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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공익변호사 박준영 "정의로워도 잘 산다는 걸 보여주겠다"

인물

    '파산' 공익변호사 박준영 "정의로워도 잘 산다는 걸 보여주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해결하려다 파산…시민들 1억 펀딩으로 후원

    - 국내 최고 재심 전문 변호사
    - 학벌도, 배경도 없이 5년 공부해 사시 합격
    - 사건 수임 어려워 국선변호사로 시작
    - "반드시 해결하겠다 마음 먹고 현장에서 뛰었다"
    - 형사사건에 공익 변호사 거의 없어
    - 약촌오거리 사건 다룬 영화 <재심> 제작 중
    - "정의로우면서 잘 사는 선례 만들겠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8월 16일 (화)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준영 변호사


    ◇ 정관용>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15년 8개월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작년 11월에 우리 사법 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해서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크게 주목받았고 담당 변호사였던 박준영 변호사, 저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죠. 알고 보니 이 박준영 변호사가 국내 최고의 재심 변호사, 재심전문 변호사 이렇게 불려져 왔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파산을 선언하고요. ‘나 좀 살고 봐야 되겠으니 돈 좀 주십시오’ 모금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지 우리 박준영 변호사를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준영>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파산했어요?

    ◆ 박준영> 법적으로 제가 파산 신청을 한 건 아니고요. 실질적으로는 파산이다라는 그런 개념입니다.

    ◇ 정관용> 빚이 얼마입니까?

    ◆ 박준영> 제가 은행 대출이 한 3억 정도 됩니다.

    ◇ 정관용> 3억?

    ◆ 박준영> 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적금은 다 깨서 썼고요. 물론 제 집, 아파트 보증금이 3천에 월 55만원이거든요. 그래서 3천만원은 재산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제 아이들 엄마가 돈 벌 때 연금이나 이런 거 들어놓은 건 있는데 그건 지금 빚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고요. 제가 실질적으로 파산을 얘기하게 된 이유는 뭐냐 하면 이게 대출이 만기연장이 잘 됐었거든요. 그런데 매출이 없다 보니까.

    박준영 변호사

     


    ◇ 정관용> 매출이 없다 보니까.

    ◆ 박준영> 네, 공익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만기 연장만 해 달라 그러면 이자 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그래서 당장 9월 1일자로 기존 대출에 대해서 만기연장을 안 해 주겠다는 취지로 통보를 제가 받았었거든요. 그러면 개인적인 생활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익적인 활동을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서.

    ◇ 정관용> 알겠습니다. 자녀가 몇이세요?

    ◆ 박준영> 셋 있습니다.

    ◇ 정관용> 셋. 몇 살, 몇 살?

    ◆ 박준영> 9살, 6살 이제 뒤집은 아이 하나 있습니다. 100일 지난 아이.

    ◇ 정관용> 부인은 전업주부?

    ◆ 박준영> 네.

    ◇ 정관용> 변호사가 언제 되신 거예요?

    ◆ 박준영> 제가 2006년부터 변호사 했습니다.

    ◇ 정관용> 지방대학 중퇴하시고 사법고시를 했다고요?

    ◆ 박준영> 네, 제가 목포대학교라고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 전자공학과 1학년 1학기 마치고 더 이상 안 다녔습니다.

    ◇ 정관용> 왜요?

    ◆ 박준영> 군대에 갔다 와서 복학을 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이 있었고요. 제가 또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 군대 갔다 와보니까 다른 친구들 저보다 못했던 애들이 좋은 대학 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고 뭔가 한번 뒤집어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고시를 생각했었습니다.

    ◇ 정관용> ‘중학교 때까지 잘했는데’ 하고 말을 안 한 거 보니까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안 했군요.

    ◆ 박준영> 고등학교 때는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지방대학을 갔군요.

    ◆ 박준영> 시골에서 고등학교 나오고 공부 전혀 안 했거든요. 제가 창피한 얘기지만 수학 미적분도 모릅니다. 공부를 고등학교 때 전혀 안 했습니다, 하나도.

    ◇ 정관용> 뭐 하셨어요, 고등학교 때?

    ◆ 박준영> 놀았죠. 놀고 아무런 목표도 없었고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술 먹고 가출하고.

    ◇ 정관용> 그러다가 군대 갔다 와서 친구들 좋은 대학 가 있는 거 보니까.

