게 찾는 A 씨를 보다 못한 교도관이 A 씨에게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을 권유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20년 동안 B 씨가 A 씨에게 받아 가로챈 돈만 2300여차 례에 걸쳐 8억여 원에 달했다. 증빙 자료가 없는 것까지 더하면 12억 원을 넘을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친구를 20년 동안 속인 B 씨는 A 씨가 보내 준 돈으로 고급 아파트에 살며 백화점 VIP고객에 이름을 올리는가하면 수시로 해외 여행을 다니는 호화생활을 했다.
반면, B 씨에게 자신이 번 돈의 대부분을 보낸 A 씨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극심한 생활고에 평생을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기 등의 혐의로 B 씨를 구속하는 한편 B씨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보낸 이들이 더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여죄를 캐고 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일반적 이해가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친구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벌인 사기 행각"이라며 "모든 사실을 알게된 피해자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