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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달착륙 반세기, 지구는 '차별'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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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달착륙 반세기, 지구는 '차별'에 갇혔다

    [노컷 리뷰] 영화 '히든피겨스'로 본 '차별'의 과거와 현재

    영화 '히든피겨스' 스틸컷.

     

    여객기에 탑승했던 아시아인 남성 승객이 무자비하게 끌어 내려진다. 승객이 반항해봐도 보안 요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유혈 사태가 발생했지만 경찰은 이 승객을 짐짝처럼 끌고 나간다.

    지난 주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에서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의사인 데이비드 다오 씨에게 있었던 일이다.

    알려진 내막은 이렇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오버부킹' 사태가 발생하자 자원해 내릴 승객을 받았다. 그러나 승객들의 자원을 받은 후에도 자리가 부족했고, 무작위로 다오 씨를 지목한 것이다.

    현재까지 왜 그가 지목됐는지 이유는 밝혀진 바 없다. 다만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사건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아시아인들은 분노했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먼 타국에서 저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 탓이다.

    백인들의 인종차별 역사는 뿌리 깊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고했지만 타인종을 향한 그들의 인종차별은 끈질기게 살아 숨쉬고 있다.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그저 피부색이 다르니 '섞일 수 없다'는 맹목적 차별이다.

    조용히 흥행 중인 영화 '히든 피겨스'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공을 세운 흑인 여성 나사(NASA)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이 시절의 인종차별은 마치 숨쉬듯 일어난다. 사회의 기본 시스템 자체가 인종차별적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NASA)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업무를 하지만 흑인들의 사무실은 외따로 있다. 화장실 또한 백인과 함께 이용할 수 없으며 커피 주전자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공공기관에서조차 드나드는 출구가 다르다. 승진에는 불이익을 받고,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은 갖지 못한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증명해도 보고서 한 켠에 이름조차 실을 수 없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진다. 함부로 능력을 펼칠 수도, 정보를 얻을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삶은 끝없이 제한된다. 고작 피부색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주관할 수 없다.

    장애물은 하나 더 있다. 그들은 흑인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고충을 알아줄 만한 흑인 남성들조차 끊임없이 왜곡된 성역할을 강요한다. 직장에 매달리지 말고 가정을 돌보라는 조언이다. 수시로 바뀌는 비행 궤도 수식에 주인공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 분)은 주요 회의 참석을 요구하지만 팀장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차별이다.

    영화 '히든피겨스' 스틸컷.

     

    ◇ '인종'에서 '성적지향성'까지…끊어지지 않는 '차별'의 고리

    그렇다면 나사 직원인 흑인 여성 세 명은 어떻게 이런 차별을 극복했을까.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를 풀어 나간다. 사회를 뒤바꾸겠다는 격렬한 혁명보다는 제도권 내에서의 점진적인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백인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재판을 신청해 재판관을 설득하고, 해고되지 않기 위해 컴퓨터 기술을 배우고, 백인 중년 남성의 전형인 상사에게 천재성을 인정받는다.

    나사 안에서 일어난 작은 혁명은 나름대로 값지다. 매일 800m 거리에 있는 '유색 인종' 전용 화장실은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폐쇄되고, 보고서에 이름은 올리지 못해도 마음대로 의견을 펼칠 수 있다. 여성도 얼마든지 회의에 참석해 기밀 정보를 두고 토론한다.

    놀랍게도 '히든 피겨스' 속 백인 캐릭터들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완전히 흑인들과 유리돼 흑인이 어떤 삶을 살고, 사회 속에서 어떤 차별을 받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흑인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다. 이미 야만적인 인종차별 시스템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직장과 가정 속에서 흑인 여성들이 벌이는 싸움은 여느 사회 운동 못지 않게 치열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이 문제 해결의 단서는 될 수 있을지라도, 결정적 주체가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기적은 캐서린의 상사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과 백인 판사 그리고 남편이 노력과 열정을 인정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극 중 캐릭터들이 '천재'인 것은 차별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백인이라면 어떤 선택이든 자유롭지만 흑인은 천재라도 '전산원'이 되는 운명이라는 것을. 남성보다 능력이 뛰어남에도 여성은 중책을 맡지 못한다는 것을. 이 같은 설정은 한편으로 영화 속 저항을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흑인 여성 세 명의 업적이 쌓여, 나사가 달에 인간이 착륙한지 5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럼에도 지구상에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지난 13일 군 인권센터는 대한민국 육군이 조직적으로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수사·처벌을 지시했다고 고발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 군인은 성적 모욕, '아웃팅'(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적 지향성이 공개되는 것) 협박 등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성적지향성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으니 이는 명백히 차별로 규정된다. 아직도 동성애를 질병이나 죄로 인식하고, 이성애가 아닌 성적지향성에 대한 차별 시스템이 구축된 결과다.

    '다른 인종'이라서, '성적지향성'이 달라서, '여성'이라서,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을 누군가는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잔혹한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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