    ◆ 박준영> 네.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또 이렇게 주변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쟤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했는데’ 좀 약간 안타깝게 보는 부분도 있지만 약간 좀 시선이 안 좋았어요.

    ◇ 정관용> 그래서 선택한 게 좋아, 사법고시다.

    ◆ 박준영> 처음에는 고시였습니다.

    ◇ 정관용> 행정고시?

    ◆ 박준영> 아니, 그냥 고시... 고시가 3개가 있잖아요. 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가 있는데 셋 중에 뭘 한번 해볼까 했는데 군대 한 달 선임이 사법고시를 공부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방학 때 신림동으로 간대요. 그래서 저도 같이 가자 해서 덩달아 또 올라갔죠.

    ◇ 정관용> 몇 년 공부했어요, 그래서?

    ◆ 박준영> 5년 했습니다.

    ◇ 정관용> 5년.

    ◆ 박준영> 2002년에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 정관용> 2002년에?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런데 변호사가 된 건 왜 2006년이에요?

    ◆ 박준영> 2003년도에 사법연수원 들어갔는데...

    ◇ 정관용> 연수원은 2년이잖아요.

    ◆ 박준영> 네, 아버지 빚을 떠안은 게 꽤 됐었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도와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법시험 공부 도중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분한테 제가 돈을 좀 크게 빌려줬습니다, 대출 받아서. 그게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카드 8개로 돌려막기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채무증명서 이런 거 제출해서 휴학했었습니다, 1년.

    ◇ 정관용> 휴학하고.

    ◆ 박준영> 1년 동안 밖에서 일하기도 하고.

    ◇ 정관용> 무슨 일 하셨어요?

    ◆ 박준영> 그게 연수원생 신분이 공무원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당시에 불법을 저질렀는데요. 과외도 좀 하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해서 어쨌든 빚 좀 어떻게 어떻게 하고.

    ◆ 박준영> 네. 빚도 좀 갚고 또 과외하면서 과외했던 사람의 아버지가 돈이 많은 분이셔서 돈 좀 5년 뒤에 갚을 테니까 5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해서 이제 변호사 사무실 혼자 개업했어요?

    ◆ 박준영> 처음에는 개업할 돈이 없으니까 고용변호사로 수원에서 한 1년 반 있었고요. 개업은 어떻게 하게 됐냐면 2007년 여름에 1년 동안 미국으로 유학 가는 변호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이 유학 갈 때 사무실을 비워놓고 갔는데 월세만 내면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번 개업 시도를 그때 했었습니다.

    ◇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좀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또 집안의 채무관계 등등도 복잡하고 이제 한번 변호사 돼서 돈 좀 왕창 긁자, 이렇게 생각한 것 아니에요?

    ◆ 박준영> 그렇게 생각했죠.

    ◇ 정관용> 그렇죠?

    ◆ 박준영>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됩니다.

    ◇ 정관용> 왜요?

    ◆ 박준영> 학벌이 없고 배경이 없고 하다 보면,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것 자체만 놓고 본다면 고등학교만 나오고 대학교 1년 중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합격한 이후에는 그 변호사 업계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저는 그렇게 대우를 받는 변호사가 될 수 없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준영> 공부를 잘해서 성격이 완전 좋으면 모르는데 그건 또 안 되더라고요, 또.

    ◇ 정관용> 연수원 졸업 1등 이런 거 하면 혹시 몰라도.

    ◆ 박준영> 그건 저희랑 머리가 완전 다른 사람들입니다.

    ◇ 정관용> (웃음) 사시도 간당간당 붙고.

    ◆ 박준영> 간당간당 붙고.

    ◇ 정관용> 연수원도 간당간당 졸업하고.

    ◆ 박준영> 네. 거의 제가 끄트머리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변호사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흙수저 변호사다.

    ◆ 박준영> 제가 금수저, 흙수저 얘기는 잘 안 쓰는데요. 하여간 어찌됐든 간에 제가 출발부터가 많이 뒤쳐져 있었습니다.

    ◇ 정관용> 1년 반 고용변호사로 월급을 받았었고.

    ◆ 박준영> 네, 월급 받고.

    ◇ 정관용> 그러다가 개업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안 오니까.

    ◆ 박준영> 개업을 할 때부터 저는 좀 마음을 먹었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 박준영> 고용변호사로 있으면서 절대 이 변호사 업계에서는 사건 수임 능력이 내가 안 된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이런 로타리클럽 이런 데 가서 기웃해 보기도 하고 약간 영업도 하려고 사람도 만나기도 했는데요.

