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계엄렴이 답! 계엄령 선포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나눠 주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단체 집회 현장에서는 '계엄령이 답! 계엄령 선포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11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해당 손팻말을 곳곳에서 나눠 주고 있었다.
이날 이 손팻말에 끈을 달아 목에 건 집회 참가자들에게 '계엄령이 뭐냐'는 물음을 던졌다. "계엄령이 뭐냐고? 대통령 무너뜨린 좌파들 다 잡아들이는 거지!" 이에 옆에 서 있던 참가자는 "계엄령이 아니라 북진(北進)입니다"라고 외쳤다.
한 참가자는 "계엄령? 계엄령이 글자 그대로 계엄령이지"라 답했다. 재차 묻자 "몰라요, 나도"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참가자는 "나라에 폭동이 일어났을 때 계엄령을 떨어뜨려 군대에서 진압한다"며 "그래서 나라를 안전하게,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좋은 것이다. 지금은 계엄령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 김모(70) 씨는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며 "평시에는 경찰, 검찰 등 행정부에서 국가 질서를 관할하는데,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인이 나서서 사회 전체를 바로잡는 것이 계엄령"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모든 것이 공산화 됐다. 공산화 안 된 기관이 없지 않나"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령이 필요하다. 반역이 일어난 판에 국가를 누가 지키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이같은 인식은 이날 현장에 뿌려진 신문 형태의 다양한 유인물에서도 확인됐다. '뉴스타운'이라는 매체는 '태극기 명령, 국가 전복 음모 당장 멈춰라'란 제목의 1면 머릿기사에서 '애국 국민들은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이 합세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한다는 것을. 이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무조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나서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려 한다는 것을. 애국 국민들은 알고 있다. 촛불세력을 선동해 박근혜 정권을 뒤엎으려 한다는 것을"이라고 주장했다.
◇ "정치 의식·사회 수준 낮을수록 계엄령 가능성 높다"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열린 '제12차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과 특검 해체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군사쿠데타, 5·18광주민주화항쟁 등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한국 현대사에서 계엄령은 권력 쟁취 수단으로 활용돼 온 탓에 민간인 학살과 같은 극단적인 참상을 낳았다.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엄령은 국가 비상 사태에서 군사력을 이용해 사법과 행정을 유지하는 긴급조치다. 이때 계엄선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며, 국회가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에 따라야 한다.
정치학자인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11일 CBS노컷뉴스에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임에도 불구하고 탄핵심판으로 직무가 정지돼 있기 때문에,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계엄선포권이 있다"며 "(탄핵 반대 집회에서) 계엄령 얘기가 계속 불거지는 데는 박근혜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나 복종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저들(친박세력)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박근혜는 문제가 없고 최순실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아주 강한 믿음을 지녔다. 그동안 저들은 박정희를 비롯한 유신체제를 옹호하면서 권력을 세습한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그것을 부정하면 정체성이 깨지게 되니 끝까지 박근혜를 떠받드는 것이다."
그는 "계엄령은 군사력을 동원하는 또 하나의 쿠데타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수단"이라며 "결국 자신의 권력 기반과 정당성이 취약할 때 마지막으로 동원하는 것이 계엄령"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으로서는 촛불집회를 무력화하고 박근혜를 지지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 물적 토대가 없다 보니 (친박세력이) 기댈 곳은 강력한 공권력뿐"이라고 지목했다.
'탄핵 반대 집회 주력인 고령층에게는 계엄령의 경험이 긍정적일까'라는 물음에는 "그들이 지닌 계엄령에 관한 기억과 경험은 강력한 '정리' '규제' 등과 같은 향수로 남아 있다고 본다"며 "강한 리더십을 지닌, 절대권력의 지도자가 나타나 국가 혼란을 방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탓"이라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저들의 계엄령 주장은 사회적인 혼란, 이념적인 적들의 소요 등을 주요 명분으로 하는데, 결국 군대를 동원해 이를 정리하겠다는 뜻"이라며 "후진적인 나라일수록 계엄령 동원의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정치 의식이나 사회 수준이 높을수록 낮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들이 비폭력 평화 집회인 촛불집회를 두고 '급진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그만큼 대중의 정치의식이 균일하게 높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그 (정치의식의) 진폭이 크기 때문에 계엄령이라는 극우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