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어쩌다 박근혜 정권의 탄생을 허락했을까요. 촛불항쟁으로 새 세상을 향한 열망이 불타오르는 지금,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만나 기로에 선 한국 사회를 진단했습니다. 그와 가진 심층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최순실, 딸 정유라 학대했다"② "박근혜 탄생, 나치 히틀러와 닮았다"③ "유력 대선주자들 심리 분석했더니 '선구자' 보인다"<끝>
(사진=노컷뉴스·플리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1933~1984)이 벌인 유명한 '복종' 실험이 있다. 김태형 소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 그러니까 권위자가 실험 참가자들에게 '앞에 있는 사람한테 문제를 내고 답이 틀리면 버튼을 눌러 전기 충격을 주라'고 주문합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실제 전기 충격을 준다고 알지만, 사실 상대는 고통 받는 연기를 하고 있었어요. 처음 낮은 단계에서는 참가자들이 과학자의 주문에 따르는데, 그 강도를 높여 상대가 심한 고통을 호소할수록 머뭇거립니다. 그래도 과학자는 '내가 다 책임질 테니 계속하라'고 요구해요. 결과적으로 65% 정도가 그 명령에 따랐죠."
밀그램의 실험은 600만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 나치 등 파시즘 정권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류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 소장은 "이 실험을 두고 밀그램은 '인간의 복종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이후 많은 심리학자들은 '복종 성향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쪽으로 해석했다"고 전했다.
"단순 복종 성향보다는 '권위에 대한 신뢰'를 보여 줬다는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시스템에 저항하기 힘든 인간의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여깁니다. 개인이 체제와 맞대결했을 때 저항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죠. 예를 들어 군대에서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어느 병사가 그 시스템에 대항하기란 정말 힘들잖아요."
그는 당대 좌파 정권이 위세를 떨치던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던 배경으로 "사회 기층민의 표면적인 선호도와 그들의 무의식적인 심리가 일치하지 않았던 점"을 꼽았다.
"독일은 유럽에서 개혁에 가장 많이 실패한 나라예요. 시민 혁명에 있어서 많은 좌절을 맛봤죠. 1,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독일에서는 표면적으로 좌파 운동이 활성화 됐지만, 사람들의 내면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 온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당대 독일 노동 계급이 좌파인 사민당을 지지하고 있으나, 무의식에는 권위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봤어요. 다시 말해, 무력감과 좌절감이 심각했다는 얘기죠. 이에 따라 그는 히틀러 등장 이전에 이미 '독일인들이 파시즘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어요. 그 예언이 들어맞은 거죠."
"표면적인 여론조사나 이데올로기 선호도는 개개인의 무의식적인 심리와 일치했을 때 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하는데, 독일은 이 두 개가 엇나가고 있었다"는 것이 김 소장의 진단이다. 결국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무력감이 심한 심리 상태에서 권력자에게 협조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 독일에 잔뜩 있었다"는 것이다.
◇ "사람은 공포 느끼면 살기 위해 불합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인다"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사진=이진욱 기자)
김 소장은 한 사회가 파시즘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공포'를 강조했다. "공포심을 자극하는 사회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을 초기에 막지 못하면 인간은 그 앞에서 몹시 무력해지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식의 좌절 섞인 인식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는 말이다.
"공포가 없는 조건에서 사람은 합리적인 판단을 해요. 하지만 공포를 느끼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불합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입니다. 나치는 독일 사회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어요. 히틀러가 집권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종북몰이'였죠. 사회주의자, 유대인 등을 '유대사회주의자'로 낙인 찍고 집중 공격한 겁니다. 그렇게 독일 사회에서 히틀러에게 찍히면 소위 '빨갱이' '유대인'으로 몰려 테러의 표적이 된다는 공포 분위기가 지배했어요. 나치는 이를 활용해 일차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한 뒤, 마치 밀그램의 실험 상황처럼 사회를 조직한 겁니다."
"히틀러의 이러한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박근혜가 집권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 김 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히틀러가 우수한 지도자여서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며 "당대 우익 세력이 그를 상징처럼 포장해 지원했다는 점에서 히틀러와 박근혜는 닮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에 대한 강한 요구 덕에 1987년 6월 항쟁 이후 조금씩 변화했어요. 그 과정에서 민주정부도 두 차례 탄생했죠. 이런 흐름이 국민들에게 준 희망은 꽤나 컸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민주정부조차 양극화 등 공동체의 해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여기서 받은 좌절감, 무력감은 굉장히 컸어요. '세상이 바뀌고 이젠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정작 나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것이죠. 그 와중에 신자유주의가 만연하면서 '이제 민주화는 됐다고들 얘기하니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내적 욕망이 확산됐고,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며 이념에서 다소 자유로운 실용주의자로 포장된 이명박에게 몰표를 줍니다. 그 기대는 결국 착각으로 드러났죠."