    ◇ 정관용> 법조 브로커도 쓰고, 막.

    ◆ 박준영> 그건 제가 처음부터 생각을 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좀 고집이긴 한데 제 스스로 뭐든지 해야 된다는 생각이 가장 강했거든요. 처음부터 편하게 해버리면.

    ◇ 정관용> 좋아요. 그래서 사건 수임 안 됐다.

    ◆ 박준영> 사건 수임 안 되니까 국선으로 눈을 돌렸죠. 그때만 해도 국선 서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선도 한 건당 20만원, 30만원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밖에라는 표현을 써서 죄송합니다만 여러 건을 많이 하면 박리다매가 되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박준영> 그러다 보면 한 달에 수십 건씩 했죠.

    ◇ 정관용> 국선 변호를.

    ◆ 박준영> 네. 어떨 때는 창피한 얘기인데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쭉 앉아 있는데 헷갈려서, 제가.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해서.

    ◇ 정관용> 그래서 근근이 사무실을 운영하고 아이들도 좀 키우고. 먹고 살고.

    ◆ 박준영> 그러면서 기회만 저는 포착했습니다.

    ◇ 정관용> 어떤 기회?

    ◆ 박준영> 이슈화될 수 있는 정말 결론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사건 하나만 걸리면 그거 꽉 잡고 끝까지 간다고 생각을 했죠. 그게 수원 노숙소녀 사건이었습니다.

    ◇ 정관용> 수원?

    ◆ 박준영> 노숙소녀 사건.

    ◇ 정관용> 어떤 거죠, 그게?

    ◆ 박준영> 7명의 노숙인과 미성년자가 사람 죽였다는 허위자백했던 사건이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대법에서 무죄 나오고.

    ◆ 박준영> 무죄 나오고 재심도 무죄가 나왔습니다. 그 사건이 처음에 저한테 왔죠.

    ◇ 정관용> 국선 변호로.

    ◆ 박준영> 국선 변호로 왔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요?

    ◆ 박준영> 처음에는 아이들이 죽인 걸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검사 앞에서 허위자백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딱 보니까, 좀 보니까 이게 아닌 거예요. 아, 이건 무죄구나. 그런데 이 사건이 언론에 많이 이미 보도가 돼 있었어요. 야, 이거 언론에 이미 보도된 사실관계를 뒤집어버리면 진짜 제가 유명해지겠더라고요. 그러면 저를 사람들이 막 낮게 보는 사람들도 높게 볼 수 있고.

    ◇ 정관용> 그런데 확신이 딱 들었어요? 무죄다?

    ◆ 박준영> 무죄라고 확신이 들었죠.

    ◇ 정관용> 그래요?

    ◆ 박준영> 물론 사람을 자주 보면 느낌도 들고 또 자백내용이 현장상황과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 박준영> 그리고 또 느낌이 확 왔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런 경우에 경찰, 검찰은 모든 증거를 가지고 수사를 해서 딱 논리적으로 꿰맞춰 놓잖아요.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걸 변호사가 혼자 뒤집을 수 있어요?

    ◆ 박준영> 저는 그런데 사람이 어떤 공익적인 관점에서만 일을 한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좀 따져볼 텐데 저는 공익적인 관점도 물론 있었지만 제가 한번 제대로 잘 나가고 싶었거든요, 그 사건으로.

    ◇ 정관용> 솔직하시네요.

    ◆ 박준영> 저는 정말 공익적인 사건에 있어서 공익성뿐만 아니라 자기 개인의 어떤 목적만 제대로만 잡히면 정말 사건 잘 해결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그때 힘들게 했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눈에 불을 켜고 현장을...

    ◆ 박준영> 현장을 엄청나게 다니고.

    ◇ 정관용> 현장을 뒤지고.

    ◆ 박준영> 네, 현장 뒤지고.

    ◇ 정관용> 증거 하나하나 뒤집고?

    ◆ 박준영> 그 아이들이 수원역에서부터 수원고등학교를 갔다는데 그 수원역부터 수원고등학교를 수십 번 왔다 갔다 했죠. 그리고 또 국과수의 부검의 이런 분들한테도 사실조회 요청 같은 것도 하고 법의학자 이런 분들한테 메일 다 보내서 이것에 대한 자료 좀 달라고 하기도 하고. 또 이런 허위자백 사례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에 외국 논문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는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고 싶었거든요.

