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내 장례식장 모니터에 설치된 고 이민호군의 이름 (사진=문준영 기자)
민호가 추운 걸 싫어했어요. 아내가 매일같이 '민호가 저 냉동고에서 얼마나 춥겠냐'고 말해요. 우리 민호 빨리 보내줘야 하는데. 이제 다 필요 없으니까 우리 민호 빨리 좋은데 보내주자고…
정부가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1일 오전. 민호 어머니와 아버지는 장례식장 좁은 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얼굴은 야위었고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지난달 19일 민호가 세상을 떠나던 날 민호의 어머니는 "다른 학생들이 우리 민호처럼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 민호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목 놓아 울었다. 그러나 이날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호 아버지는 "아내가 냉동고에 있는 민호를 빨리 보내주자고 매일같이 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싫다"고 흐느꼈다.
민호가 숨진 뒤 열흘이 지났지만 유족들은 업체의 공식사과와 대책을 듣지 못해 지금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장례식장 입구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민호의 이름이 그대로 게시돼있다.
고 이민호 군의 장례식장 (사진=문준영 기자)
장례식장에 있던 민호의 형도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아버지는 "형이 본인도 너무 힘들고, 지금 이 현실이 너무 싫어 집에 가있다"고 말했다. 민호의 형도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해 취업을 했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일을 그만둔 경험이 있다. 민호 사고 발생 불과 2달 전이다.
아버지는 "자기자식이 당했어도 이렇게 할 것이냐"고 분개했다. 없는 힘을 짜내 분노하고 소리치며 회사와 교육당국을 원망했다.
이날 발표된 정부의 내년도 취업 형태 현장실습 폐지에 대해서 아버지는 "근로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점검 시스템이 없으면 사고는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사고 업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마무리되는 날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언론에서 제기했던 근로계약 당시 친권자 서명 동의 여부, 연장근로와 근로계약 문제 등이 확인됐다"며 "관계자 진술 등을 받고 확인 절차가 끝나면 과태료 부과와 검찰 송치 여부 등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취업 형태의 운영방식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행 3학년 2학기 6개월 동안 진행되는 현장실습이 내년부터는 3개월 줄어들고 의무적 참여에서 자율적 선택참여로 바뀐다. 기업은 전담지도자를 지정해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는 등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운영해야 한다.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미준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훈련촉진법도 개정하기로 했다.
홍민식 교육부 평생직업교육국장은 "현재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현장실습 하여야 한다'로 돼있다. 이걸 학생 선택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학생 선택에 맡기는 내용으로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경엽 전교조 기획관리실장은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고 취업률 성과주의를 타파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발표에 환영한다"며 "다만 조기취업이 아닌 산업체 현장실습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또 "현장실무 경험을 780시간 이수해야 하는 간호조무사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겨울방학부터 3학년 1학기 여름방학까지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며 "이들 뿐만 아니라 해기사 학생들, 2학년부터 현장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도제학교 참여 학생, 취업맞춤형 학생 등에 대한 추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주시청 버스 정류장에 붙여진 고 이민호 군을 추모하는 쪽지 (사진=문준영 기자)
한편 민호의 친구와 후배인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생 107명은 지난달 30일 실명을 공개한 선언문을 발표하고 "이번 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실습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과 진상 규명, 업체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