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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카파도키아, '박해'의 숨결을 읽다



여행/레저

    '천혜'의 카파도키아, '박해'의 숨결을 읽다

    카파도키아. (사진=김진오 기자)

     

    지구상에 자연 경관과 인간의 슬픈 역사가 켜켜이 아로새겨진 곳이 얼마나 있을까.

    터키의 카파도키아는 기암괴석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해 1985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찾아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300km 남쪽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 자리한 광활한 기암괴석 지대로, 눈이 즐겁다 못해 휘둥그레진다. 입에선 "어찌~ 이런 곳이 있나" 감탄사가 연신 쏟아져나온다.

    수천 년에 걸친 화산활동과 지각변동, 퇴적·풍화작용에 의해 이뤄진 암반지대와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계곡, 기암괴석에 구멍을 내고 삶을 일궜던 자취들을 보고 느끼며 자연과 인간의 위대함을 깨닫는 곳이다.

    버섯이나 낙타 모양을 한 기괴한 바위들로 이뤄진 산에는 비둘기 집처럼 네모 반듯한 구멍이 뚫려 있는가 하면, 깎아지른 듯 천애의 절벽이 멋드러지게 조화를 이룬다. 장면 장면마다, 모양 모양마다 저마다의 특색과 형색을 드러내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게 만든다.

    카파도키아. (사진=김진오 기자)

     



    괴레메 암반 박물관이란 곳을 열기구로 체험한다. 2014년 2월 26일 새벽 4시(터키 현지시간)에 기상해 주섬주섬 옷을 꾸린 뒤 열기구 준비 센터로 이동한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 뒤 열기구 탑승을 위해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를 지나 열기구에 오른다. 탑승 인원은 크기에 따라 10명에서 25명까지다. 바람이 좀 세계 불거나 안개가 짙게 끼면 카파도키아 관광의 백미인 열기구를 탑승할 수 없단다.

    열기구가 지축을 박차고 하늘하늘 날아오르자 탑승객들의 탄성이 터진다. 열기구가 기암괴석에 바싹 다가가자 이내 괴성으로 바뀐다. 열기구가 바위와 부딪칠 것 같더니 어느덧 멀찍이 날아올라버리는 조종술의 마력을 느낄 새도 없이, 또 다른 기암괴석들과 계곡들을 가로지른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열기구의 좁은 공간에 갇히다시피 한 관광객들은 이리저리 겨우 자리를 바꿔가며 괴레메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카파도키아. (사진=김진오 기자)

     



    구름이 조금만 비켜줬으면 카파도키아의 일출과 한국의 동해바다, 지리산 천왕봉의 그것과 비교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간직한 채 카파도키아 하늘을 점점이 수놓은 열기구들을 바라본다. 서로 부딪칠 듯이 계곡 구석구석을 훑으며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던 열기구는 어느새 착륙을 준비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한 시간 동안 카파도키아 곳곳을 즐겼다는 뿌듯함이 흥분으로 바뀐 지 오래다. 열기구가 착륙하면서 땅을 찍는 진동은 포만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열기구를 타기 전에는 좀 비싸다고 볼멘 소리를 하던 탑승객도 있었다. 170유로, 우리 돈으로 25만원쯤 되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비싸긴 뭐가 비싸요"라며 감동에 젖은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 박해를 피해 만든 지하도시 - 데린구유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하려고 만든 지하도시 데린구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구유는 깊이가 120m로 지하 20층에 이른다. 미로로 연결된 지하도시에는 학교와 교회, 포도주 저장고, 감옥, 공동 취사장, 묘지 등 생활에 필요한 지하 공간들이 거의 갖춰져 있으며 최대 2만 5천 명까지 살았다고 한다.

    공기의 순환을 돕는 환기구와 물을 받아 사용하는 공동 우물도 지하에 있다. 데린구유는 1960년 한 어린이가 자꾸 사라지는 닭을 찾고자 쫓아갔다가 발견돼 1965년 처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데린구유. (사진=김진오 기자)

     

    데린구유. (사진=김진오 기자)

     



    2월 말의 날씨인지라 바깥은 상당히 쌀쌀하지만 지하도시는 거의 일정하게 영상 10~17도를 유지해 생활하기에도 안성맞춤이란다. 따라 내려오는 일행을 위해 "계단, 머리~ 조심" 등을 외치며 지하 4층까지 내려간다.