    ◇ 정관용> 혼자서 그걸 다 하셨어요?

    ◆ 박준영>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다들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이 사건 굉장히 큰 사건이고 잘 되면 진짜 저 유명해질 수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시큰둥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결론이 나야 이 사람들이 믿겠구나 생각해서 제가 말도 안 했죠. 그래서 혼자 했습니다, 그때는.

    ◇ 정관용> 그거 지금 쭉 말씀 들어보면 거의 경찰이 하듯이 한 거네요.

    ◆ 박준영> 왜냐하면 평범하게 생각하고 그냥 어느 정도 적당히 하려고 생각했다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겠죠.

    ◇ 정관용> 그러니까요.

    ◆ 박준영> 그런데 해결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는 현장에 가지 못할 이유는 없거든요.

    ◇ 정관용> 가야죠, 사실은. 가야 되는 게 맞는 거죠.

    ◆ 박준영> 최선을 다했습니다. 잘 나가려고 그때는.

    ◇ 정관용> 그때가 언제였죠?

    ◆ 박준영> 그때는 제가 그 사건을 97년에 맡았습니다. 아니, 2007년에.

    ◇ 정관용> 2007년에.

    ◆ 박준영> 아, 2008년 1월달에 맡았습니다. 그때부터 쭉 했었습니다.

    ◇ 정관용> 처음 무죄 난 게 언제였죠?

    ◆ 박준영> 아이들 무죄 난 건 2010년 7월 22일날 무죄 났습니다.

    ◇ 정관용> 딱 2년 7개월 걸렸네요.

    ◆ 박준영> 네. 그리고 재심을 청구했던, 기존에 형을 살고 있던 노숙자 분한테 무죄 확정 판결이 난 건 2013년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 아이들한테서 무슨 돈 받고 수임료 받고.

    ◆ 박준영> 아이들 돈이 없어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인데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 정관용> 한 푼 생기지 않는데 매달려서 그걸 해내셨군요.

    ◆ 박준영> 그것도 공익성을 얘기하시는데 개인적인 목적이 있으니까. 돈이...

    ◇ 정관용> 말씀하셨어요. 내가 이걸로 확 뜬다.

    ◆ 박준영> 네, 확 떠보고 싶었죠. 물론 사람들이 ‘그러면 뜨겠다는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가져갔느냐’라고 얘기하신다면 그건 저는 좀 억울해요. 처음에는 물론 공익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이 컸지만 사건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눈물도 보고 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을 좀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 정관용> 점점 공익이 커지고.

    ◆ 박준영> 네. 그러더라고요. 그게 변하는 거고.

    ◇ 정관용> 사람이 달라지는 거죠.

    ◆ 박준영> 네, 그렇습니다. 달라집니다.

    ◇ 정관용> 무죄 딱 나고 유명해졌죠?

    ◆ 박준영> 그때 유명해졌죠.

    ◇ 정관용> 그다음에 어떻게 됐어요?

    ◆ 박준영> 그래서 사건들 많이 들어왔죠.

    ◇ 정관용> 그때 맡기는 사건들은 어떤 사건들이에요?

    ◆ 박준영> 이런 저런 형사사건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 정관용> 형사사건, 억울하다 이런 거.

    ◆ 박준영> 네. 그래서 정말 힘든 사건들도 많이 들어왔고.

    ◇ 정관용> 수임료도 제대로 받고.

    ◆ 박준영> 그렇죠. 물론 못 받을 수 있는 사건도 안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으로 떠서 이렇게 사건이 들어오는데 너무 돈만 밝히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적절하게 조율해가면서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 정관용> 그러다가 돈도 좀 벌고 그랬을 것 아니에요, 그때는.

    ◆ 박준영> 규모화시키려고 했죠, 저는 사무실을.

    ◇ 정관용> 변호사도 고용하고?

    ◆ 박준영> 네, 2명 고용했고 직원도 4명 있었습니다. 한참 있을 때는. 규모화시키는 게 해답이다, 이쪽 업계는. 문제는 옛날같이 합동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소규모라 해도 로펌으로 가야 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좀 크게 갔었습니다.

    ◇ 정관용> 사무실을 키웠다.

    ◆ 박준영> 네, 키웠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요?

    ◆ 박준영> 키우다가 그때 키우고 돈도 벌고 해서 제주도에 식구들하고 여행을 갔다 왔어요. 갔다 오는 길에 올림픽대로를 차를 타고 수원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장경욱 변호사라고.

