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영화관 매표소 앞. 평일 낮이지만 영화를 보려는 시민들 20여명으로 붐볐다. 무인 단말기가 대면 매표소보다 2.5배나 많았지만, 영화 관람객들은 대부분 매표소로 몰렸다. 아르바이트 4년차인 A(24) 씨는 "주말의 경우 손님들이 창구 앞에 5m 가까이 줄을 서다보니 쉬지 않고 말을 해야 한다"며 "일을 마치고 나면 목이 부어 말도 안나오고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라고 했다.
이처럼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여겨졌던 무인 단말기가 일자리는 줄이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의 업무량은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무인 단말기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지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 손님들 "여전히 대면창구가 편해"…부담 늘어나는 알바생
서울의 한 영화관, 무인단말기에는 한산한 반면 유인창구에 사람이 가득 몰려있다. (사진=정석호 기자)
무인 단말기 보급에 따른 아르바이트생들의 업무량 증가는 단말기에 대한 서비스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낮은 데서 기인한다. 영화관을 찾은 이웅천(60) 씨는 "카드 할인 등을 받으려면 창구에서 결제를 해야 한다"며 "디지털 세대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과 대면해서 서비스를 받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창구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해도 늘어선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긴 줄에 화가 난 손님들의 항의를 받아야 하는 것도 오롯이 아르바이트생들이다.
최근 리뉴얼 개장한 용산 CGV의 경우 상영관이 기존 11개에서 20개로 대폭 늘었지만, 무인단말기만 추가 설치됐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2010년부터 무인단말기를 본격적으로 확대도입하면서 창구를 축소해왔다"며 "현재 매장마다 두개 정도씩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 역시 무인단말기가 노동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르바이트 7개월 차인 B 씨는 무인단말기 고장으로 한 곳밖에 없는 대면 창구에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었던 일을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인화로 대면 창구는 줄어도 줄은 항상 길게 늘어서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계 사용에 대한 익숙함과는 상관 없이 대면 창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눈에 띄었다. 평소 햄버거를 즐기는 신진원(72) 씨는 "기계를 사용할 줄 몰라 창구 직원에게 말로 주문하는 편이다"라며 "점심시간에 줄을 길게 서야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주재의(17) 군은 "무인단말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창구 주문이 훨씬 대응이 빠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대면 서비스를 선호하면서 대면 창구로 몰리고, 아르바이트생의 업무량은 늘어나는 구조다. 무인단말기가 만족시키는 것은 업체뿐이다. 무인단말기가 인건비를 줄여 경영 효율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 내년 임금 인상 눈앞…"업주가 '인건비 절감책'만 꾀하지 않았으면"
영화관 무인 매표소 (사진=자료사진)
이런 맥락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무인화 경향에 부채질을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미 맥도날드의 경우 무인단말기는 전국 440개 매장 중 190곳에 설치된 상태다. 연말까지 50곳에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롯데리아도 현재 전국 매장의 약 40%에 무인단말기가 자리 잡은 상태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하는 가맹점주 입장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진행형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되고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선 돌파가 현실화되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무인단말기를 들이는 업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2년째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C(28) 씨는 "요즘 동료들끼리 앞으로 창구가 더 줄면 어떻게 하냐는 얘기를 자주한다"며 "지금보다 업무가 더 몰리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알바노조 최기원 대변인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업주가 무작정 무인단말기만 늘리는 것은 소비자나 노동자들에 대한 고려 없이,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며 "사각 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