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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스티: 카이사르 가문의 영광과 몰락'



책/학술

    '다이너스티: 카이사르 가문의 영광과 몰락'

     

    '다이너스티'는 로마를 변형시킨 한 가문의 초상이자 세계를 변모시킨 황조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로마제국의 원형을 만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문은 아우구스투스가 열었지만 그 시작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의 주요 상속자로서 그의 재산, 병사 그리고 이름까지 계승한 옥타비아누스는 양자 결연과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황조의 뼈대를 만들었고, 이후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다섯 황제가 100여 년 동안 로마를 다스리게 된다.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기괴한 통치 행위, 로마 제정 초기의 혼돈과 난맥상이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벽돌 도시에서 대리석 도시로 다시 태어난 수도 로마에서 야만족이 출몰하는 축축한 게르마니아의 숲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범위를 배경으로 로마 초기 황제들의 공적인 역사와 생생한 민낯, 제정 초기에 정치가 작동한 방식, 당대 로마인들의 인식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동시에 날카로운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신화, 허구, 진실, 소문, 실제, 영광, 유혈, 심오한 지혜, 눈먼 허영 등 로마인을 로마인이게 해준 모든 특징을 능숙하게 꿰뚫고 황제들의 덕과 악덕, 장점과 결점을 낱낱이 파헤쳐, 그 다섯 황제를 넘어 로마의 시대정신을 함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영국의 대중역사저술가 겸 역사학자인 톰 홀랜드가 선보이는 한 편의 소설 같은 로마 역사서 '다이너스티'를 만나보자.

    "내가 인생극에서 내 배역을 잘 연기한 듯하지 않소? 그렇다면 박수를 보내주오. 그리고 칭찬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게 하오."

    냉혹한 만큼 교활하고, 단호한 만큼 참을성이 강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었다. 수십 년간 로마를 다스리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심지어 천수까지 누린 아우구스투스의 성공 비법은 로마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통치를 해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독재정을 교묘하게 원수정으로 포장해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물려주었다.

    "조상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원로원의 이익을 주의 깊게 지키며, 위험 앞에서는 용기 있게 행동하고, 공공의 선을 위해서라면 불쾌감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소."

    티베리우스는 사라져버린 공화국에 평생 동안 집착한 불행한 군주였다. 뛰어난 군사 경력과 통치력으로 로마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위대한 장군으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성도착자라는 악명으로 뒤덮였고 그는 끝내 고집스러운 은둔생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시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는데 티베리우스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로마 시민들은 온 거리에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하나의 목으로 되어 있다면 한꺼번에 잘라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꼬마 병정 차림으로 군부대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칼리굴라('꼬마 장화'라는 뜻)는 한때 병사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나라를 다스렸고 이내 잔혹함과 수치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를 두고 세네카는 "조물주께서는 한정 없는 악이 한정 없는 권력과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칼리굴라를 창조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카 칼리굴라가 피살된 뒤 커튼 뒤에서 벌벌 떨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근위대원들은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클라우디우스에게 최고권을 부여했다.'

    병약한 절름발이였던, 특히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고려되지 않았던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를 살해한 근위대에 의해 강제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의외로 통치를 잘 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근위대와의 유착 관계와 해방노예 삼인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점 그리고 조카 아그리피나와의 결혼은 로마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아내 살해자, 전차 기수, 배우, 방화범. 이것이 네로에게 씌워진 기나긴 범죄 목록이었다.'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아들 네로를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남편을 독살했다는 소문은 로마인에게 의혹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황제가 된 네로는 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절대 권력을 남용했고, 행정은 뒷전으로 하고 음악과 연기에 관심을 쏟았으며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차 죽게 만들고, 소년과 결혼하고, 잿더미가 된 수도 한복판에 환락궁을 지었다. 원로원이 네로를 공적(公敵)으로 선언하자 네로는 자신의 손으로 목 깊숙이 칼을 찔러 생을 마감했다.

    책 속으로

    그들은 신들이 자신들에게 세계 지배의 권리를 주었다고 믿었다. 로마의 비범성은 지배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는 로마인의 재능을 능가하는 민족이 있을 수 있었다. 청동이나 대리석 제품을 만드는 일, 별자리표를 작성하거나 성생활 안내서를 쓰는 일만 해도 그리스인들을 따라올 민족이 없었다. 시리아인도 무용수로 이름을 날렸고, 칼데아인은 뛰어난 점성술사였으며, 게르만족은 유능한 호위병이었다. 그러나 보편적 제국을 정복하고 유지하는 데 적합한 재능을 지닌 민족은 로마인밖에 없었다. 그것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는 것은 그들이 거둔 업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피지배민들을 관대하게 대하되, 오만방자한 민족은 가차 없이 처단한 것에서도 로마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장 38쪽)

    “숱하게 많은 악덕을 지닌 그였지만 칼리굴라가 진정으로 소질을 보인 측면은 학대였다.” 세네카의 이 말대로 즉위 4년째 되는 해인 기원후 41년에는 로마의 전 귀족층이 칼리굴라가 지닌 모욕의 천재성에 몸을 움츠리는 상황이 되었다. 칼리굴라의 대리인 한 명이 원로원에 가서 의원 한 사람을 노려보기만 해도 황제 증오죄는 뚝딱 만들어졌다. 그러면 다른 의원들이 그에게 즉각 달려들어 몸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누구도, 심지어 칼리굴라의 친구들마저 그 상황에서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칼리굴라는 그들 모두를 바짝 긴장시키기를 좋아했다. (5장 442쪽)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위태롭긴 했지만 그런대로 처신을 잘했다. 젊은 시절 그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던 기회가 박탈되자 도박에 취미를 붙였다. 도박 중독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만큼 그것에 심취했다. 하지만 그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그를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바라보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웃은 사람은 그들이 아닌 클라우디우스였다. 상황은 언제나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예상 밖의 기량을 보이며 상황과 싸워 나갔다. 그는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아서도 도박을 걸어 세계를 차지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이래, 그처럼 노골적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예는 없었다. (6장 455쪽)

    그러고 있는데 파온의 심부름꾼 하나가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왔다. 네로는 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 읽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원로원은 그를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들을 무색하게 만든 황제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기념이라도 하듯, 몸을 발가벗기고 어깨에 멍에를 얹어 거리로 끌고 나간 뒤 막대로 때려 죽이는, 잔혹한 것만큼이나 고색창연한 사형 선고를 그에게 내렸다. 네로도 그런 운명을 당하느니 스스로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단검 한 쌍을 집어 들고 칼끝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RELNEWS:right}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운명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7장 615쪽)

    톰 홀랜드 지음 |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726쪽 |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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