    ◇ 정관용> 민변 장경욱.

    ◆ 박준영> 민변 변호사한테 전화를 받은 거예요, 제가. 그런데 그분이 그 당시에 전화를 하면서 탈북자 간첩사건이 있는데 허위자백사건이다. 같이 할 수 있냐라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서울시 공무원?

    ◆ 박준영> 아닙니다. 그 후에 홍강철이라고 ‘북한 보위부 직파 간첩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제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안 준 게 장경욱 변호사가 최승호 PD의 소개로 저한테 전화를 한 거더라고요.

    ◇ 정관용> PD수첩의 최승호 PD.

    ◆ 박준영> 네. 그 최 PD 그 유명하신 분이 저를 안다는 것에 흥분해서.

    ◇ 정관용> 둘은 몰랐는데 서로?

    ◆ 박준영> 아니, 저한테 전에 한 번 전화가 왔었는데 통화만 한 적 있었는데 그분이 저를 소개시켜준다는 게 너무 흥분되는 거예요. 그리고 장경욱 변호사가 누군지도 몰랐거든요, 사실. 종북변호사라고 일부 불리기도 하는데.

    ◇ 정관용> 민변 소속 아니에요?

    ◆ 박준영> 민변 변호사이기도 하고.

    ◇ 정관용> 아니, 본인은 민변 소속 아니에요?

    ◆ 박준영> 네. 저는 민변 아닙니다.

    ◇ 정관용> 아니에요?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런데 무턱대고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요.

    ◆ 박준영> 그리고 허위자백 전문가라고 저한테 얘기를 하니까. 거기에서 제가 생각 없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건을 하게 된다는 걸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거기에서 오케이를 해버린 실수를 범했죠, 그 당시에.

    ◇ 정관용> 그래서요?

    ◆ 박준영> 사무실 가서 장경욱 이름 치니까 우와, 정말 이건 절대 아닌 사건을 했구나. 그래서 발을 떼려는 상황에서.

    ◇ 정관용> 본인의 전문 분야가 전혀 아닌데.

    ◆ 박준영> 그것도 그 사건 하면 이제부터 이념에 딱 들어가게 되고 저는 항상 다들 박수 쳐주는 사건만 했지, 내가 왜 국가보안법 사건 해서 지금 잘 해보려고 하는데. 안 하려고 했었죠.

    ◇ 정관용> 그런데요?

    ◆ 박준영> 안 하려고 하다가 저는 발 뺐죠. 장경욱 변호사한테 어떻게 핑계를 대고 안 하려고 했는데 또 다른 간첩사건이 터졌어요. 그게 수원구치소였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자 분이었거든요. 면회만 가달라고 하니까 아, 그냥 미안해서 한번 갔거든요. 거기에서 제가 한 번 머리를 때린 거죠. 진짜 탈북자 간첩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구나. 그래서 아. 그때부터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면 잘 살려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뭔가 좀 규모화시키려고 했는데 탈북자들이 혈혈단신으로 넘어와서 이렇게 또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게 좀 약간, 같이 사는 동포고 사람인데 왜 그럴까 해서 그때 좀 많이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 정관용> ‘나만 좀 잘 돼야지’ 이걸 내려놨다.

    ◆ 박준영> 네. 그냥 적당히 먹고 살자. 좀 약간 내가 손해 보는 것도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결국 그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 박준영>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무죄판결을 2심까지 받았고요. 여자 분은 너무 늦게 관여가 돼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죠. 그런데 그분은 무죄입니다.

    ◇ 정관용> 본인이?

    ◆ 박준영> 언젠가는 재심해서 제가 무죄 밝힐 겁니다.

    ◇ 정관용>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 박준영> 제가 그렇게 확신하고 실체가 무죄입니다. 대법원이 잘못 판단한 겁니다.

    ◇ 정관용> 어쨌든 대법원은 유죄됐다. 그런데 거기도 또 매달리면 시간 많이 들고.

    ◆ 박준영> 엄청나게 들죠. 탈북자 간첩 사건하면서 사무실을 말아먹기 시작했죠. 왜냐. 모든 증거가 북한에 있잖아요. 모든 사실관계 확인을, 북한에서 벌어진 일을 확인하는 데 한계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러면 탈북자들을 만나러 다녀야 돼요. 그 지역과 어디라도 연관이 돼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또 그분들은 굉장히 기피하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안 만나려고 하죠.

