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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순실 앞에서 작아진 삼성의 '굴욕 계약', 왜?



국회/정당

    [단독] 최순실 앞에서 작아진 삼성의 '굴욕 계약', 왜?

    220억원 지원 삼성 계약서 최씨측 요구로 '너덜너덜'…계약서 초안 단독 입수

    '비선실세' 최순실씨 소유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가 2015년 8월26일 삼성전자와 정유라 지원 관련 컨설팅 계약을 맺을 때 만들어진 계약서 사본들. 왼쪽부터 초안, 중간본, 추가 중간본, 최종본. 코레스포츠가 삼성전자에 무엇을 요구했는지 밝힐 수 있는 계약서 초안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삼성이 최순실 모녀 소유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에 220억원 상당의 승마 지원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서 문구 수정 등을 놓고 믿기 힘들 정도의 저자세로 일관한 사실이 확인됐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지원 사실을 몰랐고 사후에 보고받았다"고 증언한 것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계약서 최종본의 도출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부회장 측의 사전 허가가 없었다면 앞뒤 설명을 하기 힘들 정도로 코레스포츠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계약서가 수정됐다.

    ◇ 삼성, 분쟁 발생시 가장 중요한 관할법원과 중재 주체 포기

    27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삼성전자-코레스포츠인터내셔널(Core Sports International)간 컨설팅 계약서(Consulting Agreement) 최종본과 초안·중간본 등을 분석한 결과, 삼성은 법인간 계약 이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분쟁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포기했다.

    계약서 초안·중간본 등은 독일에 있었던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종본을 제외한 초안과 중간본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원오 전 전무는 '살생부'를 만들어 승마협회를 초토화시킨 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26일 최순실씨 모녀 소유회사 코레스포츠와 삼성전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컨설팅계약을 맺고 있다. 코레스포츠쪽에서는 박승관 변호사(왼쪽 사진 왼쪽부터), 로베르트 쿠이퍼스 전 대표가 참석했다. 삼성전자에서는 박상진 사장(오른쪽 사진 가운데)과 황성수 전무(맨 오른쪽) 등이 나섰다. 당시 최씨의 측근이었던 K스포츠재단의 노승일 전 부장과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도 자리를 함께 했다. (박영선 의원실 제공)

     


    정 씨를 포함해 6명의 승마선수들에게 최대 200억원을 지원하고, 최 씨 모녀 소유의 코레스포츠가 이를 중재하는 대가로 수수료 20억원을 별도로 받는다는 해당 계약은 지난해 8월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체결됐다.

    삼성측에서는 박상진 사장과 황성수 전무가 참석했고, 코레스포츠에서는 박승관 변호사와 로베르트 쿠이퍼스 전 대표, 박원오 전 전무 등이 나섰다.

    하지만 8월26일에 서명된 계약서는 최종본이 아닌 계약서 초안과 중간본(1,2) 등 3개가 더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계약일 엿새 전인 8월20일 초안, 22일 중간본, 23일 추가 중간본이 독일 코레스포츠 사무실에서 발견됐으며 각각 10페이지 안팎의 영문으로 작성돼 있었다.

    8월20일자 파일로 저장된 계약서 초안의 10조8항은 '준거법과 분쟁의 해결' 조항으로 두 법인간 분쟁 발생시 어느 나라 법률을 따를 것인가와 중재 주체 등 중요한 부분이 담겼다.

    계약서 초안 10조8항은 '본 계약서는 대한민국 법(the laws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적용받고 해석된다'고 적시했다.

    또 '계약서상의 계약위반과 관련된 모든 분쟁, 논란 혹은 이견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in Seoul, Korea) 대한상사중재원(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의 중재 규칙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되고 제시된 중재는 당사자들 사이에 구속력을 지닌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초안은 이틀뒤 중간본 계약서에서 180도 뒤집혔다.

    중간본 10조8항은 '본 계약서는 독일법(the laws of Germany)을 적용받고 해석된다'로 바뀌었고, 중재 주체도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로 수정됐다. ICC 본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 수정된 계약서에는 '중재 장소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Frankfurt am Main)으로 중재 언어는 영어가 될 수 있다'는 문구도 추가됐다.
    빨간 형광펜 부분이 8월20일자 계약서 초안 10조 8항. 연두색 형광펜 부분은 8월26일에 최종 체결된 계약서 10조8항. 분쟁 발생시 삼성전자의 개입 자체가 원천봉쇄될 수 있도록 관할법원과 중재 주체가 한국에서 독일로 수정됐다.(사진=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통상 국적을 달리하는 법인간 계약은 이행과정에서의 분쟁 발생 가능성 때문에 어느 국가 법을 준용할지를 놓고 양 당사자간 합의를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설립준거법주의를 적용해 어떤 국가 법을 따를지 합의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보통은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쪽의 국적법을 준용한다.

