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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국방장관' 신성모… "그래도 젊은 날 해군 육성 강조"



책/학술

    '최악의 국방장관' 신성모… "그래도 젊은 날 해군 육성 강조"

     

    '김구 암살 지령자', '거창양민학살사건 주모자' 등 각종 설과 악평 속에 1960년 사망한 신성모 대한민국 초대 국방장관은 젊은 시절 해군 육성을 강조한 선구자였다는 색다른 평가가 나왔다.

    국학인물연구소 조준희 소장은 30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313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신성모 사망 이후 그를 주목한 학술연구는 그동안 한편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유족 면담과 그가 거쳐간 상하이, 난징, 일본, 영국을 답사한 결과 그에 가해진 '악평'은 거의 '누명'에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성모가 '적국(敵國)인 일본이 섬나라이므로 해양 국방을 굳게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1913년 중국 우쑹(吳淞)상선학교를 다녔고 한때 중국 해군에서도 복무했다고 설명했다.

    1920년에는 백산상회 독립자금 전달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는데 석방후 영국에 유학가, 1923년 '킹 에드워드 7세 항해대학(King Edward Ⅶ Nautical College)'에 입학해 3년 뒤 졸업했다.

    이어 1930년께부터 선원, 1939년에는 선장시험에 합격해 영국 상선회사에서 선장으로 광복 때까지 활동했고 이후 해군력 강화에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조 소장은 또 신성모는 1913년 대종교에 입교, 이름도 '철(澈)'로 바꾸고 '단군'을 숭모했으며 이극로, 안호상과 돈독한 친교를 해왔다고 밝히고 "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성모에 대한 그동안 평가는 부정적이고도 억측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직접 해외 실증자료를 챙겨보니 새로운 평가가 가능했다. 물론 시각에 따라 내 발표가 도발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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