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5·18 암매장 증언 "야전삽으로 파묻은 학생, 지금도 떠올라"

사회 일반

    5·18 암매장 증언 "야전삽으로 파묻은 학생, 지금도 떠올라"

    5·18 공수부대 소령의 '암매장' 양심고백

    - 사살된 시민3명, 근처 야산에 매장
    - "적당한 데 묻으라" 상부지시 받아
    - 목격만 20여 구, 흔적 반드시 있을것
    - 발포명령 없었다? 말도 안되는 일
    - 얼굴 아직도 아른거려…진상 밝혀져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신순용 (전 공수부대 소령)

     

    5.18 행방불명자들이 암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옛 광주교도소. 지난 4일부터 발굴 작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옛 광주교도소 앞에서 사살된 시민군 3명을 내가 직접 암매장했다, 양심고백을 하고 나선 분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 공수특전여대 소속의 신순용 전 소령이라는 분입니다. 5.18 암매장과 관련해서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공수부대원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증언을 한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참 귀한 증언이죠. 신순용 전 소령의 증언 오늘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연결을 해 보죠. 신 전 소령님, 안녕하세요.



    ◆ 신순용> 안녕하세요.

    ◇ 김현정> 참 어려운 인터뷰인데 이렇게 결심하고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순용> 네.

    ◇ 김현정> 지금은 실례지만 어떤 일하고 계세요?

    ◆ 신순용> 농사철 때 시골에 와서 농사짓고 있습니다.

    ◇ 김현정> 농사지으면서 지금은 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계시네요.

    ◆ 신순용> 그렇죠.

    ◇ 김현정>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계시는데. 당시 공수부대 지휘관으로 광주에 도착하신 건 며칠이었는지 기억나세요?

    ◆ 신순용> 5월 20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일 새벽에.

    ◇ 김현정> 20일이면 이미 상황이 심각하게 벌어진 다음이네요.

    ◆ 신순용> 처음에 광주에서 내리자마자 배치가 바로 됐습니다. 저희들은 교통정리 또 시민안전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죠. 시민들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앞에 온 부대 진압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 김현정> 도착해서 일단은 교통정리하고 이런 일부터 시작을 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그때 시민들이 뭐라고 불만을 표하던가요?

    ◆ 신순용> 앞에 온 공수부대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쫓아와서 그냥 곤봉이나 총 개머리판이나.. 하여튼 뿔뿔이 도망가니까 쉽게 얘기해서 개패듯이 두들겨 팬 모양입니다.

    ◇ 김현정> 도망을 가는 사람을 뒤쫓아 가서 그냥 개패듯이 패요?

    ◆ 신순용>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중상자들은 차에다가 막 툭툭 던져서 싣고 어디론가 갔다고 합니다.

    ◇ 김현정> 그런 상태에서 20일에 도착을 하셔서 교통정리를 하다가 어떻게 3공수여단도 시위대를 진압하고 사살하고 이런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 신순용> 그날 점심쯤 밥을 먹으려 했던가 끝나든 타이밍인가. 저쪽에서 기관총 소리가 드드드득 하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요.

    ◇ 김현정> 휴식하고 있는데 드드드득 기관총 소리가 들려요?

    ◆ 신순용> 쳐다보니까 트럭에다 기관총 싣고 3명 정도가 드드득 하고, 그 옆에 길이 있잖아요. 거기로 쭉 지나가니까 조준사격을 해서 (시위대 3명이) 죽었죠. 죽어서 그걸 대대장이 처리하라고 하고, 갖다 묻으라고 해서 묻었죠.

    ◇ 김현정> 대대장이 묻으라고 해서 가보셨어요? 가보니까 정말 사람이 3명이 죽어 있던가요?

    ◆ 신순용> 네. 민간인 복장이었습니다.

    ◇ 김현정> 민간인 복장. 젊은 사람들이던가요?

    ◆ 신순용> 다 젊죠.

    ◇ 김현정> 다 젊은 사람들. 지금 보도가 되기로는 20대로 보이는 사람 2명, 한 17살 전후의 고등학생 1명.

    ◆ 신순용> 네, 좀 어리게 보였죠. 한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죠.

    ◇ 김현정> 그래서 그 젊은 고등학생 또 한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을 어떻게 암매장을 하셨는지 기억나십니까?

    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 현장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 신순용> 시체를 운반해서 교도소 들어가는 입구 위에 쪽에 야산이 조그맣게 있었거든요. 소나무도 있고 무덤이 2개나 또 옆에 있었는데 무덤에서 한 6-7m 떨어져 있는 그 지점에 묻었는데. 부하들 시켜서 야전삽으로 한 1m 정도 파서 그냥 마대로 덮었는지.. 그렇게 매장시켰죠.

    ◇ 김현정> 그때 그러니까 거기다 매장시켜라라는 어떤 지시가 있었습니까, 명령이?

    ◆ 신순용> 시체를 수거해서 매장시키라고 지시를 받고. 조그만 야산이 있으니까 소나무숲도 있으니까 거기다 적당한 데 묻으라고.

    ◇ 김현정> 적당한 데 묻어라. 선생님이 묻으신 시신은 세 구인데 이게 선생님만 그런 작업을 한 게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당시에 어느 정도나 되는 인원이 그런 식으로 묻혔다고 알고 계세요?

    ◆ 신순용> 조준사격해서 몇 명이 죽으면 차량에서 굴러떨어지고 또 오고 10여 차례 이상을 반복해서 왔으니까 줄잡아서 20-30명, 이십몇 명쯤 죽었지 않나 판단하고 있고.

