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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신고리원전 갈등을 통합과 상생으로 이끈 471인의 현자(賢者)



칼럼

    [논평] 신고리원전 갈등을 통합과 상생으로 이끈 471인의 현자(賢者)

    김지형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고리공론화위원회의 '정부 권고안'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시민참여단 중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를 최종 선택한 비율이 59.5%로 건설 중단 의견을 낸 40.5%보다 19%포인트 높았다"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신고리원전 5, 6호기에 대한 시민대표들의 판단은 현명했다.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조사에서 471명의 시민참여단은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6%)를 훨씬 뛰어넘어 확실하게 '건설 재개, 원자력발전 축소'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건설 재개를 해야 한다는 쪽은 59.5%로, 건설 중단(40.5%)보다 무려 19% 포인트나 더 높았다.

    원자력 발전 축소는 53.2%로 원자력 발전 유지(35.5%)나 확대(9.7%)보다 훨씬 높았다.

    이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싸고 거의 국론 분열로 치닫던 갈등상황에서 더할 나위없는 최선의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 솔로몬의 판결에 버금갈 정도로 절묘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지형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장이 20일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 471분'이라고 지칭한 것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 조감도. (사진=자료사진)

     

    돌아보면 신고리 5, 6호기를 둘러싼 갈등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정부가 이미 건설공사가 30% 가까이 진행된 원전의 공사를 중단해 놓고 공론화를 거쳐 공사 재개냐 영구중단이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신고리 5, 6호기를 포함해 탈원전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문제가 있다.

    탈원전은 한 정권에서 결정한다고 바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전이 한번 가동되면 수십년간은 멈춰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탈원전은 오히려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또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탈원전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동의와 결단이 필요하다.

    탈원전은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고 무리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고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일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미 공사가 30% 가까이 진행된 원전의 공사를 중단시킬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 건설할 계획인 원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국민의 뜻을 물을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공사 중단과 함께 공론화를 밀어부쳤고 그 결과 국론이 찬반 양쪽으로 나뉘면서 심각한 분열양상을 빚기도 했다.

    여론조사결과를 봐도 건설 중단과 재개에 대한 지지가 엇비슷하게 나와 공론화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도 큰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건설 중단과 재개에 대한 지지가 엇비슷한 가운데 정부가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몰고 간다고 할 때 반대 진영이 승복을 안하고 반발하면서 큰 혼란이 일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문재인 정부로서도 답이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를 해결해 준 것이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대표들이었다.

    시민참여단은 오차범위를 훨씬 벗어난 19%포인트 차로 건설재개 쪽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했다.

    이것은 상식을 가진 시민들로서는 당연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고 말았다면 탈원전 지지자들의 불만과 반발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시민참여단이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 원자력 발전 축소를 제시한 것은 '신의 한 수'처럼 절묘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재개하지만 원자력 발전은 축소하자'는데는 누구도 반대하고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원전 지지자에게는 탈원전 캠페인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명분을 주는 것이고 생각이 있는 원전 지지자도 여기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혼란을 빨리 수습하고 탈원전으로의 정책방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일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이날 바로 공론화위원회의 공사재개와 원전축소 권고 등을 존중하고 후속 조치를 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낸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시민참여단은 더 나아가 건설을 재개할 경우 원전의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사용후 핵연료 해결방안을 가급적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많은 이가 원전비리 척결과 관리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직접 기술했다.

    어떻게 보면 471인의 시민참여단의 의견 속에는 우리나라 원전과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이 다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공론화 결과는 어느 한쪽이 승리하고 다른 쪽이 패배했다고 몰고갈 일은 아니다.

    "우리 사이가 두루 승자로 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을 넘어 통합과 상생의 길을 찾자고 호소"해온 공론화위의 주장이 먹힌 셈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낯선, 숙의라는 공론화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도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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