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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깨비, 공유에 가깝다…뿔은 일제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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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도깨비, 공유에 가깝다…뿔은 일제 잔재"

    [노컷 인터뷰] 민속학자 김종대 교수 "현대인 머릿속 도깨비, 학습된 것"

    드라마 '도깨비'에서 배우 공유가 연기한 도깨비 캐릭터(사진=tvN 제공)

     

    '도깨비 박사'로 불리는 이가 있다. 바로 김종대(59)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도깨비 관련 민담 등을 모으고 연구해 왔다. 그러한 김 교수에게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도깨비'를 봤냐고 물었더니 "몇 차례 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봤냐고 다시 묻자 "사람 친화적인 존재로 도깨비를 그리고, 신부를 구하러 다니는 점을 차용한 것은 적절했다"면서도 "도깨비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깨비는 본격적인 신은 아니지만, 하위 신에 속하기 때문에 죽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 24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의 도깨비는 드라마 속 (배우 공유가 연기한) 도깨비에 가깝다"고 전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사람 곁에 가까이 살면서 변덕스럽게 장난도 많이 치고, 심술도 잘 부리는 존재가 바로 도깨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도깨비는 뿔이 없다"고 강조했다.

    "제가 1980, 90년대 시골에 조사를 다닐 때 보면 도깨비 머리에 뿔 달리고 손에 방망이 들었다고 얘기하는 노인들이 없었어요. 당시 다른 걸 조사 중이었는데, 그 노인들 이야기에 '이상하다' 싶어 도깨비 연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파고 있네요. (웃음) 현대인들이 '도깨비에 뿔이 달렸다'고 여기는 것은 학습의 결과예요. 시골 노인들에게 얘기 듣기까지는 저 역시 그랬죠."

    ◇ 일본 요괴 '오니'가 도깨비로 둔갑한 서러운 사연

    김종대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왼쪽)와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 표지. '도깨비 박사'로 불리는 그는 "도깨비는 사람을 좋아해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김 교수·인문서원 제공)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도깨비의 모습은 머리에 뿔이 있고 원시인 복장을 한 채, 손에는 못 박힌 철퇴를 들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러한 도깨비는 일본에서 들어온 요괴인 '오니'(おに) 형상을 그대로 본뜬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일제 강점기 교과서에 일본 전래동화 '혹부리영감' 이야기가 실리는 과정에서 오니가 등장하는 삽화까지 그대로 쓰이는 바람에 도깨비 형상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 뒤 조선총독부에서는 교과서를 빨리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담당자들의 작업이 늦어지면서 일본의 것을 가져와 베끼기 시작했죠. 일본 교과서를 바탕으로 하는 과정에서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일본의 삽화까지 그대로 가져다 썼어요. '조선과 일본이 민담까지 공유한다'는 논리로, '내선일체'(內鮮一體·일제의 조선 통치정책으로 '조선과 일본은 한몸'이라는 뜻)를 강조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된 거죠. 그 삽화는 일제 침략기 내내 교과서에 수록됐습니다."

    김 교수는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당시 문교부는 비판적 검토 없이 혹부리영감 이야기와 삽화를 그대로 교과서에 수록했다"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한국 전래 민담으로 둔갑해 동화책으로까지 나오기 시작한 데 있다"고 꼬집었다.

    "도깨비로 둔갑한 오니의 모습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진 게 불과 2년 밖에는 안 된 걸로 압니다. 그 전에 이와 관련해 두 차례 정도 정부에 항의를 했어요. 4, 5년 전에는 교육부 담당자를 만나 '빨리 (도깨비로 잘못 알려진 오니를) 없애는 게 좋겠다"고 협의한 적도 있죠. 무려 100여 년 동안 일본 요괴의 모습으로 전락했던 도깨비도 몹시 서러웠을 거예요."

    ◇ "일제 교묘한 술책 탓에 사라졌던 '도깨비 가치' 되살려야"

    일제시대 교과서 '초등국어독본'에 실린 '혹부리영감' 이야기 삽화. 혹부리영감 뒤로 도깨비로 둔갑한 일본 요괴 오니가 보인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앞서 언급했듯이 도깨비는 하위 신에 속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에게 도깨비는 믿음,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펴낸 책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인문서원)에서 도깨비의 어원을 분석하고 있다. 15세기 세종대왕 시절 발간된 '석보상절'에 '돗가비'라는 단어가 나온다. 도깨비는 이 '돗'과 '가비'가 합쳐져 생긴 말로 '능력 있는 남자'라는 뜻을 지녔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당대 민중들이 받들던 존재였어요. 옛날 사람들은 제대로 못 먹고 못 입은데다 평균 수명도 45세 정도로 짧았으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잘 먹고 오래 사는 데로 모아졌겠죠. 민중들이 이러한 소망을 투영한 대상이 바로 도깨비였던 거죠."

    김 교수는 도깨비의 중요한 특징으로 '사람 친화적인 면'을 꼽았다. "도깨비는 사람을 좋아해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도깨비는 끊임없이 인간 세계를 기웃거립니다. 남자에게는 '친구를 맺자'고, 여자에게는 '부부관계를 맺자'고 합니다. 인간 세계에 들어오려고 애쓰는 거죠. 우리의 다른 민담에도 보면 '여우구슬'이 있잖아요. 여우가 사람 간 100개를 먹는다든지, 사람 기운 100개를 구슬에 모아야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여우는 사람이 못 되는데, 인간 세계에 편입될 수 없다는 걸 뜻합니다. 도깨비도 마찬가지예요. 도깨비는 하위 신이고, 인간은 그 신을 숭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신으로서 도깨비는 인간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김 교수는 "도깨비는 인간의 지향점"이라는 표현을 썼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궁핍했던 당대 민중들이, 도깨비를 끌어들여 잘 먹고 잘 살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다졌다"는 말이다.

    "도깨비를 통해 재물을 얻게 되는 이야기들이 그런 것이죠. 옛말에 벼락부자된 사람들을 가리켜 '도깨비 만났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도깨비는 잘 모셔야 했어요. 인간이 자기한테 잘못한다는 걸 알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으니까요. 사람이 자기 목적을 이룬 뒤 도깨비에게 소홀해져도 마찬가지였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정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야만 했던 겁니다. 도깨비는 이제 동화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네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실재하지 않는 가치가 된 거죠. 그래서 재물 때문에 친한 사람들끼리 싸우고 등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일제의 교묘한 술책 탓에 잊고 살아 온 도깨비의 가치를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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