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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이 천억 원짜리 사업을 날렸다



전남

    탁상행정이 천억 원짜리 사업을 날렸다

    순천 용수동 댐의 교훈

    순천시청까지 3.8km에 불과한 와룡댐건설 예정지. 댐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순천도심에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우려된다. (사진=포털 다음 지도 위성사진 캡쳐)

     

    전남 순천시가 시내에서 불과 2.5km 떨어진 곳에 대형 댐을 지으려다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사업 추진을 접었다.

    이처럼 사업을 그르친 배경에는 주민 의견 수렴을 사전에 거치지 않고 사업을 서두른 '탁상행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돼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순천 용수동 현 와룡저수지 (사진=전남CBS 박형주 기자)

     

    ◇ ' 우리 동네에 댐을 짓는다고?' 충격적인 소식

    순천시 용수동은 지난 두달간 느닷없는 소식에 무척 시끄러웠다. 동네 입구 도로부터 '댐건설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가 줄줄이 내걸리고, '댐건설 결사반대'를 외치는 붉은 글씨 깃발이 여기저기 휘날렸다.

    느닷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12월 중순쯤. 순천시청에 다니는 동네 출신 직원들을 통해 '용수동이 좋아진다'더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동네 주민들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수소문을 했고, 확인한 소식은 뜻밖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주민들이 파악한 소식은 다름아닌 동네에 댐을 건설한다는 것. 현재 동네에 있는 '와룡저수지'를 확장해 대형댐을 만든다는 것이다.

    댐의 규모는 길이 270m, 높이 50m, 저장 용수는 370만 톤에 이른다. 여수와 순천, 광양 등 전남 동부권 70만 인구에게 용수를 공급하는 인근 주암댐의 규모가 길이 330m, 높이 57m이니 이 '와룡댐(가칭)'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나중에 시청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사항이지만, 이같은 규모는 그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등고선을 자로 재면서 임의로 그린 것이었다.

    이렇게 될 경우 약 80가구가 수몰돼 정든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추정이 나왔다.

    용수동 동네 입구 플래카드 (사진=전남CBS 박형주 기자)

     

    ◇ 천억 원 이르는 사업비에 집착…주민간 갈등 시작

    와룡저수지 댐건설 반대 대책본부 (사진=전남CBS 박형주 기자)

     

    주민들은 이때부터 반발하기 시작했다. 또 묘한 갈등 분위기도 고조됐다. 정든 고향 땅을 물에 수장시키고 떠나는 것도 가슴아프고, 시골 어르신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커뮤니티는 무참히 붕괴될 것으로 걱정됐다.

    반면 댐 아래 주민들은 일단 댐을 막으면 수십년간 재산권을 묶어버렸던 상수도 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주민 갈등의 씨앗이 싹튼 것이다. 그저 '그런다더라'는 소식 하나에.

    반대 주민들은 '댐반대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플래카드와 깃발을 곳곳에 내걸기 시작했다. 현재 있는 와룡 저수지 펜스에 소망리본 수만개를 달면서 강력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순천시는 "댐의 높이를 30m로 낮춰 수몰 가구수를 40가구로 줄이거나 계단형식으로 댐을 만들겠다"며 '주민들 달래기'에 돌입했다.

    순천시가 이처럼 댐 건설에 집착한 것은 이 사업에 투입되는 국가 보조금이 무려 천억 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사업인데 전국 30개 지역이 사활을 걸었다. 사업만 확정되면 시비 부담 백억 원에, 총 천 백억 원짜리 대규모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심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낙후된 용수동을 개발하는 호기가 될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당장 3월 중순 사업 의향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순천시는 이달 초 시의회에 사업 계획을 보고하고 다음달 의향서 제출 직전 주민설명회를 계획하는 등 부랴부랴 서둘렀다. 순천대에 천 5백만 원짜리 사업 타당성 용역도 급히 요청했다.

    와룡저수지 펜스에 내걸린 깃발과 리본들 (사진=전남CBS 박형주 기자)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은 계속 수그러들지 않았다. 주민들은 서운했다.

    30여년 전부터 용수동은 공동묘지 동네로 변해갔다. 동네에서 6km 떨어진 상류에는 4200기에 이르는 초대형 순천시립공원묘지가 들어섰고, 순천 천주교 묘지도 마을 입구로 연결돼 있다.

    동네주민들은 "순천시립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동네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와룡저수지에 고여 썩는 냄새가 난다"며 수돗물마저 먹지 않는다.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여 재산권 행사까지 제한받고 있으니 도로라도 넓혀달라고 순천시에 요청했으나 수십년간 도로 확장은 차량이 교행할 수 있는 공간을 찔금찔끔 만들어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댐을 건설해 마을을 수장하겠다니 단단히 뿔이 난 것이다.

    용수동 댐반대 대책위 김기만 위원장은 "마을에서 시청까지 4km도 안되는데 지진 등 대형 재난이 닥쳐 댐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시청은 물론이고 원도심이 모두 쓸려나가버릴텐데 어쩌려고 댐을 짓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김 위원장은 또 "댐을 건설해야 상수원 보호구역을 해제할 수 있다는데 그렇게 해제할 수 있는 것을 왜 댐을 건설하지 않으면 해제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댐건설시 수몰 대상으로 건설반대 플래카드를 내건 순천서부교회.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식사제공처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전남CBS 박형주 기자)

     

    ◇ 주민 동의는 '요식행위'…밀실탁상행정에 천억 사업 날려

    순천시는 결국 "사업 추진을 포기하겠다"고 24일 주민들에게 알려왔다. 사업 추진을 하려면 주민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업 추진은 무산됐지만 순천시 행정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정부에 사업 신청까지 불과 3~4개월에 그쳐 부랴부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지만, 우선 틀을 미리 정해놓고 시의회와 주민 동의는 '요식행위'로 여긴 것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

    시청에서 일하는 동네 출신 직원이 소식을 흘렸다고 하나 흘리지 않았으면 오히려 주민들이 알게된 때는 더 늦어져 주민들의 충격과 반발은 더 컸을지 모른다.

    검토 초기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충분히 수렴하면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고 사업 규모도 논의했다면 어땠을까?

    이처럼 큰 혼란과 반발은 적었을 것이고 주민 갈등도 부르지 않았을 것이며, 정부로부터 더 높은 점수를 땄을지 모른다.

    밀실탁상행정이 천억 원짜리 사업을 난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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