    ◆ 박준영> 그러면 계속 그런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 정관용> 시간 많이 들죠.

    ◆ 박준영> 네. 그리고 허위자백 사건이기 때문에 일일이 그 수천 페이지 기록이거든요.

    ◇ 정관용> 그러면 다른 사건 못 하고.

    ◆ 박준영> 사실상 못했죠. 저는 전혀 안 했습니다, 그 당시에.

    ◇ 정관용> 후배 변호사 둘 고용했잖아요.

    ◆ 박준영> 그렇죠. 그분들한테 일을 맡겠죠. 그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죠.

    ◇ 정관용> 왜요?

    ◆ 박준영> 돈 안 되는 공익사건, 남들 다 박수쳐주는 사건은 제가 하고 당신네들은 사무실 운영해야 되니까 돈 버는 사건 당신네들이 해라. 이게 말이 안 되거든요. 거기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고 힘들어지는 거예요.

    ◇ 정관용> 아, 후배들이 불만을 터트리니까.

    ◆ 박준영> 불만을 적극적으로 토로하지는 않았는데 느낌이 팍 오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 이게 병행하는 게 한계가 있구나’.

    ◇ 정관용> 아예 내보냈어요?

    ◆ 박준영> 한 사람, 한 사람씩 내보냈죠.

    ◇ 정관용> 그리고 계속 공익사건만?

    ◆ 박준영> 그때부터는 비용이 줄어드니까 또 할 만하더라고요. 돈도 있었고.

    ◇ 정관용> 아, 모아놓은 거 까먹으면서.

    ◆ 박준영> 마이너스 대출로 다 빼먹었죠.

    ◇ 정관용> 그러면서 그 사건 말고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이런 사건들도 다 재심?

    ◆ 박준영> 네, 그것도 진작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 정관용> 이런 분들도 옥살이 하고 나오신 분이나 그 가족들이 억울하다고 찾아온 거죠?

    ◆ 박준영> 그건 아닙니다.

    ◇ 정관용> 아니에요?

    ◆ 박준영> 이분들한테는 찾아갔죠.

    ◇ 정관용> 아, 본인이?

    ◆ 박준영> 익산 사건 같은 경우에는, 수원 노숙소녀 사건의 대법원 무죄 판결이 2010년 7월 22일날 났거든요. 그 무죄 판결 이후에 한겨레신문 기사가 나갔는데 그 기사를 보고 그 해에 출소했거든요. 익산 소년이. 그 기사를 본 SBS 기자 한 분이 원래 다른 분하고 사건을 진행하려다가 아, 저하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 정관용> 그것이 알고 싶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 박준영> 네, SBS 이대욱 기자라고. 그분이 연락해서 한 번 같이 해 보자. 그래서 그냥 그 당시만 해도 솔직히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지상파 방송에서 기자가 연락 오면 또 관심사건이니까 한 번 해보자.

    ◇ 정관용> 또 떠보자. 한 번 떠보자.

    ◆ 박준영> 그런 생각도 굉장히 강했습니다, 솔직히. 그러고 익산 사건 그 사람은 직접 가서 설득했어요. 재심 청구 한번 해 보자, 도와줄 테니까. 본인은 자포자기 상태였거든요. 삼례 사건은 익산사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2003년 영상을 봤어요, 제가. 방송 영상을. 2003년도. 그 영상에 딱 익산 사건하고 삼례 사건이 같이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삼례 사건 딱 현장 영상 보니까 억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제가 자발적으로 방송국에다 전화했죠. 이 영상과 관련된 자료 있으면 달라.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자료를 한 권을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사람 찾아다닌 거예요, 그 당시에.

    ◇ 정관용> 지금 너무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좀 유명해지고 싶었다. 돈도 좀 벌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만나고 만나니 불쌍하고 그러니 거기에 빠져들었다’.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러다 나는 지금 돈 못 버는 변호사가 됐다. 그 말이군요.

    ◆ 박준영> 그렇죠. 솔직한 게, 사람들은 너무 솔직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저를 잘 알아요. 솔직하면 제가 어필이 되는 상황이라는 걸 제가 너무나 잘 아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감추려고 하지 말자는 거죠.

    ◇ 정관용> 그래서 작년에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 공익대상을 우리 박 변호사한테 줬네요.