    삼성은 최씨의 딸 정유라를 포함한 승마선수 6명에게 220억원을 들여 말 구입비와 훈련비, 코치진 운영비, 지원 차량 등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코레스포츠는 단지 이를 중개하는 컨설팅회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약 준거법은 대한민국이 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주당 법률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안호영 의원은 "내 회사가 있는 나라의 관할법을 따르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편하다"며 "코레스포츠측 법률인 입장에서는 독일법을 따르는 게 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계약서 초안과 최종본만 놓고 보면 초안은 삼성이 작성하고 이후 검토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곳이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코레스포츠쪽의 요구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씨 소유의 코레스포츠가 독일에서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시점은 계약이 최종 완료된 8월26일이고 구성원도 최씨 측근 몇명에 지나지 않아 계약서 초안은 삼성전자 법무팀이 작성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삼성은 설립도 되지 않은 법인을 상대로 컨설팅 계약을 맺은 데 이어 분쟁 발생시 조기 개입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포기한 셈이다.

    ◇ 삼성, 계약종료 권한도 포기…국민연금 찬성에 대한 삼성의 '보은?'

    계약서는 관할 법원과 중재 주체 뿐 아니라 곳곳에서 삼성에게 불리하게 수정됐다.

    삼성은 2015년 8월부터 약 41개월간 정유라를 포함한 승마선수 6명에게 200억원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수행할 컨설팅회사로 최씨 모녀 소유의 코레스포츠를 선택하고 추가로 수수료 20억원을 더 챙겨주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권한도 스스로 내려놨다.

    계약서 초안 2조2항은 '삼성은 이유가 있든 없든 코레스포츠에 3개월 전에 서면으로 미리 통지하면 언제든지 계약의 전부 혹은 일부를 종료할 수 있다' '계약 종료시 코레스포츠는 계약기간 중 생산한 모든 물품과 임대된 재화, 장비 등을 삼성에게 즉시 반환해야한다' '삼성은 맡겨진 일에 대한 상호 합의된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 이상의 법적 책임은 절대 지지 않는다' 등 계약 종료 조항을 뒀지만 중간본을 거치면서 이 부분은 아예 삭제됐다.
    '삼성이 코레스포츠의 위반 사항 발생시 계약 전부 혹은 일부를 종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초안에는 존재했지만 최종본에는 삭제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하는 글로벌 대기업 삼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법인과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 위반에 대한 방지 대책마저 포기한 셈이다.(사진=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스포츠 영재 육성을 명분으로 최씨 일가에 천문학적인 돈을 기부하는 글로벌 기업 답지 않게 성과가 전혀 없는 신설 법인의 혹시나 모를 계약 위반에 대한 방지 대책마저 뺏기고 이리저리 끌려다닌 셈이다.

    이밖에도 삼성은 코레스포츠가 현지에서 삼성이 제공한 운영기금을 사용하면서 당연히 내야할 비용 보고서와 영수증, 각종 장부의 제출 기한을 '삼성의 요구가 있는 날로부터 7일 이내'에서 '두달 이내'로 변경해주는 등 코레스포츠쪽에 유리하게 계약을 수정하기도 했다.(3조6항)
    삼성이 컨설팅회사에 불과한 코레스포츠가 자신들이 지원한 돈을 제대로 쓰는지 감사하기 위해 요구하는 서류제출 기한도 '7일 이내'에서 '2달 이내'로 완화됐다. 왼쪽이 초안, 오른쪽이 최종 계약서.(사진=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삼성이 제공한 말과 각종 장비, 선수단 이용 차량, 마필 이동 트레일러 등에 대한 사용 권리는 코레스포츠가 가지며, 삼성은 제공된 재화, 특히 말과 차량에 손상이 발생하면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 '코레스포츠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 않은 한 삼성은 해당 재화의 손해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코레스포츠에 지우지 아니한다'라는 코레스포츠에 유리한 조항도 추가됐다.(6조5항)
    계약서 초안에는 없던 6조5항이 8월22일자 중간본부터 추가돼 최종 계약서에도 포함됐다. 삼성이 제공한 재화에 대한 사용권한이 코레스포츠에 주어지고, 대신 삼성은 코레스포츠가 사용하다 손해가 발생하면 보험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코레스포츠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조항으로 코레스포츠측 요구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사진=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이런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계약서 수정을 삼성이 용인한 배경에는 코레스포츠 뒤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있었다는 것을 삼성이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코레스포츠와의 계약 준비와 최종 체결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의 핵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진 지난해 7월17일 이후 한달 남짓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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