김 소장은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박근혜 정권이 탄생할 무렵부터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심각한 위기 상황에 몰렸고 공포에 압도 당하기 시작했다"며 "민주정부 10년에 이명박 정권까지 보냈는데 '세상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 탓에 '이 세상은 도저히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 좌절감이 극심해져 왔다"고 진단했다.
"나치 정권을 허락한 독일의 경우처럼, 좌절감이 심한 사람들은 강한 통치자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등장해 강력한 힘을 보여주니 끌려간 거죠. 공동체가 와해되고 개인이 파편화 된 상태에서 파시즘 세력이 두 번이나 다시 집권했으니 무력감, 좌절감이 일시적으로 급격하게 확산됐어요. 하지만 독일과 한국은 다른 점이 있어요. 한국은 저항의 전통과 공동체 의식이 독일보다 강합니다. 따라서 독일만큼 사회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지지 않았고, 그 역동성이 촛불항쟁으로 타오른 겁니다."
◇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박근혜 공포'에 떠는 포로…'성찰' 절실한 시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열린 '제12차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과 특검 해체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대통령 박근혜의 즉각 탄핵을 촉구하며 불타오른 촛불항쟁. 이에 맞서 열리는 탄핵 반대 집회의 참가자들은 노년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 소장은 "그들의 심리 밑바닥에는 사실 권력자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표현을 오롯이 빌리면 "노년층은 지금 박근혜의 포로"다.
"한국 사회 노년층이 지닌 심리를 보면, 그들은 전쟁을 경험했고 주변 사람들이 소위 '빨갱이'로 낙인 찍혀 탄압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시대 상황이 아무리 그럴싸하고 좋은 것 같아도, 군대가 한 번 출동해 싹 쓸어 버리면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공포를 품고 있는 거죠. 그들 사이에서 지금 계엄령 얘기가 나오는 이유죠. 그러한 공포가 몸에 완전히 뱄어요. 따라서 강력한 독재자가 나타나 힘을 발휘하면 그 공포는 다시 심해집니다. 그러면 이들은 독재자 편을 들어요. '반대 진영 편을 들었다가는 총 맞을 일에 엮일 수 있다'는 잠재의식이 발동해 일단 안전한 쪽으로 피하는 거죠. 기득권층이 공포정치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보수층이 결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반대로 진보가 극우를 맹렬하게 공격해 공포정치가 완화되면, 독재자를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의 이탈 현상이 발생한다"며 "쉽게 말하면, 공포가 완화돼 겁이 줄어들면서 정신이 돌아오고 강제로 묶여 있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탄핵정국에서의 촛불집회 인원 추이를 보면 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촛불항쟁이 연속적으로 터질 때는 박근혜 정권이 당장에 무너질 것처럼 느껴져 공포가 최소화 됐던 국면입니다. 이때 박근혜 지지율이 30%에서 5%까지 떨어졌죠. 그런데 촛불이 잠잠해지고 박근혜 쪽이 밀어붙이기 시작하니 다시 지지율이 올랐잖아요. 결국 촛불항쟁이 한국 사회의 무력감, 좌절감을 상당히 완화시켰어요. 박근혜의 파쇼적인 공격을 막아낸 덕에 공포가 줄어든 거죠."
"박근혜 지지층을 30%라고 본다면, 20% 정도는 공포로 인해 붙어 있다"는 것이 김 소장의 분석이다. 결국 "공포가 사라지면 지지율 20%가량은 빠져나온다"는 말이다. 나머지 10% 지지층에 대해서는 "왜곡된 정체성을 지니게 된 파시즘의 희생양"이라고 설명했다.
"무조건 박근혜를 옹호하는 5%, 최대 10%의 지지층은 공포 때문이든, 내적 욕망 때문이든 독재 체제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면서 노인이 됐는데, 그것마저 부정해 버리면 남는 것 하나 없이 허망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내가 잘못 살았구나'라고 성찰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방어에 급급해질 수밖에 없어요. '잘못 살지 않았다'고 스스로 합리화 하는 단계로 흐르는 거죠. 자기 잘못을 인정할 경우 이들의 심리 상태는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는 듯한, 자아가 붕괴되는 듯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립니다. 일단 정신병리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인데, 그들 입장에서는 자기 방어를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상태라고 봐야 해요."
그 연장선상에서 김 소장은 무엇보다 '성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성찰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 사회와 구성원들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척도"라며 "성찰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역설했다.
"성찰이 가능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 건강이 양호한 사람입니다. 성찰이 안 되는 사람은 다른 것을 다 떠나 치료 받아야 해요. 심리치료에서도 보면 자기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치료가 안 됩니다. 일단 상담조차 받으려 하지 않고, 주변에서 상담을 권하면 화부터 내니까요. 치료가 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예요. 성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잘못을 인정 못한다'는 의미인데, 그러한 사람들은 그것 하나만으로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방증입니다. 역으로 얘기하면 성찰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결국 성찰하지 않는 것은 과거에 머물면서 정신병적으로 건강이 점점 악화되는 길로 가겠다는 뜻이고, 성찰한다는 것은 발전하겠다는 의지와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