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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여한 없죠" 소방관 만 명이 모은 사랑



전북

    "죽어도 여한 없죠" 소방관 만 명이 모은 사랑

    불탄 이 할머니 집의 모습. (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뭐 하나 꺼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나왔어요. 누가 가슴을 발로 콱 밟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난 8월 22일 오전 9시. 전북 정읍에 살던 이모 할머니(82)의 네 식구는 터전을 빼앗겼다.

    보일러실에서 시작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순식간에 집 전체를 휘감았고, 이내 바스러뜨렸다.

    무릎이 좋지 않은 이 할머니와 지적장애인 아들 박모(54) 씨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불타는 집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다행히 평일이라 손자와 손녀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목숨은 구했지만 갈 곳을 잃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인근 천주교 공소(公所·작은 교회)에서 이 할머니 식구를 받아들였다. 이삿짐으로는 연기에 그을린 이불 한 채가 다였다.

    더부살이 신세가 된 그때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송상엽 정읍소방서 지휘조사팀장 등 당시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 6명은 이 할머니 식구들의 딱한 처지를 상부에 보고했다.

    화재피해주민 자립을 위한 제 1호 '119행복하우스'가 첫 삽을 뜨는 계기였다.

    소방관과 의용소방대원 1만여 명이 십시일반 3000만 원을 모았고,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아동복지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각각 1000만 원과 300만 원을 냈다.

    비번날에 쉬는 대신 주택 신축현장을 찾은 소방관들의 모습.(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방 두 개 딸린 15평짜리 집을 짓는 동안에도 소방관들의 도움이 잇따랐다. 송 팀장 등은 비번인 날에도 쉬지 않고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송 팀장은 "팀원들끼리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뜻을 모으긴 했지만 간단한 청소 정도나 거들었지 크게 한 일이 없다"며 멋쩍은 듯 말했다.

    그러나 이 할머니 식구들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도움이었다.

    이 할머니는 "땀 뻘뻘 흘리며 불 끄던 양반들이 '좋은 일 있을지 모르니 기다려보자'며 위로해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집을 지어줄 줄은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이렇게 좋은 집에서 하루라도 자봤으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21살, 16살 먹은 손자·손녀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마을 주민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서상윤(78) 씨는 "동네사람이 설움을 받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 기가 막히게 좋다"며 "세 살 먹은 애라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고 말했다.

    '실질적 가장'인 할머니를 위해 자선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이 할머니 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후원할 방침이다.

    소방당국은 이 마을 58개 가구 모두에 단독경보형 화재감지기와 소화기를 설치해 다시는 이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부엌 수돗물을 틀어보는 할머니의 모습. (사진=김민성 기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집안 곳곳을 돌며 부엌 수도를 틀어보고, 가스레인지 불을 켜보는 이 할머니에게 뻔한 질문을 건넸다. "뭐가 제일 좋으세요?"

    "따뜻한 게 제일 좋지요. 방바닥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그동안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어요." 네 식구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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