    ◇ 김현정> 그 20-30명 정도를, 그런 식으로 20-30명 정도가 죽었으면 다 근처에 묻었을 테니까 다 옛 광주교도소 근처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크네요?

    ◆ 신순용> 그렇죠. 교도소 옆이 넓어요. 넓은 지형하고 언덕진 그 부분에 주로 다 묻었고 그다음에 저쪽 교도소 뒤편에도 서너 군데 묻었다고 해요. 줄잡아 그쪽으로 묻힌 시체가 하여튼 20구는 넘는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때 묻었던 그 자리, 지금 가면 찾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선생님?

    ◆ 신순용> 대충 위치는 알죠. 순찰로 다 확인을 했으니까.

    ◇ 김현정> 지금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는 발굴된 시신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과거에 그 지역을 발굴했을 때 몇 구가 발견이 됐습니다마는 선생님 증언만 들어도 더 많은 시신이 나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발굴이 잘 안 되는 걸까요?

    ◆ 신순용> 이게 중구난방으로, 정확히 표시해 놓고 한 것도 아니고. 그다음에 묻으라면 자기도 땅 파고 묻기 좋은 데다 중구난방으로. 일정하게 묻는 게 아니라서 찾기 어렵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래도 어딘가 반드시 있기는 있겠죠?

    ◆ 신순용> 그렇죠. 누가 파가지 않은 이상 있지 않겠습니까?

    ◇ 김현정> 알겠습니다. 5.18 당시 공수부대원으로 시신을 암매장하는 데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신순용 전 소령 지금 만나고 있는데요. 그때가 1980년이니까 한 37년 세월이 흘렀네요, 선생님.

    ◆ 신순용> 세월이 무상합니다.

    ◇ 김현정> 무상하죠. 실은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군인들이 본인이 원하지는 않았더라도 참여해서 시민군을 향해서 총도 쐈고 암매장도 하고 폭력을 휘두드기도 하고 이런 일들을 했지만 아무도 내가 그랬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신 소령님도 끝까지 침묵하려면 침묵할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이렇게 내가 나서서 뭔가 양심고백을 해야겠다 결심하신 계기가 뭘까요?

    (사진=5.18 기념재단 홈페이지 화면 캡처)

     

    ◆ 신순용> 저는 하여튼 군에 있을 때부터 마음이 안 좋았죠. 군에서 과도한 진압을 해서 사태가 악화되고 또 발포로 인해서 많은 시민들이 희생이 됐는데 거기에 대한 염치도,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고 반성도 없이 시민들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또 군인들이 이십몇 명이 희생됐는데 그거는 아군이 오인사격으로 인해서...

    ◇ 김현정> 군인도 한 이십여 명 죽은 거는 오인사격한 거다?

    ◆ 신순용> 그런 걸 쭉 보고 안타까움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5.18 진상위에서 자꾸 연락이 오고 그래서 나는 아는 대로만 이야기해 주겠다, 말씀드리고.

    ◇ 김현정>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는 발포명령 한 적도 없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내가 피해자다, 라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신순용> 그거는 말이 안 되지요. 그 정도 한다고 하면, 발포명령이.. 명령이 안 내려오면 쏠 수가 없어요.

    ◇ 김현정> 지금 전두환 전 대통령 얘기대로라면 본인은 발포명령을 한 적이 없는데 거기 있는 군인들이 알아서 쐈다는 얘기가 되는 거거든요.

    ◆ 신순용> 그거는 상식밖의 말이라고 생각을 하죠.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살고.

    ◇ 김현정> 그렇죠. 사실은 거기 군인으로 가셨을 때가 젊은 시절이셨잖아요. 몇 살이셨어요, 그때가?

    ◆ 신순용> 한 32살 정도.

    ◇ 김현정> 지휘관이 32살이면 밑의 군인들, 젊은 군인들도 사실은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채 그 격앙된 상황 속에서 발포명령 내리고 쏘라니까 쏘고 암매장하라니까 매장하고. 그 짐을 평생 지고 가야 한다는 건, 젊은 군인들 중에도 피해자들이 있는 거예요.

    ◆ 신순용> 그렇죠.

    ◇ 김현정> 참 이게 역사적인 비극입니다. 그런데 최고 책임자는 나 몰라라 하고. 나도 피해자다 이러고 있는 상황이 참 답답합니다. 발굴작업이 지금 한창 진행 중인데 아직은 단서가 나오지 않았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세요?

    ◆ 신순용> 모든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서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영령이라도 위로를 해 주고 명예를 회복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또 앞으로 철저히 규명을 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살아가시다가도 문득문득 그때가 트라우마처럼 떠오르실 것 같아요.

    ◆ 신순용> 그렇죠, 가끔 많이 생각이 납니다.

    ◇ 김현정> 암매장했던 어린 친구들 이런 모습이 아른아른거리고 그러시면 정말 괴로우실 것 같아요.

    ◆ 신순용> 그렇죠.

    ◇ 김현정> 우리 신순용 소령 말씀을 듣다 보니까 신 소령도 역시 5.18의 피해자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오랜 상처를 안고 살아온 분인데 아무쪼록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1명의 행방불명자, 1명의 시신이라도 찾아서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발굴작업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용기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신순용> 감사합니다.

    ◇ 김현정> 감사합니다. 당시에 공수부대 지휘관으로 광주에 파견이 됐던 분입니다. 신순용 전 소령이었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 홈 바로가기]{RELNEWS:right}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