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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육영재단 폭력사태 주도한 '7인회의'…이춘상도 멤버



법조

    [단독] 육영재단 폭력사태 주도한 '7인회의'…이춘상도 멤버

    "박지만 비서실장은 정윤회 사람"…박 대통령과 최순실 개입 정황

    박근혜 대통령 ‘문고리 4인방’의 맏형 격인 고(故) 이춘상 보좌관이 조직폭력배와 한센인들이 대거 동원된 2007년 ‘육영재단 폭력사태’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는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육영재단 운영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불법’과 ‘폭력’을 동원하는 데 깊숙이 개입한 정황으로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2012년 12월 3월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핵심 측근이었던 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빈소를 방문한 모습. (사진=자료사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편에 서서 육영재단 폭력사태에 깊숙이 개입했던 B씨는 최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폭력을 동원해 육영재단 찬탈을 기획한 이른바 ‘7인 회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가 밝힌 ‘7인 회의’에는 이 보좌관과 박지만 EG회장 비서실장인 정용희씨, 임두성 한빛재단 회장이 포함됐다. 또 박용철 씨 등 박 대통령 5촌 조카 2명과 L씨 등 폭력배 2명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2007년 11월 28일 발생한 육영재단 폭력사태 전날 서울 청담동의 한 술집에서 모임을 갖고 박근령 재단 이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땅값이 수조원에 달하는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박근령 재단 이사장 측과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측이 서로 폭력배 등을 동원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B씨는 7인회 회의에서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회관에 심어 논 나무를 신동욱씨가 벤 것을 문제 삼아 한센인들을 동원하기로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최순실 씨의 검은 그림자가 더욱 짙게 배어난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 이춘상 보좌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문고리 4인방’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도운 최측근이다.

    특히 이 보좌관을 비롯해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4인방’은 모두 최순실씨와 정윤회씨가 직접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당시 박근혜 의원과 최순실씨가 이 보좌관을 연결고리로 ‘육영재단 폭력사태’에 대해 깊숙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육영재단 폭력사태를 진두지휘한 정용희 비서실장도 남편인 정윤회씨를 통해 최씨와 연결된다.

    그는 한 중견 언론인이 당시 박근혜 의원 측에 추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좌진 인선이 마무리된 박 의원 측은 그를 박지만 회장 쪽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육영재단 관계자들은 “정용희는 정윤회 사람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육영재단 폭력사태 직후 육영재단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이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도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육영재단 전경

     

    임두성 한빛복지협회(전국 한센인들의 모임) 회장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임 회장은 육영재단 폭력사태에 한센인 100여 명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많은 폭력전과에도 불구하고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을 배정받아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박근혜 의원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정두언 전 의원은 밝혔다.

    최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박 대통령 5촌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박용철씨 등 박 대통령의 5촌 조카 2명도 ‘7인회’ 멤버로 드러났다.

    박용철씨는 육영재단 폭력사태를 주도한 인물이지만, 이후 재단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박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신동욱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박지만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법정에서 공개하겠다”면서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 측에 거액을 요구하던 중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철씨가 이들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은 육영재단을 둘러싼 각종 불법과 폭력사태의 정점에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있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육영재단 운영권을 되찾으려한 이유는 뭘까.

    해답은 ‘최태민 일가’와 ‘신동욱 총재’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근령 전 이사장은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최태민 목사와 딸 최순실 씨의 재단 내 각종 전횡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1990년 12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육영재단에서 물러날 사람은 언니가 아니라 최태민이라는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동생의 이런 인식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 목사를 ‘고문’으로 부르며 예우를 해 준 것은 맞다”면서도 “최 목사나 최순실씨가 재단 일에 깊숙이 개입하거나 전횡을 일삼은 적은 없다”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여동생이 재단 운영에 대해 잘 모르고 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령 당시 이사장이 신동욱씨와 2007년 2월 약혼까지 하면서 박 대통령·최순실씨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과 주변에선 육영재단 감사실장을 지낸 신씨를 매우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 때문에 신씨와 박 전 이사장을 떼어놓기 위한 납치 등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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