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 주요 사례로 꼽힌 TV 예능·오락프로그램. (양평원 제공)
국내 TV 예능·오락프로그램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원장 민무숙, 양성평등원)는 지상파 3사, 종편 4사, 케이블 2사의 3월 6일부터 12일까지 예능·오락 방송 프로그램(총 33개)을 모니터링한 결과라고 18일 밝혔다.
양성평등원은 출연자 성비와 주요 역할을 분석한 결과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전체 출연자 가운데 여성비율은 38.5%(180명), 남성은 61.5%(287명)로 남성이 거의 배에 달했다. 주 진행자 성비도 여성은 31.9%(15명), 남성은 68.1%(32명)로 큰 격차를 보였다.
지상파 모 음악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 1명과 연예인 판정단 12명 중 여성은 단 3명에 불과했고, 특히 남성 판정단은 주로 음악 분야 종사자로 전문성이 강조된 반면 여성은 배우, 개그맨 등으로 감성적인 평을 내놓는 역할에 그쳤다.
모니터링 결과 발견된 예능·오락프로그램의 성차별적 내용은 19건(성역할 고정관념 조장 1건, 여성의 주체성 무시/남성 의존성향 강조 5건, 성희롱·성폭력 정당화 1건, 외모지상주의 조장 5건, 여성의 성적대상화 3건)이었다.
반면 성평등적 내용 5건(주체성 1건, 현실반영성 1건, 다양성 2건, 대안성 1건)에 불과했다.
종편의 한 여행 관련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침대에 편히 앉아 이것저것 시키는 출연자를 ‘바깥사람’,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를 챙겨주는 출연자를 ‘안사람’으로 대비해 연출하며 자막을 내보내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했다.
또한, 가상부부가 출연하는 또 다른 종편 프로그램에서는 남성은 여성에게 ‘너’, ‘마누라’ 혹은 이름을 호칭으로 사용한 반면, 여성은 존칭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평등해야 할 부부관계를 상하 관계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으로 지적됐다.
지상파의 모 개그 프로그램은 뚱뚱한 남녀는 등장시켜, 뚱뚱한 사람은 먹는 것 앞에서 무조건 좋아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특히 여성의 외모를 계속 조롱하는 모습을 연출해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 지적됐다.
모 방송은 출연자들이 앨범재킷 사진을 촬영한다는 설정의 장면에서 여성 출연자가 본인의 표정과 자세를 선정적으로 취하고, 남성 출연자들은 이를 즐기고 관찰하는 성희롱적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해 자칫 성희롱·성폭력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사례로 꼽혔다.
모 케이블방송 예능프로그램은 걸그룹이 출연하자, 남성 진행자가 “국방부 사기진작 차원에서 금주 아이돌로 걸그룹 000을 선정했다”고 언급하고, ‘남자 시청자들 만족하십니까’, ‘전국 내무반 들썩들썩’ 등의 자막을 노출했다.
또한 한 여성멤버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남성진행자가 마네킹을 닮았다고 언급하고 “이런 인형 어디가면 살 수 있나요”라는 자막을 노출해 여성을 남성 사기진작의 도구, 사물화해 표현했다고 양성평등원은 밝혔다.
한편, 성평등적 사례로 실제 연예인부부가 출연한 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이 꼽혔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부부간 가사분담 문제 관련해 여성은 “제가 계속 일을 해서 집안일을 다 남편이 하고 있어요. 제가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어요”, 남성은 “제금은 제가 가사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돼 가사가 특정 성의 역할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양성평등원은 3월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성차별적인 사례 일부에 대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개선 요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4월은 어린이 프로그램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할 계획이다.
민무숙 양성평등원장은 “예능·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성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가 자주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방송사 및 제작진들은 방송이 시청자들의 양성평등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건강한 웃음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 제작에 힘써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성평등원은 서울YWCA와 함께 ‘2017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TV, 인터넷 속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및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교육·캠페인을 비롯한 다각적인 양성평등 미디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