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청와대가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약속한 인사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에 대해 공식 사과에 나선 것은 야당 인사청문위원들의 요구에 응답하고, 정권 인수위를 거치지 않은 새 정부의 한계를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또 향후에도 '5대 비리 관련자 고위공직 원천 배제 원칙'은 지키겠지만 일괄적으로 준용하기보다는 심각성과 의도성, 반복성을 꼼꼼히 따져 인력풀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야당은 문 대통령이 직접 인사 원칙을 밝혀야 한다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서, 당장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은 물론 강경화 외교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병역면탈과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원천 배제한다는 원칙과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국무위원 후보자 등을) 검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문재인 정부는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다"며 "그래도 저희가 내놓는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국회의 청문위원님께도 송구한 마음과 함께 넓은 이해를 구한다"고 호소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신속한 대응은 특권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인사원칙이 자칫 새 정부 초반부터 훼손되는 것으로 비쳐져 국정 운영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진=자료사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이 투기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유능한 국무위원 후보자로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했지만,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가 뒤늦게 발견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마저 같은 논란에 휩싸이면서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 실장이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른 것처럼 관련 사실에 대한 내용 또한 들여다보면 성격이 아주 다르다"며 "(인사 대상자들의) 심각성과 의도성, 반복성, 그리고 시점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한 것도 일명 '5대 인사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백한 것으로 읽힌다.
청와대의 이날 인사 원칙 관련 유감 표명은 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청와대 상춘재로 초청해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을 약속하며 소통을 강조한 행보의 연장선 상에서 야당의 요구에 대한 응답 차원이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이 대통령이 밝힌 '5대 인사 원칙'에 위배된다며 정면 반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특위 여야 간사와 정성호 위원장이 26일 국회에서 청문 보고서 채택 문제와 관련 여야 간사 협의를 마친 뒤 회의실 밖으로 나오고 있다. (좌측부터 바른정당 김용태, 정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자유한국당 경대수 간사) 이날 각당 간사 협의는 여야간 입장이 엇갈리며 협의가 결렬됐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한국당 정용기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런 입장 발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청와대의 입장 발표는 일방적으로 독주하겠다는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정 원내대변인은 "사회적 상실감이라는 모호한 명분을 앞세워 5대 비리 관련자라도 자질과 능력이 있는 경우 임명을 감행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정권 입맛에 맞춘 고무줄 잣대로 인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꼼수"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사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향후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는 것이 도리"라며 "당선된 지 보름만에 대국민 공약인 인사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최명길 원내대변인도 "국민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궤변"이라며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을 판단하는 주체는 국민"이라고 반발했다.
청와대의 신속한 유감 표명과 국회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집단 반발에 나서 셈이다.
이에 따라 책임총리를 강조하며 이낙연 총리 정식 임명 후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초기 내각 구성은 당분간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