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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뉴스] '영화 1987' 왜 30년 전 사건을 소환했을까?



사회 일반

    [Why 뉴스] '영화 1987' 왜 30년 전 사건을 소환했을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김현정의 뉴스쇼(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 올해 마지막 Why뉴스는 무얼 준비했나?

    = 올 한 해 마무리를 어떤 걸로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제(27일) 개봉한 영화 '1987'을 준비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과 6월 9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군, 그리고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30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오늘 [Why 뉴스]에서는 <'영화 1987' 왜 30년 전 사건을 소환했을까?>라는 주제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 첫 번째는 이한열 군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장면이다.

    최루탄이 'SY-44 총류탄'인데 공중 발사하도록 수칙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를 어긴 채 시위대를 직접 겨냥해 발사하는 장면이다. 이한열 군의 뇌에 최루탄 파편이 박혔다.

    이 장면은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의 직사살수와 1960년 김주열 열사의 눈에 박힌 최루탄이 연상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풀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호헌철폐·독재타도' 구호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루탄 자욱했던 거리를 촛불로 대체했고 대학생들이 주동이 됐던 시위는 전세대가 참여하는 시민혁명으로 발전했다는 게 차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군 물고문 현장

     

    ▶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군 물고문 현장이 지금도 보존되고 있나?

    =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검은색 건물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세워졌는데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소재지가 알려졌다. 2005년까지 경찰청 보안분실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운영중이다.

    영화를 개봉하기 전인 지난주말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조사실이 있는 5층 중 당시 시설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공간은 509호 박종철 군 고문현장 뿐이다. 5층 큰 조사실에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20일 넘게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지만 조사실만 그대로 있을 뿐 집기나 욕조 등은 없다.

    ▶ 영화에서는 검찰보다 경찰이 더 쎈것처럼 나오는데 실제 상황인가?

    = 전두환 정권은 '경찰국가'라 불렸다. 경찰이 정국을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영화의 주역 중 한명인 당시 최환 공안부장에게 확인해보니 "경찰이 주도하는 형국이었고 실제로 대공수사단장이던 박처원 치안감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박처원의 직속 부하였다고 최 전 고검장은 전했다.

    영화의 재미 때문이겠지만 박처원보다 더 기세등등했던 인물이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갑과 을이 바뀐 모양새로 나온다.

    당시 경향신문에 실린 CBS의 특종보도

     

    ▶ 권영철 기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취재했나?

    =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그 당시에는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었다. 박종철군 관련 취재는 6월항쟁 10주년이던 1997년이었다.

    법조팀에서 당시 고문의 주역이었던 강민창 치안본부장, 박처원 치안감, 유정방 경정, 박원택 경정, 그리고 고문을 실행한 조한경,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강진규 등 5명과 고문기술자 이근안,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문귀동 등 11명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기획취재해서 1998년 한국기자상과 방송대상을 받았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점은 고문을 실행한 경찰관들은 하수인에 불과했고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실제 생활도 어려웠다. 경찰이 규정을 어기고 경찰공제회 등 경찰유관단체에서 근무하도록 뒤를 봐주고 있었지만 궁핍한 삶이었다. 반면 경찰 고위직이었던 강민창, 박처원과 유정방. 박원택 등 간부들은 중산층 이상의 비교적 넉넉한 모습이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고문경찰관들에게 '애국자'라고 추켜세우며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지만 결과는 하수인으로서 이용만 당하는 것이다.

    영화 '1987 '포스터

     

    ▶ 1987년 사건들을 30년이 지난 2017년에 영화화 한건가?

    = 이 영화가 기획된 것은 장준환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근혜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2015년 상반기였다.

    장준환 감독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화 기획은 국정농단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2015년 박근혜 정권의 서슬이 퍼럴때였다"면서 "시작할 때는 될 수 있으면 30주년인 2017년에 개봉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더 걱정됐던 건 이걸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였다"고 말했다.

    장 감독에게 왜 이 영화를 찍게 됐는지를 물었더니 "화가 나고 답답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장 감독은 "80년 광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게 87년으로 이어졌고 그게 6월 항쟁으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민주주의의 완전한 혁명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에 큰 족적을 남기고 큰 주춧돌을 놓은 시기여서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자랑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고, 왜 이런 이야기를 꺼려 하는지 화가 나고 답답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이어 "저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보니까 아이를 위해서 이런 이야기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배우 하정우와 최환 검사 (사진=엔드 크레딧 제공)

     

    ▶ 실제로 30년 전이 생생하게 느껴지나?

    = 그렇다. '영화 1987'는 다큐가 아니라 영화다.

    이 영화의 특징은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는 점이다. 박종철, 이한열, 최환 검사, 취재기자, 의사, 경찰관 종교인 등등 등장 인물이 많지만 누군가 특별하게 부각되기 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87년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 아니냐 그 부분에 있어서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힘이 있는지 이런 부분 느끼고 그래줬으면 좋겠다. 우리 주위 이웃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지 느껴줬으면 좋겠다"면서 "영화의 주인공이 그렇고 이 나라의 주인공이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인 국민들이다. 이런 부분들이 잘 전달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 감독은 "영화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억이 날 것이다. 이한열군의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가 전태일 열사에서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목이 터져라 외쳐부르던 그 장면, 주인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

    =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破邪顯正'(파사현정)이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촛불시민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87년 6월 항쟁과는 다른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1987 영화의 막바지에 나오는 노래 '그날이 오면', '그날'의 의미는 각자 다르겠지만 김현정 앵커의 이름과 같은 '현정'은 나라를 나라답게 바로 세우는 것 아니겠나?

    무술년 새해는 촛불시민혁명과정에서 강조했던 대로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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