    지하로 내려가는 돌 계단이 너무 좁아 고개를 숙여야 하고 벽에도 부딪치기 십상. 길도 워낙 미로여서 일행과 함께 이동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당시 적들인 로마군이 지하로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맷돌 같은 큰 돌 덩어리가 특히 인상적이다. 어찌 이런 기막힌 착안을 했을까. 지하 통로를 돌로 막아버리면 단 한 명의 로마군도 지하로 내려올 수 없게 돼 있다.

    인간의 한계와 역량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된다. 신앙의 힘이 아니었어도 이런 인고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를 수 차례 자문한다. 이렇게까지 신앙을 지켜나간 믿음의 선조들이 있기에 오늘날의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통칭)가 번성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지하도시에 피신해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공인된 AD313년 이후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하에서 살았다고 하니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과 신앙 앞에 숙연해진다.

    ◈ 우치히사르

    기암괴석(응회암)의 집합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카파도키아는 모든 곳이 관광지이자 기독교의 성지 같은 곳이다. 우치히사르는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1,300m에 위치해 있다.

    수도사들이 신앙을 지키며 예수의 가르침을 수행하고자 바위산에 큰 구멍을 뚫고 생활했다고 한다. 이들은 비둘기를 키워 편지 왕래와 소통의 도구로 썼으며 작금에는 비둘기의 부유물이 이 지역의 경작지에 거름으로 활용된단다.

    네모난 구멍이 어찌나 큰지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셀주크 투르크 족이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부터는 지역 군 사령관이 가장 높은 구멍에 집무실을 두고 카파도키아 전체를 조망하며 군 초소처럼 활용했다는 설도 있다.

    우치히사르. (사진=김진오 기자)

     



    ◈ '괴레메 계곡'과 '파사뱌'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본 것과는 달리 지상에서 관찰한 괴레메와 파샤바 계곡은 고깔모자나 레고 장난감처럼 다양한 생김새의 바위들을 한데 모은 곳이다. 송이버섯처럼 몸통은 하얗고, 갓은 거무튀튀한 버섯 박물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녹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땅, 바위와 흙으로만 이뤄진 이 기이한 땅은 영화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이곳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크의 고향 행성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애니메이션 '스머프'의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다.

    현지인들은 버섯바위에 요정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 '요정이 춤추는 바위'로 부르는 동시에, 고대 수도사들이 바위 군데군데 구멍을 뚫고 신앙생활에 몰두한 곳이어서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부른다.

    군인 두 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파샤바 계곡을 경계하고 있었다. 터키 동부 이라크, 시리아 국경 부근과 수도인 앙카라에서 가끔 폭탄 테러가 발생해 한국 외교부는 터키를 여행제한 구역으로 묶어놓고 있다.

    괴레메 계곡. (사진=김진오 기자)

     

    괴레메 계곡. (사진=김진오 기자)

     

    파사뱌. (사진=김진오 기자)

     

    파사뱌. (사진=김진오 기자)

     



    350만 년 전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90m까지 치솟아 굳은 응회암이 풍화침식작용과 지각변동을 겪으며 기기묘묘한 바위와 암반, 계곡으로 변했다. 여기에 숨을 불어넣은 것이 인간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파도키아로 숨어들었고 부드러운 응회암반 속에 암굴 교회와 수도원을 비롯한 생활터전을 형성했다. 슬프면서도 꿋꿋한 기독교 신앙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자연과 인간의 숨결, 신앙심이 한데 어우러진 합작품, 카파도키아는 이렇게 탄생했다. 히타이트인으로 시작해 로마인, 페르시아인, 알렉산더대왕 시절의 마케도니아인에 이어, 우리가 돌궐족으로도 부르는 오스만 투르크족까지.

    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카파도키아는 20세기가 돼서야 세계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터키 여행 3편은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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