    ◆ 박준영> 제가 어떻게 받았는지 그 내부적인 사정은 좀 있습니다. 원래는 공익대상심사위원회에 어떤 한 위원 분인지, 대표 분인지 그분이 저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분이 그날 심사하러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가게 됐대요. 그래서 원래 대한변협 공익대상이 각 지방 변호사회에서 추천을 통해서 심사를 하는데 저는 추천대상이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원래. 그런데 추천자 중에서 마땅한 사람이 없었나 봐요. 현장에서 누구를 추천해 보라고 했는데 그분이 가서 저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거예요.

    ◇ 정관용> 아니, 저희가 그 속사정까지는 알 것 없고 대한변호사협회가 공식적으로 선정한 공익대상이니까.

    ◆ 박준영> 공식적으로 선정은 됐죠, 제가.

    ◇ 정관용> 공익의 상징이 돼 계신 것 아니에요.

    ◆ 박준영> 뭐 그냥 제가 어떻게 상징이라고까지는 그렇지만 하여간 큰 상을 받긴 받았죠, 제가.

    ◇ 정관용> ‘재심’이라는 영화도 지금 만들어지고 있죠.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건 어느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까?

    ◆ 박준영> 약촌오거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 정관용> 그렇죠. 지금 처음에 제가 소개했던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삼례 슈퍼 사건. 재심이 진행 중입니까?

    ◆ 박준영> 한 건 더 있는데 수원 노숙소녀 사건도 재심 사건입니다.

    ◇ 정관용> 아, 그렇죠. 맨 처음에 그건 승소하신 거고, 이미.

    ◆ 박준영> 네, 수원 노숙소녀 사건은 재심 그리고 무죄까지 다 끝난 사건이고 익산과 삼례 사건은 재심까지 확정이 된 사건이고.

    ◇ 정관용> 아직 시작은 안 했고.

    ◆ 박준영> 지금 진행 중입니다. 곧 무죄가 나옵니다. 그리고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은 재심 결정에 대해서 검찰이 항고를 해서 아직 재심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 정관용> 검찰이 항고를 했어요?

    ◆ 박준영> 네.

    ◇ 정관용> 그래요. 그러다 보니 돈이 없어 파산하고.

    ◆ 박준영> 오늘 제가 너무 흥분하면서 말을 너무 빨리 한 것 같아요.

    ◇ 정관용> SNS 스토리펀딩 11일날 시작하셔서 14일 저녁 5시까지인가 기사가 나 있는데 1억 41만원.

    ◆ 박준영> 지금은 한 1억 2천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지금은 1억 2천. 이걸 언제까지 모금을 합니까?

    ◆ 박준영> 석 달 하기로 했습니다.

    ◇ 정관용> 3개월.

    ◆ 박준영> 11월 11일이 마지막인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요. 정확한 건 제가 한 번 봐야겠습니다.

    ◇ 정관용> 스토리펀딩이라는 게 기사를 올려서 그 기사를 읽고 감동한 사람들이 자기 자발적으로 펀딩하는 이런 거잖아요.

    ◆ 박준영>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럼 이 펀딩해서 모인 돈은 어떻게 사용하실 계획입니까?

    ◆ 박준영> 먼저 제가 거기 펀딩의 목적에도 밝혔지만 파산 상태로 있으니까 제 생활비와 빚 좀 일부 청산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빚이 너무 많아서 좀 약간 숨통 좀 틔우고 그렇다고 완전 청산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일정한 빚은 또 동력도 되니까요. 빚도 좀 청산하고 생활비도 하고 공익 이런 사건 찾아다니고 이런 데 쓰려고 합니다. 증거 수집이나 공익사건을 또 원하는 이런 여러 분들이 되게 가난하거나 많이 힘들거든요. 그런 분들 지원해가면서 일을 해야 되니까.

    ◇ 정관용> 그렇죠.

    ◆ 박준영> 그런 데 쓸 겁니다.

    ◇ 정관용> 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다 보니 억울한 유죄 판결 받아도 어디 제대로 변호사도 선임을 못 하고 그런 분들이니까.

    ◆ 박준영>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이런 펀딩까지 했으니 돈 좀 벌어보겠다는 사건은 못하시겠네요.

    ◆ 박준영> 이제는 완전히 못하죠. 이제는 완전히 방향은 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못합니다, 이제. 물론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이 있거든요. 그것은 좀 진행 중인 사건 그다음 단계까지 가는 거나 또 친척들 사건, 지인들 사건 해 달라는 것 그것까지 매몰차게 안 한다면 그건 야, 너 정말.

