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2년 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문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사업단이 후원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도 그 흐름 중 하나다.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강의는 13일부터 24일까지 평일 열흘 동안 이어진다. 총 10강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④ 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⑤ '교란된' 젠더, 이성애 거부하는 남성과 '남장' 여성의 등장⑥ '작가' 김승옥은 왜 작품에서 거듭 자기 죄를 고백했을까<계속>
1960년대는 한국문학의 '스타'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식민시대 때처럼 일본어를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유하게 된, 말하자면 "언어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민감해진" 작가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 최고의 스타를 꼽자면 뭐니뭐니해도 김승옥을 들 수 있다.
당시 문학청년이라면 으레 김승옥의 작품을 들고 다닐 만큼 그의 위상은 높았다. "새로운 재능이나 감수성 또는 개성의 출현에 부수될 수 있는 찬부 양론의 개입이 끼어들 여지도 없이 그는 세대의 신구를 초월해서 즉각적으로 만장일치의 공인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유종호 '감수성의 혁명')는 평가는 그가 얼마나 문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일 '감수성의 반혁명과 여성이라는 암호-1960년대 소설의 예술가 정체성과 여성'을 발제한 강지윤 연구자(연세대)는 김승옥의 작품 속에서 '여성'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김승옥이 어떤 서술방식을 택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두루 살폈다.
강 연구자는 "김승옥, 최인훈의 텍스트를 학생들과 다시 읽으려는데, 그 당시 문단이 무척 뜨거웠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고 매일 새로운 내용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며 "제 머릿속에 있는 전설들과도 연결고리가 있었다. 김승옥 작품을 읽으면서도 옛날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과 난감함이 숨어있었다"고 '김승옥 다시 읽기'를 시도한 배경을 밝혔다.
◇ 사회로 나가려는 남성 주인공에게 장애물이 되는 '여성'
1960년대 한국문학계에서 탄생한 최고의 스타 작가 김승옥 (사진=김수정 기자)
강 연구자는 우선 김승옥 소설 속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파악하고자 했다. 그 유명한 '무진기행'을 비롯해 김승옥의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 주인공이 '사회'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였다는 게 강 연구자의 설명이다.
그는 "주인공들이 위악의 포즈를 취하기 위해 여성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는 플롯인데, 김승옥 작품 내 여성들은 입사(사회 안으로 진입하는 것)하기를 거부하는 남성 주체의 '순수'를 보증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강 연구자는 "(김승옥) 소설에서 (여성은) 누이와 친구로 많이 나온다. 그 세계 밖으로 가면 여성은 일종의 '섹슈얼리티 교환물'로 나온다. '무진기행'에서 윤희중은 하인숙과 잠깐이긴 하지만 정사를 벌이고 연애를 한다. 같이 서울 가자고 꼬시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서울로 안 데려갔고, 젊은 여자를 농락한 꼴이 된다. 이런 '기만'을 '굳이' 문학으로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 '기만의 세계'를 굳이 드러낸 이유
2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청년허브 다목적실에서 강지윤 연구자가 '감수성의 반혁명과 여성이라는 암호-1960년대 소설의 예술가 정체성과 여성'을 발제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김승옥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고는 그 '죄'에 대해 고백한다. 강 연구자는 "김승옥 소설 남성 주인공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을 희생양 삼았다는 죄를 고백하는 주체라는 점이다. 굳이 사람들한테 고백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기 내면을 까서 보여주는 행위 자체로 자신의 죄의식에 우리(독자)를 감정이입하게 만든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자는 "김승옥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런 '내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아름답게 잘 짜여진 언어의 구성물이라는 생각은, 이같은 '죄의식 고백 단계'가 없으면 맛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여성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죄의식을 갖고 있고 그 내면을 고백한 것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잘못 읽을 경우 (김승옥의) 이 자기기만을 (독자가) 승인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김승옥의 고백은 굉장히 절절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좋다. 이런 내면 고백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고백만 하면 된다는 어떤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자는 "다른 작가들이 여성을 훨씬 전형적으로 그리는 데 비해서 김승옥은 그렇지 않았다. 약한 것들, 섬세한 것들, 잉여의 것들, 수수께끼로 남은 것들에 민감했기에 고유하고 독특한 언어로 표현 가능했다. 여기에 나르시시스트적인 느낌도 부여돼 있다. 김승옥은 늘 속물들 사이에 자기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더러운 불순물은 '나 자신'이라고 고착돼 있는 상태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증언한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자는 "산업화와 도시화와 급격히 진행되고 있던 1960년대 한국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것은 도시와 지방이 분할되고 젠더 간 계층이 분할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윤희중)가 서울에 가면 하인숙은 지방에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찰력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이 상찬한 것이 아닐까"라고 밝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