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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 그들만을 위해서" 배리어프리 이창열 회장



부산

    "단 1%, 그들만을 위해서" 배리어프리 이창열 회장

    시청각 장애인들 위한 '듣고, 보이는' 영화 제작하는 배리어 프리영상 포럼

    배리어프리영상포험의 재능기부자들. 대부분 전문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은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개인 시간을 쪼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맨 왼쪽에 배리어프리영상포험 이창열 대표 (사진=부산 CBS 김혜경 기자)

     

    가끔 친구와 기울이는 한잔의 술에서 멋진 발상이 나온다.

    2011년 8월, 부산 조방 앞에 50대 금융맨과 영화인 둘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들은 역사·사회·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랄만한 생각을 하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30여 년 전 고등학교 방송반 아나운서 출신인 금융맨은 이때부터 더빙 성우로 데뷔하게 된다.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영화 바다로 안내하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영상포럼'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 주인공은 배리어프리포럼 이창열 회장(BS투자증권 전무)이다.

    "부산은행 부행장으로 근무할 때 부산국제영화제 지원사업을 했었죠. 그때 동갑내기인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소주 한잔 하던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늘 관심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이렇게 일이 풀리다니…참 신기하죠?"

    배리어프리포럼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재능기부자들이 주축이 돼 회원 50여 명으로 결성됐다.

    배리어 프리라는 용어는 장애로부터 자유롭다는 건축학 용어에서 따왔다.

    이들은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영화를 따로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섬세한 해설을 통해 화면이나 물체의 실체를 이해하도록 해설한다.

    청각 장애인에게는 듣지 못하는 부분을 화면 자막이나 부호를 사용해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제작한다.

    발족 4년 만에 현재 영화 제작 전문 작가만 30여 명, 성우 20여 명 등 80여 명이 상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보수 없이 일하는 재능기부다.

    "포럼 회원들은 방송국 아나운서, 작가, 더빙 전문배우 등 전문 직업인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 보상도 없이, 누가 알아주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봉사로 인한 기쁨 때문에 짬을 내서 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 일 자체에 대한 행복과 보람이죠.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도 어엿한 전문 성우 배우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일본영화 <해를 바라보는="" 개="">에서 은퇴한 50대 후반 연기를 한 것에 이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목소리 더빙 등 모두 4편에 출연했다.

    "시각 장애인들은 듣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주 민감합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화, 톤, 느낌으로 이해해서 감탄사 하나라도 세심하게 연구하고 녹음작업을 하죠. 영화가 끝나면 제 연기에 대한 호평도 있지만, 특정 대사에 더 신경을 써서 연기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애정 어린 질타도 받곤합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서도 배리어프리영상포럼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작업한 국내영화 12편과 외화 6편 등 영화 18편이 상영되고 있다.

    배리어프리영상포럼 이창열 대표

     

    배리어프리 상영관은 4년전 부터 시작됐지만, 올해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앱 실행으로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접하지 못한 시청각 장애인이 간단한 기기만 있으면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어져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람도 크지만 아쉬움도 많다.

    유럽 등 선진국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을 위한 해설을 같이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때문에 원래 영화에다 따로 녹음한 음성을 싱크에 맞춰 틀어야 해 음질상의 문제, 감독의 의도대로 원작대로 전달하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우리나라 시청각 장애인은 전 인구의 1%인 약 50만 명입니다. 선진국도 이 비율은 비슷한데요. 그들은 1%를 위한 수고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우리도 그런 공감대가 널리 퍼졌으면…단 1%를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영화인들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배리어프리포럼은 발족한지 1년 남짓 지났지만 영화를 넘어서 다른 문화 영역 부분으로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술작품인 전각(塡刻)이다.

    시각장애인이 미술장르를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깬 시도이기도 하다.

    일단 장애인들은 작품의 색깔, 크기, 의미에 대한 해설을 듣고 전각의 음양각을 손으로 짚어보고 작품을 감상하다.

    이때 손끝이 작품을 느끼는 '눈'이 되는 셈이다.

    "놀라운 일이죠. 그들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 손끝과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느낌을 나누는데 정말 놀랍게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이 비장애인보다 높았어요. 앞으로 그림이나 사진으로 돼 있는 평면작품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포럼 회원들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배리어프리 포럼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 아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매년 1회 부산시청 직원 400여 명을 영화의 전당에 초대해 검은색 안대를 착용하고 배리어 프리 영화를 감상하는 행사가 그것이다.

    장애인과 관련된 복지 업무를 하던 공무원들은 2시간 동안 암흑천지인 극장에서 장애인들이 들으면서 보게되는 영화를 느끼며 자신이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진다.

    "부산에만 시청각장애인 3만 5,000여 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자연스럽게 신체적, 정신적 합병증이 생기기도 하죠. 이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 '문화'입니다. 그것은 동시대에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민이어야 합니다. 그들의 불편과 갈증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배리어프리의 목표이죠"

    평생을 은행에 몸 담아와 숫자에만 빠져 있었을 것 같았던 이창열 대표.

    하지만 그는 언제든 색소폰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열정이 있고, 점심시간 마다 인근 서점에 들러 신간을 살피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사무실에 항상 따뜻한 물을 끊여놓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소주 한잔에서 시작된 발상이 아니라, 준비된 이의 실천이 배리어프리포럼의 원동력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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