    ◇ 정관용> 하세요.

    ◆ 박준영> 그것까지는 해줘야 되고요.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요.

    ◇ 정관용> 그럼요. 동창들 중에 돈 좀 번 친구들 있으면 그 사건도 좀 하세요.

    ◆ 박준영> 그런 사건은 안 하고요. 그냥 적당히 그래도 어느 정도 공익성과 부합하지만 또 사람 사는 세상이 매몰차게 거절한다는 얘기는 들으면 안 되니까 그런 사건 좀 도와줘야겠죠. 해야겠죠.

    ◇ 정관용> 혼자 계속 그렇게 할 거예요?

    ◆ 박준영> 아닙니다. 지금 제가 돈 모이는 것 보니까 사람들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니, 기왕에 이미 이런 공익사건들을 위한 민변도 있고 또 공공변론, 공익변론만을 위한 ‘공감’이라는 단체. 그런 변호사단체도 있지 않습니까?

    ◆ 박준영> 그런데 공익변호사가 있지 않습니까? 형사사건에 공익변호사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노동이나 환경이나 어떤 장애인이나 이런. 그런데 형사사건에 공익변호사가 왜 없느냐면 어쨌든간에 재판에 회부돼서 형이 확정되거나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걸 공익사건이라고 판단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부분도 있고. 이 국선변호사 제도나 법률구조공단 이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형사사건이나 공익사건이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인권위나 권익위에서도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조사를 안 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에도 한계가 있고요.

    ◇ 정관용> 어찌 보자면 지금 공공변호 활동을 하시는 변호사분들도 놓치고 있는 대목이군요?

    ◆ 박준영> 네. 실질적으로 놓치고 있으니까 그런 편지들이 저한테 많이 오는 거죠.

    ◇ 정관용> 그래서 그 영역을 이제 전문으로 하는.

    ◆ 박준영>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 정관용> 돼버린 거고 펀딩되는 거 보니까 사람들 더 모아서 그쪽을 더 키워보자.

    ◆ 박준영> 네. 그걸 해야지 사법불신의 가장 근본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 이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요즘 한 건에 50억, 100억 받는 변호사들 감옥 가고 사건들 많이 보도되잖아요. 그런 거 보면서 ‘아, 내가 저런 사람 됐어야 되는데’ 이런 생각 혹시 안 합니까?

    ◆ 박준영> 저도 공부 잘 하고 했다면 연수원 1, 2등으로 졸업하고 그렇다면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우리 직업적 양심이나 직업적 윤리에 대한 설정이 제대로 안 된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그런 위치에 가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분들 진경준이나 이런 분들이 공부 못해서 저 같은 사람이 됐으면 저 같은 활동할 수도 있는 겁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 정관용> 혹시 그래도 방송도 타고 유명해지기 시작한 지 몇 년 됐는데 지난 총선에 국회의원 출마 한 번 해보라고 어느 당에서 영입 제안 없었어요?

    ◆ 박준영> 사람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하는데 한 군데도 연락 안 왔습니다.

    ◇ 정관용> 연락 안 왔어요?

    ◆ 박준영> 네. 멋지게 거절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웃음)

    ◇ 정관용> 다음에 또 제안 오면.

    ◆ 박준영> 사람 인생은 알 수 없죠. 다만 돈을 이렇게 모아서 형사사고 피해자들 돕는다고 했는데 간다고 하면 저는 미친 놈 되는 거죠.

    ◇ 정관용> 여기 후원을 하신 분이 SNS에 이런 글을 올렸네요. 후원자 수빈 님인데. ‘아이에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 아이가 변호사님처럼 살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라고 쓰셨네요.

    ◆ 박준영> 선례가 돼서, 선례가 정말 제대로 남겨지면 사람들은 용기를 낼 거라고 봅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준영> 제가 정말 잘 살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 내고 한 번 아이들한테도 도전을 얘기할 것이고 또 청년들도 도전할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민들이 저를 살려주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을 못 했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국민들의 힘에 바탕을 두어서 이런 정말 중요한 일을 계속 하면서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고 자식도 키우고 그런 모습을 내가 보여주겠다.

    ◆ 박준영> 네, 보여주겠습니다.

    ◇ 정관용> 기대하고 보겠습니다.

    ◆ 박준영>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박준영 변호사 오늘 고맙습니다.

    ◆ 박준영>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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