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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수문장'도 '철도 지킴이'도 전부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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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 수문장'도 '철도 지킴이'도 전부 비정규직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②] 업무성격 가리지 않고 공공부문에 만연한 비정규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실행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만에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CBS노컷뉴스는 5회에 걸쳐 외주화로 얼룩진 공공부문부터 악마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민간부문까지 철저하게 은폐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① 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정규직"
    ② '왕궁 수문장'도 '철도 지킴이'도 전부 비정규직
    ③ '악마의 공장' 만드는 사기업…정규직 '0' 공장까지
    ④ 숨은 '사용자', 은폐된 '비정규직'…"실태부터 드러내라"
    ⑤ "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에도 비용절감을 위한 비정규직은 만연한 문제다. 노동친화를 내세운 지자체에서도, 외주화할 경우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안전업무에서도 비정규직화는 예외없는 진행되고 있다.

    ◇ 비정규직 '왕궁 수문장', 자부심 보다 불안감

    행사를 진행 중인 수문군들의 모습. 수문군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사진=김명지 기자)

     

    매일 오전 11시,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이 있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허'하는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기다란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50여 명의 남성들은 힘껏 깃대를 추켜세우거나 북을 두드리며 뚜벅뚜벅 발을 내디뎠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올해 21년째 이어지면서 대표적인 서울시의 관광문화가 된 행사지만,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자부심 보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행사업체 소속으로 1년 단위로 계약을 이어가야 하는 '비정규직 수문장들'이기 때문이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몇 년 간 일을 쉰 적이 있는 수문군 A(33) 씨는 "업체가 바뀌면 직원이 바뀌니 지금도 다른 일을 구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있다"며 "계약이 됐다, 안 됐다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주 6일을 일하고 받는 월 평균 임금은 155만 원 가량. 임금협상을 포함한 그 어떤 노동조건에 관해서도 협상할 테이블도, 상대도 없다.

    공연이 끝난 뒤 땀을 닦던 수문군 B(35) 씨는 "법정 공휴일엔 관람객이 많다보니 근무를 반드시 하게 된다"고 말했다. B 씨는 특히 급여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물가가 오르고 차비도 올랐는데 임금은 그에 맞춰 함께 오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엄연한 '서울시 행사'를 주관하며 행사업체와 계약을 하는 주체인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이래 꾸준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해왔다. 노동계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박 시장의 비정규직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노동 친화적이라고 알려진 박 시장의 서울시에서도, 비정규직 수문장처럼 비정규직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당장 수문교대식 행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하는 일은 행사 용역을 새로운 업체에 맡기더라도 기존 인력을 고용승계하라는 '권고' 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은 처음부터 외부 업체에 맡겨왔다"며 "직접고용 계획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 '안전' 직결되건만… 직원 95%가 비정규직

    (사진=자료사진)

     

    공공기관에 침투한 비정규직 문제는 지자체장이 누구인지와 상관 없을 뿐 아니라 안전 관리처럼 외주화가 이뤄질 경우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업무도 가리지 않는다.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테크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도시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자격으로 2004년 설립된 코레일테크의 경우 직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코레일의 철도 궤도 공사, 철도 전기설비 유지· 관리 등 안전과 직결된 중요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예외는 없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기준 코레일테크의 정규직은 43명, 비정규직은 830명이다.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시간외 근무, 휴일 근무를 다 합쳐서 월 180~200만 원 정도다. 근무 시간은 연 2200~2300시간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김영준 전국철도노동조합 비정규국장은 "코레일테크가 담당하는 선로유지보수, 전기유지보수, 차량정비업무 등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필수유지업무'로 정해져 쟁의 행위조차 금지되거나 제한된다"며 "그럼에도 비정규직인 탓에 고용은 안정되지 않고 노조에도 가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겪을 제2의 구의역 사고를 막기 위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내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상황은 바뀐 게 없다.

    안정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사회 공공부문은 내적으로는 성과급제 등 민간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는 한편 외적으로는 민영화를 통해 규모를 축소시켜왔다"며 "실업, 빈곤 등 사회적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 본질적 목적인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커졌다는 것은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드라이브에 맞춰 공공기관 내‧외부의 부정적 인식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대한 정규직 공무원들과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반발 같은 문제도 공론의 장에서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며 "'정규직대 비정규직'의 대립 프레임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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