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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세계 14개 동물원



책/학술

    도시의 기억을 간직한 세계 14개 동물원

    신간 '동물원 기행'

     

    대만의 젊은 소설가 나디아 허는 런던부터 상하이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지의 동물원을 여행했다. 그에게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을 구경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한 도시의 역사를 증언하는 공간이자 과거의 기억에 비추어 오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신간 '동물원 기행'을 통해 저자의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인간과 세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문적 공간으로서 동물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1986년 일곱 살이던 저자에게 타이베이동물원이 이사 가던 날의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행사 식순에 포함되었던 ‘장제스 초상을 향한 경례’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추억의 장소였던 동물원은 독재와 계엄의 기억을 간직한 복잡한 공간으로 새롭게 다가왔고, 그는 동물원의 풍경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2년간 세계 14곳의 동물원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파리, 베를린, 베이징 등 세계의 역사 도시에 자리한 동물원은 오랜 시간 도시의 부침을 함께 겪으며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파리동물원, 일본군에서 국민당과 인민해방군까지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며 파괴와 재건을 거듭했던 창춘동식물공원, 냉전과 동서독 통일을 온몸으로 겪어낸 동베를린동물공원까지. 저자는 시대의 조류에 적응해가는 동물원의 역사 속에서 그 위를 거니는 사람들의 삶을, 도시의 기억들을 그려낸다.


    “오래된 동물원은 거만하지도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게 그 시대의 흐름을 담아낸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 어떤 건물들보다도 훨씬 더 진실하게 그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 _318쪽

    저자는 식민지 침략과 약탈, 전쟁과 혁명, 이념 갈등과 화해까지 파란만장한 세계사의 무대가 되었던 동물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로맹 가리부터 록 밴드 U2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준 공간이자, 횡령과 학대 같은 사회의 치부가 드러나는 공간으로서 동물원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동물원이 단순히 동물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해 말해주는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동물과 동물원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을 소개하며 이 사건들이 우리 삶에 남긴 질문들을 길어 올린다. 우리를 탈출하여 사람을 공격한 고릴라 ‘보키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동물 사이의 적절한 거리는 얼마일지를 묻고, ‘유전자 중복’을 이유로 도살당한 기린 마리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합리성’의 의미를 되묻는다. 전쟁 중에 학살당한 수많은 동물들, 원유 유출 사고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인간의 탐욕과 잔혹함의 끝은 어디일지를 묻는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이 ‘생(生)을 이어가는 고단함’을 함께 짊어진 존재임을 끝없이 상기시키며 동물원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들에 답해보기를 권한다.

    책 속으로

    귀족 동물원의 개념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화염 속에서 낡고 케케묵은 수많은 것들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 왕실 정원이었다가 공공 소유로 탈바꿈한 세계 최초의 메나주리로서 이 동물원의 미래와 운영 방식은 호사가, 박물학자, 민주주의자 사이에서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나운 맹수와 온순한 동물들의 비율, 동물로 인한 안전 문제 등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토론 거리가 되는 사회 안전과 권익의 문제들이 당시 동물원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 속에서 싹을 틔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보잘것없는 동물원이 시민사회의 요람 역할을 했던 것이다.
    _2장 「혁명이 낳은 산책로 -파리식물원」

    1941년 첫 번째 폭탄이 베를린동물원에 떨어졌다. 총 764대의 영국 전투기가 베를린 상공으로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렸다. 어느 순간 포화가 멎었지만 동물원은 이미 초토화된 뒤였다. 3715종 가운데 살아남은 동물은 사자 두 마리, 하이에나 두 마리, 아시아코끼리 한 마리, 코뿔소 한 마리, 개코원숭이 열 마리, 침팬지 한 마리, 황새 한 마리, 넓적부리황새 한 마리 등 모두 91마리뿐이었다.
    _4장 「전쟁과 냉전의 그늘 -(서)베를린동물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자 일본의 모든 동물원에 맹수를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신징에 있던 사자와 호랑이도 이런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다. 맹수를 제외한 나머지 동물들도 전란 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죽음을 맞았다. 일본의 항복으로 동물원을 접수한 국민당 군은 동물원의 초목을 모두 베어내고 군사 훈련장을 만들었으며, 동물원 여기저기에 참호를 팠다. 국민당이 패퇴할 무렵 한때 아시아 최초의 동물원이었던 이곳에는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남아 있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국민당은 곳곳에 폭약과 지뢰를 묻은 다음 인민해방군에게 넘겨주었다. 1948년의 일이었다.
    _9장 「만주의 봄날을 기억하는 곳 -창춘동식물공원」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동물을 채워 넣는 작업이 외교적 교류의 통로로 활용되면서 베이징동물원은 수십 년 동안 국제 관계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당시 화친 정책에는 왕소군이 아니라 아시아 코끼리, 인도코뿔소, 벵골 호랑이, 북극곰 등이 오갔다. 정치인들에게 동물원 방문은 온화한 이미지를 한껏 드러내는 동시에 과학 교류에 이바지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될 기회였다. 세 명의 일본 총리 부인과 미국의 낸시 레이건을 비롯해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태국 등의 정치인이나 그 부인들이 모두 이곳을 찾았다. 정치인의 부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_12장 「동물원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베이징동물원」

    여러 해가 지난 뒤, 사랑했던 누군가를 떠올려보면 그 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동물원이 떠오를 것이다. 웃으며 떠들기도 했고, 화를 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곳. 맑게 개었든 비가 내렸든 당신은 그와 함께했던 하루를 마음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곁에 없을지 모르지만 동물원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_14장 「한 도시의 기억 -타이베이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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